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李 "보수정권에서 주로 참사" 지적…국가전산망 재난은 전 정부 탓?

김은지 기자 (kimej@dailian.co.kr)

입력 2025.09.30 04:05  수정 2025.09.30 04:05

647개 시스템 멈춰…정부24·무인민원발급도 차질

나흘째 일부 복구…추석 명절 앞두고 국민 불편 여전

"출범 100일 겨우 넘은 정부"…與, 윤석열 정부 책임론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전산실 화재로 정부24, 온라인 복지 서비스 등 주요 업무시스템이 중단된 29일 경기 수원시 망포역 무인민원발급기에 관련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몇 가지 특성이 있는데 잘 생각해 보면 소위 보수 정권에서 주로 발생한다"고 언급한지 불과 보름 만에, 현 정부에서 국가 전산망이 마비되는 대형 재난이 발생했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화재로 국정자원이 운영하는 647개 업무 시스템이 멈추면서 정부24와 무인민원발급기,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이 동시에 중단됐다. 공무원들이 내부 문서를 처리하는 '온나라시스템'까지 작동을 멈췄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 국민에게 "송구하다"며 사과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국정 책임자로서의 공식 사과였다. 다만 국민 다수가 직접적인 불편을 겪은 만큼 여론의 민감도를 고려한 메시지라는 관측이 이어졌다.


전날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무엇보다 먼저 무척 송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며 "이번 화재는 국가 디지털 인프라를 더욱 강하게 다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 불과 2년 전 대규모 전산망 장애로 큰 피해가 있었음에도 유사한 사태가 재발한 것은 매우 뼈아픈 지점"이라고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의힘의 공세를 차단하려는 의도이자, 정치적 부담을 빠른 시간 내 진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반복되는 중대재해와 사회적 참사에 대해 정부와 공직사회의 책임을 강하게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전산망 먹통 사태와 직접적으로 동일 선상에 놓일 수는 없지만, 불과 보름 전 발언과 현재 상황이 겹쳐지면서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발언을 다시 소환하는 기류다. 과거 야당 대표 시절 했던 이 대통령이 했던 발언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23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인 새올 지방행정정보시스템, 정부24가 장애를 일으켜 민원 서비스가 중단됐을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즉각 경질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으신데, 이번 사태의 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을 즉각 경질하는 게 온당하다"고 했다. 나아가 "국가 행정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 권력조차도 무소불위 행사하고 있으면서 문제만 생기면 전 정부 탓, 야당 탓, 뭔가 남 탓을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리며 '네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부 시스템 미비의 책임이 윤석열 전 정부와 국민의힘에 크다는 주장을 앞세워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중대재해 발생 시 정부와 공직사회의 책임을 강조했던 만큼, 이번 사태를 전 정부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대통령의 과거 발언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전날 밤 페이스북을 통해 "출범한 지 100일 겨우 넘은 이재명 정부"라며 "이번 정부시스템 마비는 2022년 카카오 화재 사고 이후 제대로 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재명 정부가 아니라 지난 3년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게 그 책임이 크게 있다. 이제껏 아무 것도 하지 않아놓고서 이제 와서 시비를 거는 모습이 무책임하고 꼴사나울 뿐"이라고도 덧붙였다.


권향엽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번 화재는 윤석열 정부의 전산망 이중화 예산 미반영과 시스템 부실이 누적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며 "하지만 책임 소재를 떠나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 불편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주장해오던 유능한 행정 이미지와 전면 대비되지 않느냐"라며 "이번 전산망 마비는 민주당 정부에서 발생한 초유의 재난이라는 점에서, 현 집권세력이 전 정부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책임을 비껴가려는 태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국정자원 화재로 인한 정부 전산망 먹통 사태 성토를 이어갔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인천관광공사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허술한 관리 행태가, 국민 생활과 사이버 보안에 큰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 정권이 사법 파괴와 입법 독재에 몰두하는 사이에, 민생에 심각한 구멍이 뚫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진우 의원도 "대한민국 먹통 사태야말로 특검 사안"이라며 "국정자원 화재는 예견된 참사다. 출·입국, 방역, 물류, 대출, 재판 등 어느 것 하나 안전하지 않다. 이재명 정권이 특검 하명 수사, 대법원장 청문회, 검찰 해체, 이진숙 축출만 신경 쓴 업보"라고 저격했다.


한편 이날 오후 6시 기준으로, 장애가 발생한 시스템 중 647개 가운데 75개가 복구됐다. 국정자원 화재에 직접 영향을 받은 96개 시스템을 대구센터로 이전 복구하는 데 약 4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실은 "전 정부 탓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내면서 책임 공방에서 한 발 물러나는 듯한 입장을 내놨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전 정부를 탓하거나 책임을 미루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문제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유능한 정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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