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우리가 나눈 이야기' [D:쇼트 시네마(139)]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1.17 14:38  수정 2025.11.17 14:38

재일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프리랜서 사진작가 은성(이제연 분)은 옛 연인 원영(박예영 분)의 결혼식에는 가지 못하고 피로연에만 참석한다.


친구들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중, 원영은 막 결혼을 마친 남편 진호와 함께 피로연장에 들어온다. 모두가 밝게 축하 분위기를 이어가지만, 은성은 다른 남자의 곁에 서 있는 원영의 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을 애써 감춰보려 한다.


진호는 웹소설 작가로 보이며 성격도 밝다. 원영은 그의 옆에서 안정되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원영이 예전 연인에게 하던 습관적 행동을 진호에게도 할 때, 은성은 어딘가 시선을 둘 곳을 잃는다.


잠시 마음을 식히려 편의점으로 간 은성은 아이스크림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밖에 서 있는 원영을 마주친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학창시절 은성의 꿈을 응원해줬지만, 정작 자신의 꿈은 포기하고 대학에 가지 않았던 원영은 그동안의 시간 속에서 끝이라 생각한 길에서 또 다른 길을 찾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지금은 행복하다는 말도 건넨다.


그 말을 들은 은성은 비로소 오랫동안 멈춰 있던 과거의 추억에서 한 걸음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영화는 오래된 관계의 잔향이 현재의 자리 위로 얇게 떠오르는 순간들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피로연에서 은성이 느끼는 불편함과 시선의 동요는 미련이라기보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흔적에 가깝고, 두 사람이 편의점 앞에서 나누는 대화는 그 흔적의 성질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재회를 통한 감정의 회복이나 멜로적 긴장보다는, 두 인물이 각자의 삶을 다시 점검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며, 관계의 남은 조각을 확인한 뒤 제자리를 찾아가는 움직임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러닝타임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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