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북극해 통해 유럽으로 가는 ‘빙상 실크로드’ 본격 가동
中 하이제항윈 “내년 여름부터 북극항로 정기적으로 운항”
운송 기간의 획기적 단축과 지정학적 리스크 회피가 이점
해빙 변동과 돌발적인 기상변화에 따른 定時 보장 힘들어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1월1일 베이징의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북극항로 개발과 협력을 강화해 ‘빙상 실크로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화/뉴시스
중국이 북극해를 경유해 유럽으로 가는 해상 항로를 개척하며 ‘빙상 실크로드’(冰上絲路·Polar Silk Road)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한다. 중국이 운송 기간의 획기적인 단축과 지정학적 위험 회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새로운 해상 경로인 북극항로 선점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리샤오빈(李曉斌) 하이제항윈(海傑航運·영문명 SEALEGEND)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내년 여름부터 중국과 유럽을 잇는 북극항로를 정기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첫 상업운항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고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등이 지난 21일 보도했다.
리 COO는 "우선 항행이 가능한 여름철 주 1회, 또는 격주 1회 운항 체계를 시작할 것"이라며 “이렇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얼음 해역도 통과할 수 있는 선박 건조능력 강화해 연중 항행이 가능한 중국~유럽 북극항로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013년 제안한 ‘일대일로’(一带一路·Belt and Road Initiative·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구상의 일부로 2018년 ‘빙상 실크로드’ 전략을 공식화하고 북극항로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제항운은 앞서 지난 주말 중국~유럽 북극항로에 컨테이너선 ‘이스탄불 브리지호’를 띄워 성공적으로 운항을 마쳤다. 4890개 컨테이너를 실은 이 화물선은 지난달 23일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저우산(舟山)항을 출발해 영국과 독일 등을 각각 거쳐 19일 최종 목적지였던 폴란드 그단스크항에 도착했다.
운송 기간은 기존 해상 경로보다 대폭 단축됐다. 닝보에서 출발해 북극항로를 거쳐 첫 기항지인 영국 펠릭스토우항 도착까지 20일 걸렸다. 당초에는 운항 기간을 18일로 예상했지만 이틀 늦어졌다. 중국~유럽 해상 운송 때 기존 수에즈운하 항로는 40일, 희망봉 경유 항로는 50일가량 각각 소요된다.
중국 컨테이너선 ‘이스탄불 브리지호’가 지난달 23일 중국 저장성 닝보시 저우산항을 출발해 북극항로를 통해 20일 동안 운항한 끝에 이달 13일 밤 영국 펠릭스토우항에 도착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25일가량 걸리는 중국~유럽 화물열차보다도 빠르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북극항로를 경유하면 운송 기간 단축 외에도 ‘화약고’ 중동 정세 등 기존 항로가 안고 있던 지정학적 위험 요소를 피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도 있다.
북극항로는 지난 수십 년간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기온이 상승해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생겨난 해상 운송로다. 러시아 시베리아 북부를 경유하는 ‘북동항로’(NSR)와 캐나다 북부를 지나는 ‘북서항로’(NWP)로 나뉜다. 북동항로는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지나가는 만큼 사실상 러시아가 관할하고 있다. 러시아가 일찌감치 항만과 쇄빙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활용도가 높아졌다.
반면 북서항로는 얼음 조건이 좋지 않은 데다 캐나다가 인프라를 거의 구축하지 않은 탓에 현재 북극항로는 사실상 북동항로만 이용이 가능하다. 북극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장 짧은 항로다. 운송시간 단축은 물론 대량 운송이 가능해 운임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데다 선박 연료 사용과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는 만큼 상업적 가치가 많은 편이다.
특히 북극항로는 열에 민감한 상품 운송에 적합한 덕분에 중국의 새로운 수출 주력 상품으로 떠오른 리튬 배터리·태양광·전기자동차, 이른바 ‘신(新)3대 수출품' 수출에 유리하다. 실제 닝보 해관(海關·세관)에 따르면 이번 '이스탄불 브리지호'에도 '신3대 수출품' 화물이 대량 선적됐다.
인민일보 산하 영자지 글로벌타임스(GT)는 "북극항로는 시간·온도 등에 민감한 화물에 적합하고 리튬 전자제품과 태양광 제품, 신에너지차량 등 중국의 ‘신3대 수출품’의 수출 확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또 운송 기간 단축으로 기업들이 재고 보유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북극항로는 글로벌 공급망 안정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중요한 해상 통로인 말라카 해협과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는 그동안 지정학적 리스크로 자주 차단되는 바람에 물류망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한 탓이다.
양린성(楊林生) 중국과학원 지리과학·자연자원연구소 박사는 "북극항로의 90%가 러시아를 통과하고 있다"며 "중·러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북극항로는 다른 항로에 비해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게 낮다"고 설명했다.
지난 19일 최종 목적지 폴란드 그단스크항에 도착한 ‘이스탄불 브리지호’가 컨테이너를 하역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여기에다 북극 해저에는 석유, 천연가스 등이 자원도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북극항로를 통제하는 것은 곧 자원과 해상 요충지의 헤게모니(패권)을 장악하게 되는 셈이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는 중국으로선 유럽연합(EU)과의 해상 운송의 중요도가 더 커졌다.
추이훙젠(崔洪建)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유럽연구소장은 “불안한 글로벌 무역환경에도 불구하고 중국·EU 간 무역은 여전히 활발하다”며 “기존의 해상 운송로와 중국~유럽 화물열차 이외에 북극항로까지 더해지면 중·EU 간 교역에 안정성을 더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북극항로는 상업적 가치와 지정학적 이익이 결합된 해상로”라며 “중국의 무역 범위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방의 해운 영향력에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리전푸(李振福) 다롄(大連) 해사(海事)대 교수도 “지정학적 관점에서 북극항로를 선점하는 나라가 세계 경제와 국제 전략의 새로운 회랑을 장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중국은 이전부터 북극항로의 개발과 경제 협력을 위해 적극적 행보를 보여왔다. 시진핑 주석은 2017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빙상 실크로드' 공동 건설을 처음 제안했다.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북극항로를 활용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북극까지 확장한다는 국가 비전인 빙상 실크로드는 2028년 1월 중국 정부가 북극정책 백서를 발표하면서 공식화됐다.
물론 북극항로가 단기간 내 기존의 중국~유럽 운송로를 대체하기엔 리스크도 있다. 북극항로는 해빙 변동과 급작스러운 기상변화로 인한 예측 불가능성이 여전히 커서 정시성이 보장되기 힘들다. 중간에 컨테이너를 내리고 실을 상업항이 없는 데다 쇄빙선·내빙선 제작 비용, 북극 연안의 대형 서비스 항만 인프라, 탐색 구조 등의 서비스가 부족해 조난 시 구조가 어려운 만큼 해상 보험료도 높은 편이다. 다시 말해 “짧지만 오히려 비싼‘ 항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컨테이너선과 쇄빙선이 과도하게 북극항로를 운행하면 빙하가 녹는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으며, 선박의 소음이나 유출물로 인한 생태계 파괴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 해운사의 북극항로 운영에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이유다. 북극 생태계·주민 보호단체 연합인 ‘클린 북극 동맹’(Clean Arctic Alliance)은 이스탄불 브리지호 운항이 강력한 오염 물질을 배출해 북극 환경을 빠르게 파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자료: 외신종합
물론 하이제항윈은 북극항로 운항 때 탄소 배출이 수에즈항로보다 30%, 희망봉 항로보다 50%가량 감소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클린 북극 동맹 수석자문인 시안 프라이어 박사는 “북극은 해빙 위험으로 항로로 거의 개발되지 않았고, 제대로 측량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만약 북극 운항으로 강력한 오염물질인 블랙카본(그을음·불완전 연소로 생기는 탄소 입자) 배출이 늘어나면, 북극항로를 통한 탄소 배출 감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클린 북극 동맹은 “새로운 북극항로를 개발하기에 앞서 반드시 환경영향평가를 거치고 최상위 수준의 환경보호 조치를 보장해야 한다”며 “모든 선박이 블랙카본 배출이 낮은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북극항로는 기존의 운송로를 대체·보완하는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말테 훔퍼트 미국 북극연구소장은 “수에즈 운하에 해마다 1만척가량의 선박이 통과하는 것과 비교하면 북극항로 운송량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훔퍼트 소장은 그러나 “ 30~40년 후 얼음이 30%나 40%, 또는 50% 더 녹는다면 갑자기 6개월 동안 얼음이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며 “북극항로가 내일 당장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순 없겠지만 중국~유럽 해상로의 매우 중요한 보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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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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