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니면 약값 80% 내야"…콜린 제제 급여 축소에 환자는 '한숨'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입력 2025.10.02 11:03  수정 2025.10.02 11:22

치매 외 환자 콜린 제제 본인부담률 30%→80% 상향

니세르골린·은행엽, 기전 및 적응증 차이로 대체 불가

의료계 "콜린 제제 급여 축소에도 처방 유지 가능성 높아"

치매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치매 확진을 받지 않은 초기 치매 및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의 약값 부담이 커지게 됐다. 해당 증상 환자들에게 사용되던 ‘콜린알포세레이트(콜린)’ 제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축소가 본격 시행된 데 따른 것이다. 제약사는 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5년에 걸친 법적 공방 끝에 1, 2심 법원이 모두 기각했다.


복지부 vs 제약사 법적 공방, 급여 축소로 종지부

2일 업계에 따르면 콜린 제제는 기억력 저하 환자의 인지 기능 개선을 목적으로 폭넓게 처방돼 왔다. 치매를 비롯한 경도인지장애, 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인지 저하가 우려되는 환자들도 처방을 받으며 지난해 총 처방액은 5672억원을 기록했다.


논란은 2020년 보건복지부가 치매 진단을 받지 않은 경도인지장애 등 환자의 콜린 제제 처방에 대해 본인 부담률을 기존 30%에서 80%로 상향 조정한다고 고시하며 시작됐다. 이에 제약사들은 충분한 임상적 근거 없이 급여를 제한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지난달 18일 서울고등법원이 대웅바이오 등 제약사들이 제기한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고시’ 집행정지 청구를 기각하고, 제약사들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보건복지부의 콜린 제제 급여 축소 고시가 즉시 효력을 갖게 됐다.


이번 결정으로 치매 진단 환자는 기존처럼 30%의 본인 부담률을 적용 받지만 경도인지장애 등 다른 질환으로 처방 받는 환자의 부담은 연간 16만7000원에서 2.7배인 44만6000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실제로 대표 제품인 대웅바이오의 ‘글리아타민’을 하루 두 차례 복용할 경우 한 달 약제비는 8568원에서 2만2848원까지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 약물 없다”…의료 현장 혼란 우려
보건복지부 청사 ⓒ데일리안DB

업계는 콜린 제제를 대체할 치료 옵션이 부족하다며 급여 축소가 환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체제로 거론되는 ‘니세르골린’ 성분은 혈관성 경도인지장애에만 제한적으로 사용, 은행엽 제제는 혈액 순환 개선 목적의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으로 치매나 인지장애 적응증을 갖고 있지 않아 전문적인 치료제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식약처가 최근 은행엽 제제의 인지 기능 개선 효과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효능과 급여 적정성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며 “이는 여전히 은행엽 제제가 보조적 역할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콜린 제제를 대체할 것이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치매역학조사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는 현재 약 97만명으로 2026년에는 1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올해 298만명, 2033년에는 4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이들 중 매년 10~15%가 치매로 전환되는 만큼 업계는 조기 개입과 예방적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치매 환자 1인당 평균 연간 관리 비용은 1733만원으로, 평균 생존 기간이 11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총 2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월 2만원대의 약제비 부담을 이유로 조기 치료를 포기할 경우 미래의 사회적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단기적 약제비 절감보다 예방적 개입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콜린 제제의 급여 축소를 재고해달라는 청원이 게시됐다. 청원인은 “약 덕분에 치매에 대한 불안감이 줄었는데, 이를 복용하지 못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 것”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다만 비용 부담 증가에도 불구하고 처방이 급격히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월 5만~1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건강기능식품과 비교하면, 하루 약 400원 가량의 추가 부담은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국내 대학병원 신경과 전문의는 “환자들이 약값보다 치료 효과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임의로 복용을 중단했다가 다시 처방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급여 기준 조정의 필요성에는 일부 공감하면서도 80% 상향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신경학회 관계자는 “임상적 근거와 사회적 요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본인부담률을 50% 수준으로 조정하는 등 합리적인 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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