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NDC '53∼61% 감축'으로 확정…11일 의결 예정
산업계 "감당 능력 초과…5조원대 배출권 부담 예상"
"국가경쟁력 약화 불가피…지원책 반드시 병행돼야"
10월 12일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철강제품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당정이 산업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기존 정부안보다 상향 조정하기로 하면서, 산업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0일 산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당정은 전날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당초 정부가 제시했던 '50~60%', '53~60%' 감축안보다 한층 강화된 수준이다. NDC는 파리협정 체제에서 각국이 스스로 설정하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의미한다. 이번 안은 11일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이번 감축 목표는 산업계가 제시한 48%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사실상 '고강도 목표'라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는 그간 탄소 감축 시설 투자와 배출권 추가 구매 등으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이는 고용 감소와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철강협회, 한국화학산업협회, 한국시멘트협회, 대한석유협회, 한국비철금속협회, 한국제지연합회, 한국화학섬유협회 등 8개 업종별 협회는 지난 4일 정부에 "기후부에서 제시한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의 할당 계획(안)이 2030 NDC와의 정합성이 맞지 않으며, NDC 대비 과도한 감축률을 적용해 할당량을 산정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 활동이 저해되지 않도록 2030 NDC의 산업 부문 감축률(2018년 대비 11.4%)과 정합성을 확보하는 수준에서 4차 배출권 할당량을 설정해달라"고 건의했다.
산업계는 NDC가 법제화돼 배출권거래제 할당과 직접 연동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감축률은 기업의 감당 능력을 초과해 배출권 구매 비용이 급증할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4차 계획기간 주요 업종의 배출권 예상 추가 수요 조사 ⓒ대한상의
주요 업종별 협회가 4차 계획기간의 배출권 추가 구매 부담에 대해 조사한 결과, 철강 5141만9000t, 정유 1912만2000t, 시멘트 1898만9000t, 석유화학 1028만8000t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배출권 가격을 톤당 5만원으로 계산하면, 총 5조원에 달하는 부담이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산업계는 "국가와 산업의 경쟁력을 함께 고려한 합리적인 수준의 NDC 목표가 필요하다"며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기업의 기술 개발 노력뿐 아니라 정부의 재정지원·인프라 확충·제도 개선 등 다차원적인 지원 정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의 호소에도 당정이 NDC 목표를 높이면서 산업계는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특히 NDC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제조업종인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업계를 중심으로 우려가 감지된다.
이중 자동차 업계는 정부가 2035년까지 무공해차를 840만~980만대 보급해 전체 자동차 중 무공해차 비중을 30~35%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에 부담을 느끼는 모양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KAICA),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등은 지난 3일 무공해차 판매목표는 사실상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가 전제돼야 해 이는 부품업계의 구조조정과 고용 감소를 초래한다며, 정부에 2035 NDC의 현실적 조정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제출한 바 있다.
실제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국내 부품기업 1만여개사 가운데 45.2%(4615개사)가 내연기관 관련 부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해당 기업 종사자는 전체 고용의 47.2%(약 11만5000명)를 차지한다. 업계는 급격한 전동화 전환이 오히려 중국 전기차 공세를 부추길 것이라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철강업계 역시 정부가 제시한 수소환원제철 기술 기반 감축 계획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비판한다.
남정임 한국철강협회 기후환경안전실장은 최근 토론회에서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철강 산업의 핵심 감축기술인 수소환원제철이 이번 2035 NDC에도 최소 150만t 규모로 반영돼 있으나, 업계에서는 상용설비 도입 시점을 2037년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정부가 NDC 수립 시 수소환원제철 등 탄소중립 핵심기술의 상용화 시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도 같은 자리에서 "친환경 경쟁력이 모든 경쟁력의 원천은 아니다"라며 "당장 지금의 본업에서 돈을 벌지 못하면 친환경 투자를 전혀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산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감축 압박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기후 대응과 산업 경쟁력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진정한 지속가능성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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