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 전략이 다각화되고 있다. 영미권 원작이나 보편적 소재를 활용해 한국의 프로듀싱 역량을 입증하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고유의 서사와 역사적 배경을 담은 창작 뮤지컬이 가세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모양새다.
ⓒ에이콤
최근 몇 년간 한국 뮤지컬은 보편적 소재와 세련된 프로듀싱을 무기로 해외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로 이끈 ‘위대한 개츠비’는 브로드웨이에서 흥행하며 누적 매출액 약 9950만 달러(한화 약 1461억원/11월30일 기준)를 기록했고, 쇼노트의 ‘마리 퀴리’는 웨스트엔드에 진출했다. 소극장 규모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또한 미국 시장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토니상 6관왕을 거머쥐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소재의 보편성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영미 문학의 고전이며, ‘마리 퀴리’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역사적 위인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로봇을 소재로 한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이는 서구권 관객에게 익숙한 소재를 활용해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이었다.
이러한 성과는 한국 제작사의 기획력과 프로듀싱 시스템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함을 입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지 관객은 한국이 만든 작품이라는 이질감 없이 콘텐츠 자체를 소비했다. 즉, ‘한국적 색채’보다는 ‘한국의 제작 역량’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은 단계였다.
제작 역량의 토대 위에서, 이제는 ‘한국적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더해지면서 진출 전략이 풍성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명성황후’ ‘영웅’ 등을 제작했던 에이콤은 최인호의 장편소설 ‘몽유도원도’를 원작으로 한 신작 ‘몽유도원’을 준비 중이다. 안견의 설화와 한국적 미학을 담은 이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해, 한국 원천 IP가 가진 서사적 힘을 글로벌 시장에 내놓겠다는 의도다.
이 같은 움직임은 에이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위대한 개츠비’로 브로드웨이 시스템을 뚫은 오디컴퍼니 신춘수 프로듀서는 차기 글로벌 프로젝트로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국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일 테노레’를 지목한 바 있다. ‘위대한 개츠비’로 구축한 브로드웨이 네트워크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국의 구체적인 역사가 담긴 이야기를 해외 관객에게 소개하겠다는 의도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엔 서구권 시장에서 한국적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과거 한국적 소재가 ‘낯설고 이국적인 비주류’로 취급받았다면, 최근에는 ‘신선하고 매력적인 주류 장르’로 격상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다. 작품은 케이팝과 팬덤 문화 그리고 한국적 비주얼과 도깨비 모티브 등 한국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글로벌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작품 속 김밥·컵라면 장면은 세계적 온라인 챌린지로 이어지며 식품·뷰티·전자 기업들의 협업 제품과 마케팅을 촉발했고, 북촌 한옥마을과 낙산공원, 남산타워 등 작품의 배경지는 해외 팬들의 주요 방문지로 급부상했다.
‘케데헌’뿐 아니라 K-컬처의 파급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K-컬처 산업 수출액은 약 139억 달러(약 18조원)에 달하고,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학습 열풍이 이어지는 등 한국 문화가 글로벌 문화 교류의 중심축이 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글로벌 시장이 한국적 서사를 수용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는 한국 뮤지컬 제작사들에게 “우리 이야기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셈이다.
다만 한국적 서사의 확장은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다. 서구권 관객에게 낯선 한국의 역사적 맥락과 ‘한(恨)’과 같은 고유의 정서를 어떻게 납득시키느냐가 난제다. 단순히 한국적인 소재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인류 보편적인 감동 코드를 심는 연출과 번안 과정이 필수적이다.
앞선 성공들이 보편적 소재로 ‘한국도 뮤지컬을 잘 만든다’는 것을 증명했다면, 이번 도전은 ‘한국의 이야기가 세계에서 통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 원천 IP가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소비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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