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호 "슬기롭게 소비되는 배우 되고 싶다"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0.09 09:48  수정 2025.10.09 12:30

배우 정경호가 ‘압구정’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드라마와 OTT를 넘나들며 넓은 스펙트럼을 쌓아온 그는 이번엔 영화 ‘보스’를 통해 유쾌한 코믹 액션으로 자신만의 색을 새롭게 입혔다.


‘보스’는 조직의 미래가 걸린 차기 보스 선출을 앞두고, 서로에게 보스 자리를 양보하는 세 남자의 엇갈린 욕망을 그린 작품이다. 중국집 요리사로 이중생활을 하는 식구파 2인자 순태(조우진 분), 탱고 댄서를 꿈꾸는 적통 후계자 강표(정경호 분), 그리고 역전을 노리는 3인자 판호(박지환 분)가 만들어내는 치열하면서도 유쾌한 한판 승부가 극의 중심을 이룬다.



지난 3일 개봉한 ‘보스’는 추석 연휴 내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9일 기준 누적 관객 155만 5088명을 돌파했다. 가볍고 따뜻한 웃음으로 꽉 막힌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오랜만에 정경호표 유쾌함이 스크린을 물들였다.


‘보스’ 속 강표는 초대 보스의 손자로, 조직의 적통 후계자다. 조직을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저지른 범죄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탱고를 접한 그는 폭력 대신 춤에 끌리게 되고, 출소 후에는 보스가 아닌 댄서를 꿈꾸는 인물이다.


대본 초고는 사실 강표가 피아노에 빠지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정경호는 촬영까지 주어진 4개월 동안 프로처럼 보여질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이에 라희찬 감독과 상의 하에 강표가 탱고에게 운명적으로 끌리는 설정으로 변경했다.


“마침 감독님이 탱고 레슨을 받고 계셨고, 저는 우연히 탱고바에 갔다가 춤을 보고 매력적이라고 느낀 참이었어요. 그래서 탱고로 가자고 제안했죠. 피아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옆에서 김대명 씨를 보며 너무 잘 알기도 했고요.(웃음) 그래서 ‘손보단 몸으로 때우자’ 싶었죠. “석 달은 걷기만 했어요. 걷는 게 제일 중요하대요. 그다음 두 달은 안무 완성 단계였죠. 탱고는 정말 위험할 정도로 매력적인 춤이에요.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탱고 신은 특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카메라 감독님, 액션 감독님이 몇 번씩 연습장에 오셔서 앵글과 선, 동선을 맞췄어요. 대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몸으로 표현하는 게 중요했어요.”


탱고를 배우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 춤이 가진 감정의 깊이를 잘 몰랐다. 하지만 스텝을 익히는 동안, 예상치 못한 깨달음이 찾아왔다.두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순간의 긴장감, 그리고 미묘한 호흡의 주고받음이 연기의 본질과 닮아 있었다.


“대사에도 나오지만, ‘하나의 심장 네 개의 다리’라는 말이 있잖아요. 연기랑 참 비슷하더라고요. 액션과 리액션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는 춤이에요. 예전엔 공원에서 낯선 사람끼리 춤추는 걸 이해 못했는데, 이제는 알겠어요. 낯선 환경에서도 새로운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게 탱고의 매력이더라고요.”


탱고의 감정과 호흡을 몸으로 익힌 그는, 자연스럽게 영화 속 액션에도 그 감각을 녹여냈다. 그렇게 서로의 움직임을 읽고 반응하는 리듬감 있는 액션신이 완성됐다.


“원래 대본에는 그냥 액션 신이었는데, 탱고를 배우고 나서 무술감독님과 지환이 형이랑 하나하나 새로 만들었어요. 서로 주고받으면서 더 풍성해졌죠. 그게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가 됐어요.”



촬영 현장은 유난히 끈끈했다. 배우들 간의 호흡이 단단하게 맞물리며, 서로의 연기를 북돋워주는 에너지가 오갔다.


“우진이 형만 처음이었고, 박지환 형은 알고 지냈고 배영이는 친구예요. 셋이 워낙 호흡이 잘 맞았어요. 대본 리딩도 치열하게 했고, 숙소도 같이 쓰면서 계속 얘기 나눴어요. ‘보스’가 제게 남긴 건 두 형이에요. 좋은 형들을 얻었고, 많이 배웠어요. 조우진 선배는 책임감이 정말 강해요. 작품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죠. 지환이 형은 제가 못하는 연기를 해온 분이라 함께하면서 많이 자극받았어요. 같이 있으면 정말 배울 게 많아요. 저는 늘 ‘누구와 하느냐’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같이 하는 사람이 좋으면 작품이 행복해요. 이번엔 오랜만에 영화라 더 신났고, 탱고를 배우는 과정도 즐거웠어요.”


그는 강표의 선택에 누구보다 공감했다. 조직의 후계자이지만 자기만의 삶을 찾으려는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이다.


“강표는 보스의 후계자지만 자유를 꿈꾸는 인물이죠. 저는 그게 멋있었어요. 가업을 잇는 것도 맞고, 꿈을 쫓는 것도 맞다고 생각해요. 결국 의지와 책임감의 문제예요. 강표도 춤에 대한 확고한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길을 간 거죠.”


업계에서 사람 좋기로 유명한 정경호다. 그와 호흡을 맞춘 후배 배우들은 한결같이 존경을 드러내고는 한다. ‘노무진 노무사’의 차학연,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의 송강이 정경호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후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 너무 예쁘고 자랑스러워요. 저는 죽을 힘을 다해 연기하는데, 그 친구들은 편하게 잘하니까 부럽고 대견하죠. 후배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다’고 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근데 저는 사실 철저히 계산하고 준비하는 스타일이에요. 준비가 완벽해야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거든요. 겉으로 자유로워 보여도 사실은 머릿속은 계산 중이에요.”


소녀시대 수영과 13년째 연인이기도 한 그는, 배우로서의 수영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작품 이야기를 따로 나누지는 않지만, 연기에 임하는 성실함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조언 같은건 따로 하지 않아요. 그런데 진짜 열심히 해요. 그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늘 다음 작품이 기대돼요. 점점 연기가 깊어지고,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2004년 데뷔한 정경호는 여전히 자신이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한다. 연기를 통해 좋은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스스로를 단단히 채우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신원호 감독님이 ‘너의 장점은 선한 영향력’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앞으로도 그런 에너지를 전할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동시에 이제는 저를 채우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기를 하다 보면 쉽게 소비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걸 막으려면 제가 가진 걸 채워야 하더라고요. 지식이든 체력이든 마음이든요. 그래야 슬기롭게 소비할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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