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데일리안 DB
트럼프 대통령이 좌충우돌한다. 전 세계는 아닐지라도 서방 진영 왕으로 군림한다. 이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할지 어떨지는 역사가 보여줄 것이다.
한국은 군사동맹일 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인권 가치를 공유하고, 경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함께 가야만 하는 관계이다. 적어도 통일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해야 하고, 통일 자체도 미국의 지지·도움 없이는 어렵다.
하지만 트럼프의 움직임이 한국에 줄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은 자못 심각하다. 한국과 미국이 아니라, 한국과 트럼프 간 관계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첫째, 트럼프는 김정은의 ‘2국가’ 주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정확히 말해 한반도 통일을 더욱 어렵게 한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날 수 있고, 문제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만나야 한다. 다만 만남의 내용·결과는 물론이고 만남 자체가 가지는 의미, 만남 자체로 각자가 얻는 이익의 크기도 면밀히 비교·평가해야 한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1차 집권기에 싱가포르(2018년 6월), 하노이(2019년 2월), 판문점(2019년 6월) 세 번이나 만나 세기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하노이 정상회의에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김정은에게 한 방 먹였다, 큰 교훈을 주었다 자축했을 것이다. 모두 자신의 정치적 상징조작에 활용했다.
그러나 사실 김정은도 못지않은 승자였다. 대북 제재 완화, 북·미 관계 개선이란 목표를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김정은은 세계 최강의 미국 대통령과 세 번이나 만나면서 국제정치 무대에, 정상 국가의 수반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세계 최강 미국과 대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태어날 때부터 내핍·동원·통제를 강요받아 뼛속까지 최강 미국이 각인된 북한 주민이다. 김정은이 그 미국 대통령과 당당히 마주 앉아 자웅을 겨루는 모습에, 할아버지 김일성도 아버지 김정일도 하지 못한 대사(大事)를 세 번이나 해낸 김정은에 그들은 감격·감동·감읍했을 것이다.
김정은의 권력 안정에 트럼프가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만남을 중재한 문재인의 공로도 혁혁했다. 2국가 주장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만남 자체를 생각해야 한다. 김정은을 만나는 것이 국내 정치적으로 자신에 도움이 되는가, 이미 세계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는데 여기에 김정은과 함께하는 그림이 더 필요한가.
트럼프가 김정은과 다시 만남을 고대하는 상황도 문제다. 언제부터 미국 대통령이 북한 독재자를 만나고자 먼저 손 내미는 것은 물론이고, 만나지 못해 안달하는 듯한 상황을 연출했던가. 그 반대가 정상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날 것이다. 스포트라이트가 계속 터져야 삶에 의미를 가지는 그가 ‘쇼츠(Shorts)’ 하나 더 만들 듯 혹은 내년 노벨 평화상을 위해서도 무언가 일을 벌여야 한다. 김정은을 만나면 관광 투자 등 여러 경제 관계 형성도 고려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트럼프의 머릿속에, 2023년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전임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정상과 합의하고 공표했던 ‘한반도 자유·평화·통일(a unified Korean Peninsula that is free and at peace)’이 과연 존재할까.
그의 내면을 알 수 없지만, 김정은과 만남을 고대하는 트럼프에게 ‘한반도 두 개의 Korea 정책’이 가득 묻어난다. 한국과 다른 별개의 국가로 북한을 다루고 접근한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한국이 상수(常數)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의 시혜적 은혜로 우리가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가끔 가질 뿐이다.
둘째, 북핵 폐기를 사실상 물 건너가게 한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는데 북핵이 빠질 수가 없다. 김정은이 기대하는, 요구하는 핵무기 보유국 인정을 바탕으로 한 핵 군축 협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내민 손을 김정은이 잡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은이 트럼프와 만난다면, 그 자체가 이미 김정은의 의도대로 핵 대화가 진행될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은데 트럼프의 ‘쇼’에 다시 들러리로 설 김정은이 아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둘이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향후 실무적 미·북 대화에서, ‘군축 협상’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북한은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협상 내용도 북핵의 일부 동결과 대북 제재 완화(김정은이 대북 ‘제재 풀기’ 즉 제재 전체의 폐기를 주장하는 마당에 제재의 핵심 조치가 제거될 가능성이 크다)가 거래될 것이다.
당연히 현 단계로부터 북핵 완전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구체화 된 로드맵에 김정은이 동의할 리 없다. 핵 폐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위반하는 ‘반헌법적’이라 공언한 김정은이다.
정상적이라면 임기가 3년 남은,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지면 바로 레임덕에 빠질 트럼프에게 북핵 폐기라는 원대하고 야심 찬 장기 전략이 가슴을 차지하고 있을까. 중동과 유럽 평화 협상에서 보여주듯이 잠정적·단기적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이익 계산만이 트럼프의 머릿속을 구르고 있지 않을까.
결국 트럼프는 의도했던 그렇지 않든 이재명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준다. 남과 북이 사실상 두 개의 국가이고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은 이미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다,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기 전에 일단 어떻게든 그 속도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재명과 정부의 뜻을 트럼프가 앞서 실천하려는 형세다.
트럼프의 움직임이 이재명 및 정부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임에도 이재명과 정부의 대북 정책이 트럼프로 인해 탄력을 받아 추진될 수 있다. 김정은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게 할 수 있다.
통일, 북핵 폐기를 지향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에 트럼프의 움직임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평화라는 이름 아래 통일이 아니라 공존을, 북핵에 대한 인정과 대화를 고대하는 이재명과 정부에게는 트럼프가 복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의 경제 분야에서 일방적 요구, 안보적으로 주한 미군의 역할 변화 압박은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이들의 자주노선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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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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