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서 에베레스트·남산으로…손가락은 거들뿐 [갤럭시 XR 체험기]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5.11.09 06:00  수정 2025.11.09 06:00

우주비행사 헬멧 닮은 디자인, AI가 안내하는 똑똑 비서형 XR

에베레스트도 남산도 한눈에…몰입감은 완벽, 디테일은 살짝 아쉬워

발열·무게·세팅은 허들…메타·애플 누르고 보편화 앞당길지 관심

삼성전자 모델들이 삼성 강남에서 '갤럭시 XR’을 체험하는 모습ⓒ삼성전자

밖에서 착용하면 한순간에 시선을 사로잡는 인싸템. 메타와 애플의 명성을 뒤쫓는 삼성전자의 야심작 '갤럭시 XR(갤럭시 엑스알)' 체험용 기기와 사흘을 동고동락했다.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묵직한 상자를 열자 본체와 글래스 커버, 전용 배터리 팩, 전원 케이블, 충전기, 렌즈 클리닝 천이 가지런히 들어 있다. 우주비행사 헬멧처럼 시야를 꽉 채우는 디스플레이와 메탈 소재는 고급스러운 인상을 준다.


우주비행사 헬멧을 닮은, 미래형 인체공학 디자인

545g 무게의 본체는 작은 바나나 한 송이와 비슷하다. 디스플레이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지만 이마·후면 쿠션이 장착돼 후면 밴드 다이얼만 잘 조이면 착용감은 나쁘지 않다.


전원 커넥터에 케이블을 연결하고 상단 버튼을 길게 누르니 눈 구멍이 뚫린 영화 '조로'의 마스크를 닮은 아이콘이 화면에 뜬다.


곧바로 화면과 눈 사이의 거리와 해상도를 측정하기 시작한다. 렌즈 주변이 미세하게 움직이며 코와 이마 사이에 디스플레이가 올바르게 위치했는지 스스로 판단했다.


핀치 튜토리얼 학습, 구글 로그인과 삼성 계정 연동까지 마치자, 마침내 스마트폰 화면과 같은 애플리케이션 창이 눈 앞에 생성된다. 핀치는 엄지와 검지를 모아 공중의 사물을 집거나 조작하는 제스처 컨트롤 방식이다.


삼성 '갤럭시 XR' 정면. 전용 배터리 팩, 전원 케이블이 있어야 작동된다.ⓒ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말만 하면 데려다줌"…산도 맛집도 안내하는 AI 비서

제미나이 앱을 클릭한 뒤(상단 버튼을 눌러도 동일하게 실행된다) "에베레스트산으로 데려다줘"라고 말하자 몇 초 만에 에베레스트산이 지도에 표시된다.


지도 한켠의 '이머시브 뷰(Immersive View, 몰입)'를 클릭하자 마치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오른 듯한 장관이 360도로 펼쳐진다. 실제로 등산 장비를 착용하고 등반하는 듯한 느낌이다.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표시되는 주변 산 이름들도 인상적이다. 근처 '힐러리 스텝(Hillary Step)'을 묻자 "에베레스트 남동쪽 정상 능선에 있는 암벽 지대로, 높이는 약 8790m"라며 "2015년 네팔 대지진 이후 붕괴됐다"고 설명해준다.


"비슷한 높이의 산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K2(8611m), 캉첸중가(8586m), 로체(8516m)를 소개했다. "K2로 데려가줘"라고 하니 곧장 지도가 K2 위치로 전환된다. 다만 360도로 구현된 사진을 낮이나 밤 시간대로 바꾸거나 음악을 추가하는 기능은 지원하지 않는다.


이번엔 남산으로 넘어가 주변 맛집을 검색해봤다. "주변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하자 5곳이 표시됐다. 30·40대가 좋아할 만한 곳으로 다시 추천해달라고 하자 3곳으로 좁혀졌다.


그 중 한 곳을 언급하니 "런치 코스는 1인당 12만원에서 14만원, 디너 코스는 1인당 18만원에서 21만원으로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특별한 날 분위기를 내기에는 좋은 곳"이라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남산과 관련된 유명한 인물을 묻자, 안중근 의사를 거론하며 그의 독립운동 행적을 자세히 소개해준다. 이쯤되면 산책 코스도 가능하겠다 싶어 외국인들과 노는 하루 코스를 부탁하니 오전 2시간은 남산 케이블카, 남산 팔각정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오후에는 남산골한옥마을, 남산타워를 둘러보라고 추천한다.



삼성 '갤럭시 XR' 측면. 전용 배터리 팩, 전원 케이블이 있어야 작동된다.ⓒ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쥬라기 월드’부터 바닷속까지…몰입감은 완벽, 디테일은 살짝 허술

XR 기기 하면 몰입감과 현장감을 빼놓을 수 없다. 유튜브에서 공룡 360도 영상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하자 '쥬라기 월드: 블루 VR 360'을 가장 상단에 띄운다.


눈 앞에 보이는 공룡을 물으니 "벨로시랩터와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라며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백악기 후기에 살았던 육식 공룡으로 거대한 몸집과 강력한 턱, 날카로운 이빨이 특징이다. 지금 영상 속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다른 공룡을 쫓고 있는 것 같다"며 이해를 도왔다.


화산재가 날리는 장면을 언급하자 "화산재가 날리는 장면은 정말 실감나고 멋지다. 화산재 장면이 나오는 영상은 어땠나" 라고 물으며 대화를 이어가려는 노력까지 보여준다.


물론 모든 추천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해저 영상으로 넘어가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묻자 화면에 없던 벨루가와 해파리를 답하며 엉성한 면모를 드러낸다.


삼성 '갤럭시 XR'으로 본 에베레스트 이머시브 뷰. ⓒ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실제 환경도 자유자재로 인식…캡처 후 메일 전송까지

화면 공유를 누르자, 실제 환경을 실시간으로 인식(패스 스루)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너도 보고 있니"라고 묻자 "사용자가 보고 있는 프린터, 거울, 그리고 인형이 보인다. 혹시 더 자세히 보거나 설명해 드릴 부분이 있는가"라는 답이 돌아온다.


실시간 상호 대화가 늘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들고 있던 달걀을 맞혀보라고 하자 메추리알, 작은 감자, 작은 배, 사과를 연달아 외치다 끝내 맞히지 못한다.


상단 버튼과 음량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현재 화면을 캡처할 수 있다. '포토'에 저장된 이미지는 구글 메일을 불러와 이메일로 바로 전송할 수 있다. 키보드로 메일 주소를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왜 갤럭시 XR인가 묻자 "몰입형 경험, AI 기반 멀티모달" 답해

메타 퀘스트, 애플 비전 프로와 견줘 갤럭시 XR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묻자 "몰입형 경험에 초점을 맞춘 AI 기반 멀티모달이 강점"이라고 답했다.


설명이 난해하다고 하자 "갤럭시 스마트폰과 연동해 메시지 확인, 전화 통화, 알림 확인, 앱 실행 등 다양한 기능을 XR 환경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메타 퀘스트는 "폭넓은 콘텐츠 라이브러리와 합리적인 가격"을, 애플 비전 프로는 "뛰어난 하드웨어 성능과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라고 답했다.


삼성 '갤럭시 XR'으로 즐긴 가상 놀이기구. 앉아만 있었는데도 아찔했다.ⓒ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계속 쓰면 발열 느껴…쉬엄쉬엄 쓰면 반나절 거뜬

처음 발열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으나 쉴새 없이 기기를 작동하자 디스플레이 상단부 열감이 확실히 느껴졌다. 오전 7시부터 쉬엄쉬엄 사용하니, 정오 기준 배터리 잔량은 48%였다.


동영상 재생 기준 약 2시간 30분의 배터리 지속 시간은 영화를 비롯해 장시간 사용하는 이용자에게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충전은 48%에서 98%까지 완충되기까지 약 1시간이 걸렸다.


전용 케이블과 배터리를 함께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렇다고 배터리를 내장하면 무게가 더 늘고, 발열과 소모 속도도 빨라질 테니 외장형 설계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특히 튜토리얼 학습, 구글 로그인, 삼성 계정 연동 등 초반 세팅 과정은 진입 장벽이 높았다. 내 스마트폰과 동일한 운영체제 세팅을 위한 절차라지만,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은 사용자에게는 시작하기도 전에 피로감을 줄 수 있다.


30분 이상 착용 후 헤드셋을 벗으니 가벼운 두통이 느껴졌다. 이 부분에 대해 "헤드셋 전면의 무게 밸런스를 최적화해서 장시간 착용해도 편안하도록 설계됐다"고 갤럭시 XR은 주장하나, 여성 사용자는 눈 밑에 다크서클처럼 자국이 뚜렷이 남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삼성 '갤럭시 XR' 설정에서 화면을 취향에 맞게 변경할 수 있다.ⓒ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혼자나 둘이 쓰면 좋아…보편화 앞당길 수 있을까

XR 기기가 추구하는 가상현실과 몰입감 있는 해상도는 분명 매력적이다. 새로운 경험을 원했던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자극제가 될 전망이다.


경쟁사와 달리 200만원 중후반대 가격도 비교적 합리적이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화면, 제미나이와의 실시간 대화에 에너지가 솟는다면 갤럭시 XR은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다. 다만 이러한 신선함이 얼마나 오래 사용자를 붙잡아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디테일 측면에서는 여전히 시선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거나 가끔 상호 대화 중 "잠시만요"를 연발하며 버벅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스마트폰보다 훨씬 비싼 기기를 구매할 의사가 있고, 인내심까지 갖춘 고객이라면 한 번쯤은 구매할 만 하다.


본인 구글·삼성 계정을 연동해야 하기 때문에 보안 이슈가 적은 1인 또는 2인 가구에 적합하다. '갤럭시 XR' 체험존 예약 신청자 중 70%가 1030세대 젊은 고객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어린이가 사용할 경우 부모의 사전 학습이 필요하다.


갤럭시 XR이 여러 우려와 기대를 넘어 XR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삼성 '갤럭시 XR'으로 즐긴 공룡 영상.ⓒ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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