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곧 장르”…아산·영월 등 뮤지컬로 브랜딩하는 역사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11.29 12:57  수정 2025.11.29 12:58

지역 소멸의 위기 속에서 문화계가 ‘자체 제작 콘텐츠’를 생존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서울의 흥행작의 투어 공연이나 기존 IP(지식재산권)를 답습하던 수동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의 고유한 역사적 자산을 소재로 기획 단계부터 ‘제작’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산충무예술단

최근 충남 아산에서 공연한 ‘성웅’과 강원도 영월에서 공연한 ‘단종, 1698’이 대표적인 지역 특화형 콘텐츠 제작 사례다. 두 공연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공연됐다.


뮤지컬 ‘성웅’은 아산충무예술단과 아산시가 협력하고, 아산문화재단의 자문을 받아 경찰인재개발원 안병하홀에서 11월 공연했다. ‘이순신 장군의 도시 아산’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무대 위로 옮겨온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쟁 영웅’ 이순신의 모습에 머무르지 않았다. 대신 칼을 쥔 장군의 고뇌와 두려움,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인간적인 내면에 집중했다.


기존의 지자체 관 주도 공연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는 위인의 업적을 나열하는 전기적 서사에 그친다는 점이다. 그러나 ‘성웅’은 서사의 깊이를 더함으로써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아산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위인이 살았던 곳이 아니라, 그가 고뇌하고 성장했던 정신적 토대였음을 강조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아산이라는 지역을 영웅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재인식하게 만들었다.


ⓒ영월HJ

강원도 영월 장릉에서는 공간의 역사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작품은 공연 기획사 HJ컬쳐가 영월에 신규법인 ‘영월HJ’를 설립하고 영월군, 영월문화관광재단과 협력해 제작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장릉 숲속을 무대로 활용했다. 단종이 잠든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공연을 펼침으로써 허구의 무대가 줄 수 없는 압도적인 현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했다.


특히 이 작품은 관객 참여형인 이머시브 연출 방식을 도입했다. 관객은 단순한 관찰자를 벗어나 역사의 목격자로서 극 안에 존재한다. 1698년 숙종 때 단종이 복위되던 역사적 순간을 시각과 청각, 그리고 공간의 분위기로 체험하게 했다. 영월군은 지역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장소성’을 콘텐츠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영월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의 장으로 브랜딩 했다.


두 작품이 갖는 가장 큰 차별점은 ‘제작’의 전문성이다. 그동안 지역 공연계는 예산상의 이유로 외부의 유명 공연을 들여오는 ‘투어 유치’나, 기존 작품을 적당히 각색한 ‘재탕’ 공연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나 아산과 영월은 정부의 지원 아래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리지널 IP’를 창출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특히 정상급 뮤지컬 배우를 캐스팅하고, 실력 있는 창작진을 대거 기용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는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였고, 이는 곧 티켓 파워로 이어졌다. 실제 뮤지컬 ‘성웅’은 공연 기간 전석 매진됐고, ‘단종, 1698’ 역시 마지막 공연 기준 객석 점유율 110%를 넘겼다. 관객 평점 역시 10점 만점을 기록했다.


아산과 영월에서 올린 두 공연은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문화 콘텐츠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 공연 관계자는 “역사와 인물, 장소 등 지역이 가진 고유한 DNA를 발굴하고, 이를 높은 수준의 예술적 언어로 가공해낼 때 지역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매력적인 ‘장르’가 되는 셈”이라며 “잘 만든 콘텐츠 하나는 도로를 깔거나 건물을 짓는 것보다 더 큰 도시 브랜딩 효과를 낸다. 두 작품의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지역이 문화 주권을 가지고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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