국회가 통과시킨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노동계의 오랜 숙원을 풀어준 성과로 포장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 현장, 특히 특수고용직 비중이 높은 골프장 업계에는 그 후폭풍이 결코 가볍지 않다.
법은 ‘사용자’의 개념을 무한히 확장시켜 이제 캐디 노조가 사실상 경영주체를 상대로 직접적인 교섭과 개입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겉으로는 노동권 강화지만 실제로는 경영 불안을 제도적으로 합법화한 셈이다. 캐디가 계약관계에 기초한 독립 종사자라는 원칙은 무너지고 임금·근로조건 협상은 물론 경영 사안까지 관여할 수 있는 구조가 열렸다. 노조 권한의 무분별한 확대는 결국 산업 기반을 갉아먹는다.
1970~80년대 영국은 ‘노동자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강성 노조가 산업 전반을 좌지우지했다. 철도·광산·조선소 등에서 노조의 무리한 파업과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가 이어지며 생산성은 추락했고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영국 제조업은 급격히 몰락했다. 이른바 ‘영국병(British Disease)’이다. 결국 마거릿 대처 정부가 혹독한 개혁으로 노조를 제어하기 전까지 영국은 ‘유럽의 병자’로 불리며 국제 경쟁력에서 낙오했다.
오늘날 영국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 브렉시트 후폭풍, 고물가와 고금리, 성장 정체 속에서 강성 노조가 여전히 교통·공공부문을 마비시키며 국가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 한국 골프장이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사용자-노조’ 갈등의 상시 전장으로 변한다면 우리 산업도 ‘영국병’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프랑스 역시 교훈적이다. 연금 개혁을 둘러싼 노조의 대규모 총파업은 파리 지하철과 항공편을 멈춰 세우고 관광·소매업 등 서비스업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파업이 반복될수록 해외 투자자는 등을 돌리고, 청년층은 ‘기회 없는 나라’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노조 권익은 지켰을지 모르지만 국가 경쟁력은 약화된 것이다.
골프장 업계의 현실은 프랑스의 서비스업과 다르지 않다. 고객 신뢰와 서비스 안정성이 생명인데 캐디노조가 무리한 요구와 단체행동으로 현장을 흔든다면 소비자 이탈과 매출 급감은 불가피하다.
이미 경북의 A골프장은 캐디노조의 요구로 영업 손실과 고객 감소를 호소하고 있다. 인사 규정 개정, AI 캐디 도입 금지, 유급 전임자 배치 등은 사실상 경영 사안 개입이다. 여기에 법적 정당성까지 부여된 지금, 전국 각지에서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골프장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적 성격을 갖고 있고 계절·기후 요인에 따른 수요 변동, 고정비 부담이 크다. 이런 산업 구조에 노조 갈등이 겹치면, 투자 위축·고객 감소·고용 불안이 악순환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업계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경제와 관광산업에도 직격탄을 안길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노동권 강화라는 미명 아래 산업 현장을 갈등의 전장으로 만드는 순간 피해는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종사자 모두에게 돌아간다.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는 노조 권력이 국가 경쟁력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보여준다.
우리 골프장 업계는 지금 그 길목에 서 있다. 법의 취지는 고귀할지 몰라도 산업 현실을 외면한 제도는 결국 ‘제2의 영국병’, 아니 신종 ‘한국병’이 되어 세계적인 참고사례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부와 사회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직시하고 제도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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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희종 한국골프장경영협회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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