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매수 이후 2조5000억원 유상증자 발표했다가 철회
주총 앞두고 순환출자 구조로 영풍 의결권 무력화 시도
임시주총 파행 끝 집중투표제 도입…법원 일부 효력 인정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으며 지배구조 총력전 장기화
지난해 가을 공개매수 경쟁이 막을 내린 뒤에도 고려아연을 둘러싼 갈등은 멈추지 않았다. 영풍-MBK 연합이 가격을 단계적으로 올렸으나 고려아연도 자사주 매입 단가를 89만원까지 끌어올리면서 양측 모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공개매수 후 유상증자 논란…결국 철회
공개매수 결과 최윤범 회장 측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해 일정한 방어 성과를 거뒀으나 영풍-MBK 연합이 더 우세한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따랐다.
이 과정에서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의 적법성도 논란이 됐다.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 배임에 해당한다며 가처분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하며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공개매수는 주주가치 제고와 기업 안정성을 위한 경영 판단의 영역”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공개매수 직후 고려아연은 또 다른 카드를 꺼냈다. 지난해 10월30일, 회사는 발행주식의 20%에 육박하는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것이다. 자사주 매입을 마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내놓은 결정이었다. 고려아연은 국민공모를 통해 주주 기반을 확대하고 상장폐지 리스크를 막는 한편 주가 불안정성도 최소화한단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경영권 방어를 위해 빚을 내 자사주를 매입한 뒤 다시 유상증자로 주주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논란은 금융당국 조사로 이어졌다. 금융감독원은 “공개매수 당시 재무 구조에 변경 계획이 없다”고 공시한 뒤 곧 유상증자를 발표한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이 공개매수 진행 중이던 같은 달 14일부터 유상증자 실사에 착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금감원은 투자자 오해 소지가 크다며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고 고려아연은 지난해 11월13일 전격적으로 유상증자를 철회했다.
최 회장은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시장의 혼란을 불러 죄송하다”며 사과했고,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소액주주 권리를 보장하는 정관 개정과 주주환원 확대 방안도 내놓으며 신뢰 회복에 나섰다.
순환출자 공방에 임시주총 파행…집중투표제 도입
결과적으로 두 진영 모두 과반을 넘어서지 못하면서 경영권 향방은 결국 주주총회에서 가려지는 구도로 넘어갔다.
주총을 앞두고 최 회장 측은 영풍정밀 및 친인척이 보유한 영풍 지분을 해외 계열사로 넘겼다. 이 거래로 인해 ‘고려아연 → 해외 계열사 → 영풍 → 다시 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만들어졌다. 이로써 영풍이 들고 있던 고려아연 지분 약 29%의 의결권이 제한돼 사실상 무력화됐다.
이 조치는 임시 주총을 파행으로 몰아넣었다. 회의는 오전 9시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위임장 확인을 이유로 6시간 이상 지연됐다. 영풍 측은 명백한 편법이라고 반발했고 최 회장 측은 “합법적인 경영권 방어 조치”라고 맞섰다.
결국 의장을 맡은 최 회장 측은 영풍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고려아연 측이 추진해온 집중투표제 도입 등 핵심 안건이 가결됐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모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로, 상대적으로 지분율이 낮은 고려아연 경영진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영풍·MBK 연합은 “최 회장이 세 번째 순환출자를 감행하며 탈법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며 “국가기간산업 기업의 수장이 법질서를 무시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고려아연은 “상법에 근거한 정당한 방어조치”라며 맞섰다.
곧바로 영풍-MBK 연합은 임시주총 결의의 효력 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을 제기했다. 법원은 일부 안건에 대해 효력을 정지했으나, 집중투표제는 그대로 인정했다.
이처럼 고려아연 분쟁이 단순한 지분 경쟁을 넘어 지배구조와 제도 해석을 둘러싼 총력전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은 채 법원 판결과 주주총회를 무기로 삼으면서 갈등은 장기전의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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