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5년간 1400여 곡을 쓰면서 오직 음악만 알고 살았어요. 하지만 협회 자료를 들여다본 순간,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AI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케이팝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지금,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창작자들의 권리는 요원해집니다.”
한국 대중음악의 산증인, 작곡가 김형석이 제25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관리’의 영역에 머물던 협회를 ‘혁신의 협회’로 바꾸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서울 서초구 모처에서 만난 그는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충격적인 내부 실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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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자료 보고 충격…서울대 입시 공부하듯 파고들었다”
선후배들의 권유로 협회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에 밤잠을 설쳤다고 털어놨다.
“감사보고서와 재무제표, 문체부 지적사항 등을 입시 공부하듯 살펴봤어요.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 정도라고 생각할 정도로 파고들었습니다. 결론은 심각한 ‘누수’와 ‘낙후된 시스템’이었습니다. 케이팝 시장은 4500억원 규모로 커졌는데, 협회의 징수·분배 시스템은 수십 년 전 그대로 멈춰있더라고요. 마치 최신 스마트폰에 90년대 공유기를 꽂아 쓰는 꼴이죠.”
실제로 그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연간 15억원의 외주 용역 비용이 지출됨에도 불구하고, 국외곡 미등록량은 250만 곡에 달한다. 음악 사용 로그는 2024년 기준 311%나 폭증했는데 시스템은 이를 감당하지 못해 과부하가 걸린 상태다. 김형석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전문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회장이 되면 가장 먼저 PWC와 같은 세계적인 회계법인에 컨설팅을 맡길 겁니다. 4년 내내 댐 구멍만 막다가 끝낼 순 없으니까요. 객관적으로 환부를 도려내고, ‘전문경영인(CEO) 제도’를 도입해 회장은 회원을 대변하고 경영인은 전문성을 발휘하는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만들겠습니다.”
“미국서 사라진 140억…데이터 매칭이 돈이다”
김형석이 가장 공을 들여 설명한 부분은 ‘해외 징수 혁신’이다. 그는 현재의 해외 징수 시스템이 케이팝의 위상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미국 기계적 복제권 징수 단체(MLC) 시장이 약 7000억원 규모입니다. 케이팝 점유율을 보수적으로 2%만 잡아도 140억원은 우리 몫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협회가 받아오는 돈은 연간 2억원이 채 안 됩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못 찾아오고 있는 겁니다.”
그가 지목한 원인은 ‘데이터 매칭 실패’다. 국제표준음악저작물코드(ISWC)와 작품 등록 정보(CWR), 큐시트(AVI) 등의 코드가 전산상으로 맞물려야 하는데, 현재 위탁 업체와 협회의 시스템은 여전히 수기(手記) 방식에 의존하는 등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중국 시장도 마찬가지에요. 중국 스트리밍 시장 규모가 연간 약 38조 규모인데, 우리가 받아오는 돈은 7억도 안됩니다. 그래서 빨리 전산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정부와 협혁해서 ‘한국형 음원 라이선스 센터’(K-MLC)를 설립하겠습니다. 해외 단체를 거치는 방식 대신 유튜브·스포티파이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 직접 데이터를 연동하고 협상해 임기 내 해외 징수 1000억 원 시대를 열겠습니다.”
“AI 골든타임 놓치면…우린 ‘디지털 소작농’ 된다”
생성형 AI 시대의 도래에 대해서도 김형석은 강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을 “전 국민이 작곡가가 되는 시대이자, 기존 창작자에게는 생존이 걸린 골든타임”이라고 정의했다. 협회가 머뭇거리는 사이 시장의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다.
“AI가 작곡하는 시대, 저작권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 협회가 선도적으로 AI 학습 단계에서의 보상 규정을 법제화하지 않으면, 결국 거대 IT 기업이 만든 플랫폼에 우리 음악이 종속될 겁니다. 그들이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디지털 소작농’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AI 특공대’ ‘블록체인’을 꺼내 들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방어막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다.
“즉각 ‘AI 특공대’를 투입해 250만 곡의 데이터 누락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또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내 저작권료가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1원 단위까지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투명한 ‘내 저작권료 한눈에 보기’ 시스템을 구축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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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물림 회장 NO…발로 뛰는 ‘영업형 회장’ 되겠다”
김형석은 자신을 책상에 앉아 결재만 하는 관리자가 아닌, 밖으로 뛰는 ‘영업형 회장’이라 칭했다. 난항을 겪고 있는 국내 OTT 및 방송사와의 갈등, 그리고 복지 문제에 대해 그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비즈니스 마인드’를 내비쳤다.
“OTT 업계와 ‘총매출액’이냐 ‘가입자 수’냐를 두고 싸움만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작가들에게 돌아갑니다. 저는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국제 수준으로 요율은 올리되, 프로모션 기간에는 과감하게 혜택을 주는’ 식의 상생 패키지 딜을 제안해 꽉 막힌 혈을 뚫겠습니다.”
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기존처럼 징수 수수료의 이자 수익에만 의존해서는 고령화되는 회원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자 놀이로 복지 하는 건 한계가 명확합니다. ‘별도 복지재단’을 설립해 기업의 사회적 후원(CSR)과 정부 R&D 예산을 따오겠습니다. 그 외부 재원으로 원로 회원 연금을 확대하고 신진 작가 멘토링을 지원하는, 말 그대로 ‘파이를 키워오는 회장’이 되겠습니다.”
“박진영과 약속했다…부끄러움 없이 칼자루 쥘 것”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최근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위촉된 박진영 JYP 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와의 일화를 전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케이팝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자는 약속이었다.
“출마 전 진영이와 통화하며 서로 ‘나중에 물러날 때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협회 내 어떤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빚진 게 없기에 오히려 과감하게 칼을 들어 카르텔을 끊고 환부를 도려낼 수 있습니다.”
그는 ‘단임’을 강조하며 배수진을 쳤다. 4년이라는 시간은 시스템을 바꾸기에 충분하면서도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연임 욕심도 없습니다. 딱 4년, 제 모든 인프라와 경험을 쏟아부어 ‘투명하고 돈 잘 버는 협회’를 만들어놓고 미련 없이 떠나겠습니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제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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