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 일본차에 날개 달고 한국차엔 족쇄 채웠다 [기자수첩-산업]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5.09.30 07:00  수정 2025.09.30 09:20

뉴욕 거리에서 확인된 일본차의 미국 시장 장악력

고율 관세 부담에 무뎌진 한국차의 가격 경쟁력

관세 인하 효과 앞세운 일본차와 역차별에 갇힌 한국차

뉴욕 도심 고층 빌딩 사이 도로를 일본차 택시가 달리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고층 빌딩 사이를 걷다 보면 외관은 바뀌고 간판은 달라지지만, 변치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어디서나 눈에 들어오는 도요타와 혼다의 엠블럼이다. 일본차 브랜드가 즐비한 이곳은 일본이 아니라 이달 초 직접 찾은 미국의 심장부 뉴욕 맨해튼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일본차가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수치도 이를 입증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도요타와 혼다를 비롯한 일본계 7개 브랜드의 미국 점유율은 총 588만대를 팔아 합산 점유율 37.1%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기아는 171만대로 10.8%에 그쳤다.


뉴욕 도심 도로에 일본차 택시가 정차해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다만 현대차·기아는 미국 진출 이후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왔다. 2019년 7.8%였던 점유율은 2022년 처음 두 자릿수를 돌파했고 작년에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 상반기 기준 점유율도 10.9%로 역대 최고다.


현대차·기아가 미국 시장에서 쌓아온 가장 큰 무기는 ‘가성비’였다. 투싼, 아이오닉5 등 모델은 동급 일본·유럽차보다 저렴하면서도 상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한국의 현대차·기아와 일본의 도요타·혼다는 주력 모델의 차급과 가격대가 비슷해 직접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해왔다. 이런 가격 경쟁력의 배경에는 자유무역협정(FTA) 덕분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었던 구조가 있었다.


뉴욕 도심 도로 위로 일본 택시들이 주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 변화가 한국차에는 뼈아픈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산 자동차 및 부품 관세를 27.5%에서 15%로 낮추기로 확정했고 일본산 자동차 역시 지난 16일부터 15% 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 7월30일 협상을 통해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행정명령이 발효되지 않아 여전히 25% 고율 관세를 부담하고 있다.


관세 역차별이 현실화되면 도요타 라브4, 혼다 CR-V, 폭스바겐 티구안·ID.4보다 더 비싸질 수 있고 한국차가 미국에서 누리던 ‘가성비’라는 무기는 힘을 잃게 된다. 실제로 현대차·기아는 2분기에만 관세 부담으로 영업이익 1조6142억원이 줄었고 판매 가격 인상까지 자제하고 있어 수익성 악화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뉴욕 도심 고층 빌딩 사이 도로를 일본 차량들이 달리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이 와중에 도요타는 미국 시장에서 역대급 실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도요타의 8월 미국 판매량은 22만5367대로 전년 동월보다 4% 증가했다. 중요한 점은 이 성과가 관세 인하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되기도 전 나왔다는 사실이다. 즉, 도요타는 이미 미국 시장에서 판매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 관세 부담까지 덜어내면서 추가적인 점유율 확대가 가능해진 셈이다.


​이대로 간다면 일본차는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더 넓히는 반면 한국차의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야 뉴욕 도심의 풍경은 언제까지나 일본차의 무대일 뿐이다. 통상 리스크를 풀어내고 경쟁력을 키워낸다면 언젠가는 일본차 못지않게 한국차도 맨해튼 거리를 가득 메우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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