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여신 늘리는데 사장님 대출은 제자리
수익성과 리스크 모두 책임져야 하는 은행
"부실화된 소호대출 외면할 수밖에 없어"
국내 은행권의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대출이 지난달 말 기준 한 달 전보다 780억원 증가했다.ⓒ연합뉴스
지난달 국내 은행권의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대출이 780억원 증가에 그치면서 문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은행 여신 포트폴리오를 기업대출 중심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정작 금융 접근성이 가장 취약한 개인사업자 대출의 빗장은 닫히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압박에 은행이 리스크와 수익성, 정책 부담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소호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325조6982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780억원 증가에 그친 수준이다.
반면 전체 기업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849조4646억원을 기록하며 3조1587억원 큰 폭 증가했다. 이는 소호대출 증가액의 40배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가 가계대출 위주의 여신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업금융으로의 전환을 강하게 주문하면서, 은행들이 위험도가 상대적 낮은 대기업 및 우량 중견기업 여신을 늘리고 있어서다.
정책적 딜레마로 은행권이 개인사업자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보니, 정작 금융이 절실한 영세 개인사업자들이 생산적 금융의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소호대출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최근 심화된 저성장과 경기 침체로 인해 개인사업자들의 폐업률이 증가하고 대출 상환 능력이 급격히 악화됐다.
금융감독원 집계를 보면 올 3분기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평균 0.65%로, 전체 기업대출 연체율(0.61%)보다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고정이하여신을 뜻하는 부실채권 비율 역시 0.61%로 상승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정책을 따라야 하는 동시에, 건전성 지표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러한 정책 리스크를 은행권에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기업금융 확대를 요청하면서도,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저신용자 저금리 대출 확대나 만기 연장 등 포용 금융의 역할까지 은행에 동시에 요구하고 있어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은 생산적 금융 주문에 답하기 위해 우량 기업대출을 늘리면서, 동시에 부실 위험이 큰 개인사업자 대출은 최소한의 증가분만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결국 금융이 절실한 소상공인들을 생산적 금융의 뒷전으로 밀어내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대출을 내주는 것은 리스크와 수익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영업사업"이라며 "정부가 결국 취약차주들을 제도 밖으로 내모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