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공무원들에게도 휴대폰 뺏기지 말라 조언해야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1.19 07:07  수정 2025.11.19 07:07

헌법존중 자랑하면서 기본권은 무시

적폐청산보다 더 광범위한 숙청될 수도

상호 감시와 밀고의 정글로 만들다니

이재명 대통령. ⓒ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유튜브 영상으로 다시 퍼지고 있다. 그는 지난 2016년 11월 24일 광진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촉구 시국강연’에서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알려 드리겠다”며 “사고를 치면 절대로 전화기를 뺏기면 안 된다. 휴대폰 안에는 여러분의 인생 기록이 다 들어있다”고 말했다. ‘사고를 치면’이라고 전제한 것으로 미루어 수사에 협조하지 말라는 일종의 선동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수사 기법의 정석’을 상기시켜준 셈이다. 변호사인데다 자신이 여러 번 피의자 입장에 선 경험도 있으니 말 그대로 ‘산교육’이었다. 형사 사건의 수사뿐 아니라 행정관청의 조사에서도 대상자들의 ‘휴대폰 확보’가 급선무라는 사실은 김민석 국무총리도 터득한 듯하다. 지난 11일 총리실은 ‘헌법존중 정부혁신 TF’ 활동과 관련, 공직자 개인 휴대전화의 자발적 제출을 유도하고, 협조하지 않을 경우 직위해제 후 수사 의뢰까지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이 대통령의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혹 총리실 방침을 직간접적으로 재가했다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제17조),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을 국민의 기본권(제18조)을 무시한다는 뜻인지를 밝혀야 옳다. ‘헌법존중’을 대명제로 내건 TF가 반 헌법적 발상 위에서 활동하는 것을 대통령이 지켜보기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대통령은 대상 공무원 전원에게 “휴대전화를 뺏기지 말라”고 조언하거나 “집단적으로 거부하라”고 선동할 도덕적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 훈수자로서의 당연한 책임 아닌가.

헌법존중 자랑하면서 기본권은 무시

개인정보보호법 제3·15·16·17조 위반의 소지도 뚜렷하다. 특히 법 제3조 1항은 개인정보 처리의 목적을 명확하게 해야 하고 최소한의 개인정보만을 적법하고 정당하게 수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7조 2항의 5에 따르면 정보처리자는 정보주체에 대해 동의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에도 이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통신의 비밀이 침해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짐작건대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는 이재명 정권이 공식용어화한 ‘내란’의 가담자를 가려내 공무원 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한 특별 기구다. 이와 함께 모든 공무원으로부터 현 정부에 대한 충성과 무조건적 복종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도 곁들여졌을 것이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공무원 사회를 정권친화형 정권복종형으로 개조하기 위한 ‘혁명위원회’ ‘공안위원회’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정화의식(淨化儀式)은 대개 주도세력 측의 실패로 끝난다는 게 정치사의 경험칙이다.


김 총리는 18일 헌법존중 정부혁신 TF에 대해 “각종 조사는 헌법과 적법 절차에 따라 꼭 필요한 범위에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신속히 진행되고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TF가 “신속한 헌정질서 회복과 공직사회 통합을 위한 불가피한 국정안정 조치”라며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신속하고 확고하게 내란을 정리하고 민생에 집중하라는 국민의 뜻에 부합하도록 행정부의 안정적 혁신을 위한 집중과 절제의 지혜를 발휘할 것”이라고도 했다.


‘헌법존중’이란 헌법을 경시하는 세력을 상정하고서 붙인 명칭일 터이다. 반 헌법세력과의 전쟁 선언이나 다름없게 들린다. 이런 거창한 의미를 갖는 TF라면 당연히 대통령이 주도해야 할 텐데 총리에게 그 임무를 일임했다. 공무원 사회의 기강을 잡기는 해야 하겠는데 저항이 만만찮아질 일인데다 훗날 후유증·부작용이 생기기라도 하면 “내 손은 깨끗하다”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김 총리가 워낙 그런 일(자기 행동의 정당화·합리화)에 능하다고 여겨져서인가?


‘촛불혁명’을 내세웠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공직사회를 휘저어놓았었다. 문 정부는 2017년 7월 19일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해 발표했다. 1번 과제가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었다. 청와대는 과제 발표 하루 뒤인 20일 정부 부처·기관 19곳에 공문을 보냈다. 청와대가 공문을 보낸 곳은 정부 17개 부처 중 법무부를 제외한 16곳과 국가보훈처·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3곳이었다(국민일보, 2018. 4. 11).

적폐청산보다 더 광범위한 숙청될 수도

‘적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행위 전반에 걸친 정치적·법적 단죄 형식으로 이어졌다. 전체 공직사회가 몸살을 앓고 국민은 진영별로 갈라섰다. ‘구정권 적폐의 청산’은 문 정권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됐다. 각 부처의 TF는 민간인들까지 끌어들여 암행어사 행세를 했다. 그 폐해에 대한 사회적 불신과 피로현상이 마음에 걸려서이겠지만 이재명 정권은 굳이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라고 이름 지었다.


그런데 ‘적폐청산’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헌법존중’도 뜻이 고약하다. 헌법존중이라면 헌법을 경시하는 세력의 존재를 상정한 표현이다. 자신들은 헌법을 수호하는 세력이고, 윤석열 정부의 중앙행정기관 공무원들은 그 전체가 잠재적 반 헌법 세력이라는 뜻이 된다. 이 대통령에게 채워진 사법적 족쇄를 풀어주기 위해 온갖 핑계와 명칭으로 입법과정을 전횡하고 농단해온 세력이 ‘헌법존중’을 자기들의 상표로 등록하다니!


49개 TF마다 10명 이상의 위원을 둔다면 전체 숫자는 최소한 500명 많게는 1000명에 이른다. 49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수는 대략 12만명에서 15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검증을 받아야 할 ‘책임 있는 지위’의 공무원이 적게는 5만명에서 많게는 9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신속히 정리하기엔 조사 대상자가 너무 많지만, 겁을 잔뜩 주는 게 주된 목적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친정부 성향의 TF가 내란가담자라며 골라낼 사람들이 누구일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각 부처에 ‘내란행위 제보센터’를 설치해서 제보받겠다는 방안도 제시됐는데 그야말로 기함할 일이다. 공무원 사회를 상호 감시와 밀고의 정글로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겠는가.


21일부터 활동을 본격화한다는 헌법존중TF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비상조치권 행사가 사법부의 판단도 나기 전에 ‘내란’ 행위로 단정되는 근거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내란가담자를 가려낼 기준이 무엇인지도 밝혀줘야 한다.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이다. 대통령에게는 다만 선한 관리자로서의 책임이 맡겨졌을 뿐이다. 임면권을 가졌다고 해서 대통령이, 혹은 그의 명령을 받은 국무총리가 TF의 이름으로 조사를 하고 처벌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상호 감시와 밀고의 정글로 만들다니

정권을 장악했다는 것은 정의를 독점했다는 뜻이 아니다. ‘헌법존중’을 선점했다고 해서 헌법의 이름으로 정의의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듯 행동하면 이는 심각한 월권이다. 김 총리는 ‘헌정질서 회복과 공직사회 통합’을 TF 설치의 이유 및 명분으로 제시했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사이엔 단지 6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더욱이 계엄을 선포한 지 2시간 30분 만에 국회가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고, 그 시각부터 계엄령은 해제된 것과 마찬가지였다는 점에서 보면 헌정질서에는 거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정권 측은 ‘내란’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대중적 단죄를 유도해왔다. ‘헌법존중’이라는 네이밍 재주로 헌법 경시 행태가 무마될 수 있다고 여기는가?


비상계엄 선포의 위법성 여부는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온 후에야 규정될 수 있는 문제다. 게다가 대다수 공무원들은 일반 국민이나 마찬가지로 매스컴을 통해서 사태를 인지하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걸 정권 측이 모르지 않을 것이면서도 전체 중앙공무원들을 계엄선포 관련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새 정권의 폭력성 자랑에 불과하다.


혁명( 빛의 혁명이라던가?)을 통해 새로운 통치세력이 등장한 만큼 대한민국은 전면적으로 개조돼야 한다는 간 큰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으나 역사적으로 그런 기도가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고무줄은 당기는 힘이 지속되는 동안에만 늘어나 있을 뿐이다.


혹 새 정권이 들어서기 무섭게 노정하기 시작한 온갖 무리한 시도들로 인해 민심이반이 초래될 것을 우려하는가? 이를 상쇄시키기 위한 충격요법으로서 TF를 고안한 것이라면 상황만 더 악화시킬 뿐인 악수(惡手)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컨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과보호, 대장동 일당에 대한 항소포기 논란의 경우 일시적 상쇄효과를 기대해서 가리고 덮으려 하다가는 더 큰 후유증·부작용을 초래하고 만다는 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같이 떠들 때는 모두가 용기백배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목소리 키우기 경쟁이 벌어진다. 자신이 헤라클래스라도 된 양 어깨가 들썩이기도 한다. 그러나 군중이 흩어지고 나면 초라한 모습의 개인만 남는다. 대중의 관심은 쉽게 대상을 바꾼다. 덩달이는 눈치가 무디어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평생 정치를 업으로 살아가겠다면 눈치 보기 잔기술을 배우려 애쓰기보다는 확고한 도덕성과 가치관으로 무장할 일이다. 벼슬이 중요하게 여겨지겠지만 후에 남게 될 이름은 더 중하지 않을까?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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