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동아줄[조남대의은퇴일기(84)]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0.21 14:11  수정 2025.10.21 14:11

어느 날 무심코 울린 전화 한 통이 내 일상의 수면을 일렁이게 했다. 그날 나는 말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떨고 있었다. 사람의 말은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기도 하고, 때론 심장을 짓누르는 납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는다. 한마디의 말이 꽃잎처럼 위로가 되기도 하고, 칼끝처럼 아프게 마음을 찌르기도 한다.



병원에서 온 전화 한 통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

‘02’로 시작된 전화번호다. 여느 날 같으면 피했을지 모를 번호였다. 선거를 앞두고 하는 여론조사이거나,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로 여겼지만, 어쩐지 손가락이 눌러졌다. “병원에 한 번 들리셔야겠어요. 언제 괜찮으신가요?” 며칠 전 피검사를 했던 병원이다. 이전에도 건강검진을 하거나 일반검사를 여러 번 했지만, 병원에서 먼저 연락 온 적은 없었다. 덜컥 겁이 난다. 지난번 검사 후 담당 의사는 “별일 없으면 전화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말이 불현듯 마음속에서 부메랑처럼 돌아와 날 찔렀다. 짧은 한마디가 심연의 공포를 끌어 올렸다. 이 전화가 혹여 내 생의 궤도를 바꿀지도 오른다는 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피 검사 하는 모습 ⓒ

암은 아닐까. 요즈음은 피검사로도 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데. 떠올리고 싶지 않은 단어가 목울대를 넘어온다. 예전에 대장암 3기를 이겨내고 열심히 활동 중인 문우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나도 그렇게 견뎌낼 수 있을까. 자신을 다독이려 애썼지만, 마음 저편엔 어둠이 슬그머니 자리 잡는다. 아내에게 말할까 고민하다 결국 참았다. 그녀는 나보다 더 예민하다. 말 한마디에 밤잠을 설칠 것이 뻔하다. 평소엔 ‘요즘 의술이 좋아 걱정할 게 없다’라며 쉽게 말했지만 정작 나에게 닥치자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도 온갖 좋지 않은 상상으로 밤이 깊도록 뒤척였다.


병원에 가기 전날 결국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하지만, 눈빛은 놀라고 있었다. 내가 걱정할까 봐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일상복 차림의 담당 의사는 미덥도록 평온하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해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잔뜩 긴장한 환자를 더 편안하게 해 줄 것 같았다. 지난번 검진 후에도 나는 심각하게 듣고 있는데 “잠자기 전에 약 한 알을 복용하면 좋아질 거예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부작용도 없는 등 전혀 문제가 없다는 투로 쉽게 말을 하자 심적으로 훨씬 안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의사가 검사한 수치를 살펴보며 환자에게 설명하는 장면 ⓒ

가벼운 인사를 한 후 의자를 당겨 마주 앉았다.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린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검사 결과를 체크하더니 “빈혈 수치가 조금 낮아졌다”라고 한다. 또 다른 무엇이 있나 살펴보고는 “신장기능검사 수치가 정상범위를 조금 벗어났다”고 하고는 눈을 뗀다. “그것뿐인가요?” 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안도인지 허탈인지 모를 감정이 뒤섞어 “이 정도면 굳이 전화 안 주셔도 될 것 같은데요” 하자. “의사는 환자에게 정확히 설명해야죠”라고 답한다.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맞는 말이다. 무수한 상상을 불러왔던 건 결국 한마디 말로 나의 감정이 좌충우돌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 순간 새장 속에 갇혀 있던 새가 철창을 뚫고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이후 아내는 끼니때마다 빈혈에 좋다며 고기반찬을 차려낸다. 나의 건강을 걱정하며 건네는 말들이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다가왔다.


혈액 관련 검사 수치 ⓒ

문득 아버지가 떠오른다. 칠순 무렵에 대장암 수술을 받고 완치된 뒤, 담도암이 발견되어 다시 치료를 받았다. 두 번째는 암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구급차를 타고 좀 더 의술이 좋다는 서울의 병원으로 모셨다. 당시 항암 치료로 유명한 국립암센터로 들어가면서 병원 간판을 보고야 자신의 병이 암이라는 것을 아신 것이다. 그 이후 눈에 띄게 상태가 나빠지셨다. 병명을 알기 전까지는 희망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괜찮아요”,“좋아질 거예요” 같은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암이라는 무게만 껴안고 대구로 돌아온 아버지는 곧 삶의 줄을 놓아버리셨다. 나도 그런 처지였다면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을까. 병환이 심각할 경우 환자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고 보호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래서인가 보다. 서울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 병상 옆에서 위로의 말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했던 기억은 지금도 가슴 한쪽에 짙은 그림자로 남아 있다.


국립암센터 입구ⓒ

말은 때때로 병보다 날카롭고 약보다 더 좋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웃에 사는 의사로부터 자기 병원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항암 치료를 받는 한 여성 환자는 매번 지치고 초라해지는 감정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병원 봉사자가 건넨 한마디, “오늘도 오셨네요. 참 용기 있으세요. 당신은 지금 잘 버티고 있어요” 라는 짧은 말이 큰 힘이 되어 결국 완치할 수 있었단다. 법정 스님은 “말과 침묵”이라는 산문집에서 “말 한마디가 꽃이 되고, 말 한마디가 칼이 된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말은 때로 사람을 살릴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병원 봉사자가 항암치료 받고 있는 환자를 격려하는 모습 ⓒ

인생의 고비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우리를 지탱해 준 것도 결국 ‘한마디 말’이 아닐까. 때로는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심연의 불안을 걷어내고, “용기 있으세요”라는 격려는 겁내지 않고 끝내 버티게 한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이의 마음에 햇살처럼 내려앉는다. 우리는 무심코 말하기보다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건네는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생의 동아줄일지도 모를 테니까.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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