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무대, 서울예술단 ‘전우치’가 남긴 화려한 잔상 [D: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11.02 11:32  수정 2025.11.02 11:32

서울예술단의 2025년 하반기 신작 창작가무극 ‘전우치’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지난달 25일 초연의 막을 올렸다. 작품은 조선 중종 시대의 실존 인물 전우치를 모티브로, 전통 설화에 신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창작한 판타지 극이다. 환술과 도술로 부패한 권력을 응징하던 영웅의 이야기는, 도술보다 인간적 고뇌와 성장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서사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예술단

초연인 만큼 ‘전우치’는 서울예술단이 가진 역량을 무대 위에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압도적인 시각적 성취다. 무대 연출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을 만큼 화려하다. 근래 서울예술단이 선보인 작품 중 가장 조명을 화려하고 아낌없이 사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상계와 저승 세계를 오가는 무대는 다채로운 색감의 조명과 세밀한 세트 변화, 특수효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전한다. 옥황상제와 염라대왕, 천상계 인물들이 보여주는 의상은 한국적인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돋보인다.


또한 불로불사의 복숭아 ‘반도’를 의인화하여 표현한 안무나 앙상블 배우들이 보여주는 한국적 선이 돋보이는 군무는 무대를 가득 채우며 창작가무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징, 꽹과리 등 전통 악기를 활용한 음악과 마당놀이처럼 객석과 호흡하려는 시도 역시 긍정적인 부분이다. 이처럼 기술적인 성취와 시각적인 만족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처럼 화려한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극의 전반적인 흐름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진다. 이번 작품 속 전우치는 우리가 알던 쾌활한 영웅이라기보다, 스승의 죽음과 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문제는 이러한 전우치의 내면적 성장에 오롯이 집중하기보다, 옥황상제와 염라대왕, 서화담 등 신(神)들과 주변 인물들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들의 서사를 나열하는 데 많은 비중이 할애된다는 점이다.


ⓒ서울예술단

관객의 시선은 분산되고,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전개되면서 주인공 전우치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느껴진다. ‘전우치’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정작 전우치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작품이 가진 서사적 확장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직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는 플롯들이 공연이 거듭되며 유기적으로 엮인다면, 훨씬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서사의 불안정함은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울예술단 단원들의 앙상블은 여전히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지만, 주요 인물들의 연기는 아직 정돈되어 있지 않은 인상이다. 특히 극을 이끌어가야 할 타이틀롤, 전우치 역의 손동운은 다소 힘에 부치는 듯한 모습이다. 장난기 넘치는 도사에서부터 세상을 구하려는 영웅의 고뇌까지 폭넓은 감정선을 소화해야 하지만, 아직은 그 무게감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초연이기에 아직은 서사적인 밀도나 인물 간의 관계 설정이 더욱 촘촘해져야 할 지점들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지만, 화려하고 감각적인 무대 연출이라는 훌륭한 토대를 성공적으로 마련한 만큼 추후 작품이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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