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상한제 논의에 자영업계 강력 호소
연말 대목에도 외식 침체…현장 부담 누적
라이더들 “상한제는 소득 제한 법안” 반발
시장 왜곡·풍선효과 우려…정책 설계 난항
서울 시내 식당가에서 배달라이더들이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뉴시스
국회와 규제 당국이 수수료 상한제 도입을 본격 검토하면서, 외식업계 소상공인과 배달라이더 간 갈등이 심화지고 있다. 양측 모두 ‘생존권’을 내세우며 정반대의 요구를 펼치고 있어, 제도 설계 과정에서 이해충돌이 더욱 뚜렷해지는 상황이다.
정부는 플랫폼–입점업체 간 불공정 거래를 해소하기 위한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진행된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배달앱 분야에 한정된 수수료 상한제 도입을 시사했다.
주 위원장은 “경제학자들은 수수료를 직접 규제하는 데 부정적이지만, 자영업 시장이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소득 분배 채널이라는 것이 현실”이라며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저임금제와 같이 강력히 가격을 제한하는 처방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발맞춰 국회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역시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오는 9일 전까지 특별법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배달앱 플랫폼이 입점업체에 부과하는 중개수수료, 결제수수료, 광고비 등 총수수료에 법적 상한을 두겠다는 것이 골자다.
외식업계는 이 같은 흐름을 기회로 바라보고 있다. 업계는 “더는 버틸 수 없다”며 상한제 도입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배달 주문 의존도가 높은 영세 식당일수록 수수료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고 있어 “상한제 만이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연말 대목이 시작됐지만 업계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경기 침체가 올해 4분기까지 이어지면서 기대했던 ‘연말 특수’마저 힘을 잃는 분위기다. 오른 임대료와 인건비, 치솟는 식재료비에 배달 플랫폼 수수료 부담까지 겹치며 현장의 삼중고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에 김우석 한국외식업중앙회 회장·김진우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김준형 공정한 플랫폼을 위한 사장협회 의장 등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진행한 ‘자영업자·중소상인·시민사회단체 온플법 입법 촉구대회’에서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도입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열심히 장사해서 팔아도 배달의민족·쿠팡·숙박앱들이 가져가는 수수료 때문에 남는 게 없다. 재주는 자영업자가 부리고 돈은 플랫폼이 벌어간다”며 “700만 자영업자가 생계에 내몰리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는 너무 태평하다”고 비판했다.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는 이재명 정부의 대선 공약 중 하나다. 지난 6·3 대선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도입과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체계를 주요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업계에서는 온플법과 수수료 상한제가 12월 임시국회에서 민생법안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배달·숙박 등 플랫폼 업계가 일률적 수수료 상한제 도입에 반대하는 만큼,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의 간극을 좁히기 어려운 탓이다.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자영업자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의 한계를 이미 넘어섰다”며 “수수료에 임대료, 인건비, 원재료비까지 겹쳐 남는 것이 없는 구조에서는 누구도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수수료 상한제는 붕괴 직전인 생태계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강조했다.
서울 시내 식당가에서 배달라이더들이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뉴시스
반면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배달앱 업계에 이어 최근 배달 라이더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배달업계는 수수료 상한제가 도입될 경우 배달산업 위축으로 소비자·자영업자의 피해가 커지고 생계위협으로 직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배달앱 수수료가 배달료와 연동돼 있다는 점이다. 배달 수수료 상한선을 일괄 법제화할 경우, 중개수수료·광고비 등 플랫폼이 가져가는 수수료를 낮추는데는 한계가 있다. 기업이 미처 줄이지 못한 비용이 배달원 인건비로 전가될 수 있다는 게 라이더들의 우려다.
올해 초 배달앱들이 상생안을 도입하면서 배달비 지급 구조가 바뀐 게 배경이다. 기존에는 점주에게 9.8%의 수수료를 받고 소비자에게 1900~2900원의 배달비를 받았지만, 실제 라이더에게는 건당 3000~7000원을 지급해왔다. 부족한 금액은 플랫폼이 자체 수익에서 보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상생수수료 시행으로 수수료율이 2~7.8%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플랫폼의 수익 여력이 줄었다. 배달비 자체는 1900~3400원으로 큰 변화가 없는 만큼, 그동안 라이더 확보를 위해 투입해온 각종 프로모션과 인센티브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라이더 측의 우려다.
이에 따라 배달의민족·쿠팡이츠 등에서 배달을 하는 라이더와 배달대행 협력사가 출범한 '전국 배달협력사 바른정책 실천을 위한 대표모임(전배모)'은 지난달 27일 성명서를 내고 "배달 수수료 상한제법은 실제로는 배달기사 소득 상한제법"이라고 주장했다.
전배모 측은 “배달비가 깎이면 선택지가 없다. 결국 라이더에게 손해를 감수하라는 라이더 악법”이라며 “가장 억울한 것은 이 논의에 저희 같은 현장 라이더는 없다는 것이다. 라이더 의견 없이 논의된다면 이 법은 그야말로 라이더 죽이기 법”이라고 비판했다.
업계 및 학계 역시 수수료 상한제 도입이 초래할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수수료를 인위적으로 규제할 경우 배달앱들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라이더뿐 아니라 영세 소상공인의 피해가 커지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배달 수수료 상한제를 도입한 미국 뉴욕의 경우 '배달 수수료 상한제'를 도입한 이후 풍선효과가 현실화 됐다. 2021년 뉴욕시가 배달 수수료를 최대 30%에서 23% 수준으로 낮추자 결과적으로 자영업자의 부담이 23%에서 43%로 증가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달은 공공재의 성격이 없기에 이 경우 가격은 경쟁 등 시장경제를 통해 형성된다”며 “가격 통제로 시장경제 원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산업 자체가 위축돼 죽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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