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뷰티 브랜드 ‘유아른’ 양지영 대표 인터뷰
팔리는 상품을 넘어, 신뢰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시대. 브랜드 커머스의 중심에는 이제 자사몰이 있다. 자사몰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일군 창업자들의 여정을 들여다보았다. 성과보다 먼저 찾아온 망설임, 시행착오 속에서 내린 선택, 그리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쌓아올린 과정까지.
170만 구독자를 보유한 게임 유튜버가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었다. 4년 후, 연매출 30억 원에 재구매율 46%라는 숫자로 답했다. 팬덤 마케팅을 의도적으로 중단하고, 제품력 하나로 승부를 걸었다. 자사몰 매출만 70%에 달하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고, 일본 최고 유통사가 먼저 명함을 건네왔다. 화장품 전문가가 아니어도, 인정받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한 비건 뷰티 브랜드 ‘유아른’의 이야기다.
알레르기가 만든 우연한 시작
양지영 대표의 화장품 개발 여정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서 시작됐다. 정수기 문제로 특정 성분에 노출되면서 심한 알레르기가 생겼고, 화장품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방송을 해야 하는데 메이크업을 못 하니까 정말 곤란했죠." 그때부터 성분표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취미 삼아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진짜 전환점은 코로나 시기에 찾아왔다. 마스크 착용 때문에 생긴 남편의 여드름 고민에 직접 만든 비건 화장품을 건넸는데, 효과가 놀라웠다. "그 순간 '이거다!' 싶었어요. 저한테도 필요하고 남편한테도 필요한 거니까요." 단순히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사업화를 결심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시중 제품들을 살펴보니 아쉬운 점들이 눈에 밟혔다. 화장품 클래스에서 처음 접했던 비건 원료는 꽤 비싼 축에 속했는데, 당시엔 '비싸니까 좋은 것'이라고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펑펑 쓰고 싶어 찾아보니, 가격은 여전히 비쌌고 용량은 애매했으며 함량 공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꼼꼼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던 양 대표는, 남이 만든 제품에 의존하기보다 차라리 내가 쓰고 싶은 제품을 내가 만들겠다는 쪽을 택했다. “비록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비전문가라서 더 깊게 파고들 수 있었어요”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파는 성격 덕분에 모르는 용어를 찾아보고, 새벽까지 논문을 뒤지며 성분을 공부했다. 중요한 건 브랜드에 대한 진심과 그걸 구현해내는 실행력이었다. 그저 잘 팔리는 화장품이 아니라, 정말 ‘내가 쓰고 싶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제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 날, 브랜드명은 뜻밖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아기가 자꾸 얼굴을 만지고 손을 입에 대는데, 전용 화장품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의 고민을 듣는 순간, 양 대표는 문득 생각했다. ‘어른도 아이도 함께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바로 ‘유아른’이었다. 누구나 안심하고 쓸 수 있는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마음이, 이 이름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정제수 0%… 고집이 만든 완판 신화
베스트 1위 제품인 '사철쑥 추출물 에센스'는 유아른의 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제수가 단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고, 추출물이 96%나 함유된다. 일반적으로 공장에서 추출물에 정제수나 다른 성분들을 첨가하는 관행과는 정반대의 선택이었다. “추출물 그 자체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화장품이 물로 희석해 원가를 낮추는 것과 달리, 유아른은 원액 그대로의 효능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이를 위해 여러 공장에서 20여 가지 추출물을 받아 직접 테스트했다. 같은 쑥이라도 나이가 든 쑥과 어린 쑥, 어성초까지 모두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저는 제 자신이 테스터예요. 다른 사람의 결과는 전달받은 것이지 제가 직접 느낀 게 아니잖아요.”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해서 가장 좋았던 사철쑥을 최종 선택했다. 예민한 자신의 피부로 직접 확인하고, 확신이 설 때까지 반복해서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런 까다로운 과정 때문에 유아른의 제품 출시 속도는 의도적으로 느리다. 직접 써보고 확신이 서야 출시하다 보니 많은 제품을 빠르게 낼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전제품 세트 구매 비율이 27.5%에 달하며, 20만 원대 세트도 잘 팔린다. “여러 개를 같이 사용해도 되게끔 루틴을 완전히 만들고 시작했거든요.” 한 브랜드로 전체 스킨케어를 완성하려는 고객들이 늘어났다. 제품 하나하나가 서로 시너지를 내도록 설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료에 대한 그녀의 고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장에서 같은 성분이라도 A, B, C 등급으로 나뉘는데, 직접 써보면 확실히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맨날 비싼 것만 골라낸다고 얘기를 들어요.” 하지만 ‘나 같은 예민한 분들이 브랜드를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좋은 등급의 원료만 고집하고 있다. 원가 부담이 커지더라도 품질을 타협하지 않는 것이 유아른의 원칙이다.
2021년 첫 제품 출시는 폭발적이었다. 1만 5천 개를 준비했는데 24시간도 안 돼서 완판 됐다. 진짜 테스트는 그다음이었다. 취소 물량이 20~30% 발생했지만, 일주일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취소 물량이 풀리자마자 기존 구매자들이 재구매로 몰려든 것이다. “일주일 써보고 너무 마음에 드니까 '두세 달 뒤에 다시 나온다는데 그 사이에 내가 이걸 견딜 수 있을까?'라면서 재구매에 나선 거죠.” 이미 제품을 경험해 본 고객들의 자발적 재구매였다. 이런 신뢰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현재 브랜드 전체 재구매율은 45.6%에 달한다. 올해 4월 출시한 액체 드라이샴푸도 8월 말까지 1만 4천 개가 넘게 팔려나갔다.
팬덤을 넘어 진짜 브랜드로
제품 론칭 이후 양 대표가 가장 고민한 부분은 브랜드의 독립성이었다. 처음 2년간은 마케팅비를 전혀 쓰지 않고 크리에이터로서의 팬덤을 활용해 개인 계정으로만 홍보했지만, 이는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다. 본인이 없으면 마케팅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제 영향력으로 브랜드를 알리는 게 효과적이었지만, 그게 오히려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2년 전부터 개인 홍보 의존도를 줄이고 전문 마케터를 영입했다. 크리에이터 협업에서도 독특한 전략을 구사했다. 뷰티 전문가가 아닌 일상 크리에이터들과의 협업을 시도한 것이다. 게임 크리에이터 한동숙과의 남성용 스킨케어 세트 라이브 커머스에서는 억대 매출을 기록했고, 일상 및 뷰티 크리에이터 지원과 쑥 에센스, 드라이 샴푸 앰플을 홍보했을 때도 전문 뷰티 크리에이터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뒀다. “처음에는 양띵을 아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지만, 팬덤을 넘어 더 많은 분들에게 신뢰받는 브랜드로 자리잡고 싶었어요. 이제는 대표가 양띵인 걸 모르는 분들이 많이 생겨서 신기해요.”
현재 유아른의 연매출은 30억 원 규모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자사몰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현재 50% 수준이지만 한때는 70%까지 달했다. 뷰티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인 수치다. “뷰티 브랜드에서는 꿈의 시스템이죠. 공식몰에서 수익이 나는 게 제일 좋거든요.” 자사몰 중심 전략은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했고, 브랜드 경험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특히 아임웹을 기반으로 진행 중인 다양한 자사몰 운영 전략이 효과를 거뒀다. 상품 리뷰 기능을 적극 활용하고, 최근에는 금액대별 사은품 시스템도 도입했다. 그 결과 전월 대비 평균 구매 금액이 5% 상승하고 월 매출이 20% 증가했다. 재구매율 관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고객의 구매 주기를 분석해 맞춤형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한정 쿠폰을 발행하는 방식이다. 프로모션 소식은 카카오톡 친구톡으로, 쿠폰 정보는 알림톡으로 보내는데 구매 전환율이 높아 효과적이다. 데이터 기반으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유아른의 자사몰 중심 전략은 고객과 직접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고, 팬덤에 기대지 않는 독립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 든든한 토대가 되고 있다.
일본 S급 유통사가 먼저 찾아온 이유
올해부터 본격화한 해외 진출에서도 흥미로운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홍콩, 대만, 일본으로 수출하며 각 시장의 특성을 파악하는 중이다. 내년부터는 중동 쪽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해외 시장은 국내와 다른 피부 고민과 선호도를 가지고 있기에, 각 시장을 직접 경험하며 유아른의 제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관찰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의 경험은 영화 같았다. 지난 1월 도쿄 유라쿠초에서 열린 '마루이 백화점 팝업스토어'에 참가했는데, 한국 브랜드 8개가 함께 부스를 운영하는 자리였다. 운영진 중 대표가 직접 현장을 지킨 건 양 대표가 유일했다. “핸드크림을 들고 고객분들에게 다가가, 직접 발라드렸어요. 일본 분들은 테스트에 익숙하지 않아서 냄새만 맡고 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제품을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양 대표는, 현장에서 먼저 말을 건네며 손등에 제품을 발라주고 사용감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제품을 직접 써보고는 명함을 건넸다. 한국에 돌아와 유통업체에 그 명함을 보여줬더니 깜짝 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어디서 받아온 명함이냐 물으며 놀라셨어요. 알고보니 일본의 S급 화장품 전문 유통업체인 '이다그룹'이었거든요. 소개서도 안 받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꿈의 유통사로 불릴 정도였어요.” 직접 체험한 제품의 품질만으로 최고 수준의 유통업체와 연결된 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아른은 대만과 홍콩에서도 제품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만에서는 현지 소비자가 액체 드라이샴푸 사용 전후 모습을 SNS에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졌고, 홍콩 바이어는 5개 제품만 구매하려다가 설명을 듣고 8개로 늘렸다. 한 달도 안돼 재주문까지 들어왔다.
유아른이 추구하는 건 화려한 트렌드가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제품은 항상 조금이라도 더 좋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래서 목표는 단순하다. “유아른이라면 믿고 쓸 수 있어”라는 말 한마디를 듣는 것. “요즘 다른 브랜드들이 '개발에 몇 년 걸렸다'고 마케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진짜거든요. 정말 좋은 제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거라서 마케팅 멘트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양 대표는 자신만의 경쟁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 못지 않게, 미친 취미를 가진 사람이 가끔은 더 전문적일 때도 있다고 봐요. 교수님보다 뷰티 크리에이터가 최신 트렌드를 더 잘 아는 것처럼요.” 단순한 사업이 아닌 정말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진심에서 출발한 브랜드이기에, “시기와 상관없이 성공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게임 유튜버에서 화장품 브랜드 대표로, 팬덤에 의존하지 않는 진짜 브랜드로 성장한 유아른. 그 중심에는 '진심'이라는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었다. 그 진심이 만든 연매출 30억 원의 성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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