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케이팝(K-POP) 시상식과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이 팬들의 참여 비중을 늘리면서 유료 투표를 조장하고 있다.
ⓒ멜론
9일 음원 플랫폼 멜론은 오는 20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리는 '2025 멜론뮤직어워드'(2025 MMA)를 앞두고 부문별 온라인 투표를 진행 중이다. MMA 측은 '올해의 아티스트', '올해의 앨범', '올해의 베스트송', '올해의 신인', '밀리언스 TOP10' 등 주요 부문 후보를 공개하고 19일까지 멜론 앱·웹을 통해 투표를 받는다. 모든 멜론 이용자가 참여할 수 있지만 유료 이용권 보유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투표 권한이 다르다. 유료 이용자는 하루 3표, 무료 이용자는 하루 1표만 행사할 수 있고 사전 프로모션·출석체크 등을 통해 지급되는 '추가 투표권' 역시 이용권 보유자만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실제 순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유료 이용권과 추가 투표권을 전제로 한 참여가 요구된다.
지난 6일 엠넷플러스를 통해 첫 공개된 '플래닛C : 홈레이스' 역시 유사한 구조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엠넷에서 방영된 ’보이즈 2 플래닛‘의 파생 프로그램으로, 당시 데뷔조에서 탈락한 연습생들 중 18명의 플래닛C 참가자들이 다시 한번 데뷔를 향한 레이스를 펼친다. ‘팬터랙티브’(Fanteractive) 방식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투표자인 ‘플래닛 메이커’는 각 라운드마다 미션·곡·킬링파트·안무까지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제작진은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며 ‘참가자를 가장 잘 알고 애정하는 이들은 결국 시청자’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며 ‘팬터랙티브’ 방식을 도입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팬들의 영향력을 키우며 프로그램의 주 소비층인 어린 여상들에게 과도한 금전 소비를 유도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플래닛C : 홈레이스’(이하 '홈레이스')에서는 곡 선정·킬링파트 선정 등의 미션 투표와 별도로, 참가자에게 '부스트 에너지'를 모아 보내는 ‘부스트 서포트’가 진행 중이다. 1차 부스트 서포트에서는 팬들의 서포트를 가장 많이 받은 8명의 연습생을 CGV 전광판·포스터 등으로 홍보해주는 혜택이 걸려 있었고, 2차 부스트 서포트는 상위 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팬미팅 기회를 제공한다. 팬들은 광고 시청 등으로도 포인트를 모을 수 있지만 짧은 기간 안에 의미 있는 순위 변화를 만들려면 결국 유료로 '부스트 에너지'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유료 투표가 팬덤을 겨냥한 주요 수익 모델로 자리 잡은 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모인 표가 실제 결과에 얼마나 반영되느냐'이다. '홈레이스'의 전신인 '보이즈 플래닛' 시리즈는 방송 편집을 통해 제작진이 밀어주는 '피디픽' 참가자를 밀어주거나 반대로 자극적인 '악마의 편집'으로 데뷔 순위를 좌지우지 했다는 논란이 꼬리표처럼 붙었다. 이에 '팬터랙티브' 방식을 도입해 팬들의 투표 영향력을 키우더라도 유료 투표가 데뷔에 유의미하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기업이 제시한 애매모호한 기준과 투명하지 않은 절차로 이미 신뢰가 깨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새로 출범한 '코리아 그랜드 뮤직 어워즈'(KGMA)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시상식은 팬캐스트 앱을 통해 3개월에 걸친 유료 투표를 진행했으나 베스트 OST·베스트 밴드 부문에서 팬투표와 전혀 다른 수상 결과가 나왔다. 베스트 OST 부문에 영화 '사랑의 하츄핑' OST '처음 본 순간'으로 노미네이트 된 에스파 윈터의 팬들은 당시 시상식에서 엠씨를 맡은 윈터에게 트로피를 안기겠다며 약 3억원의 금액을 투입했고 실제로 윈터는 56만표, 득표율 54%로 팬투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시상식 당일 상은 드라마 '선재업고튀어' OST '그랬나봐'를 부른 엔플라잉(N.Flying) 유회승에게 돌아갔다. 유회승은 투표 순위 9위로 1위인 윈터와 투표율 51%가 넘게 차이났으며 팬투표가 종료된 직후 KGMA 측이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베스트 OST 심사 비율에서 스트리밍·음반 판매량 성적 비중을 35%에서 45%로 올리고, 시상 날짜도 앞당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을 지갑으로 보는 것도 정도껏이지, 이건 사기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베스트 밴드 부문도 마찬가지다. 팬투표와 음원 성적에서 1위였던 플레이브, 2위였던 DAY6를 제치고 팬투표 0.57%에 불과한 QWER가 트로피를 가져가자, 온라인 상에서는 입장료 12만원으로 시상식 치고 비싼 티켓 값과 유료 투표를 유도하는 광고 시청을 배치한 KGMA에 대한 분노가 이어졌다.
현재 아이돌 팬 커뮤니티와 X(구 트위터) 등에서는 MMA와 '홈레이스'의 팬들이 자정마다 표가 리셋되는 구조 탓에 밤 12시마다 '투표 품앗이'를 하며 다른 팬덤과 표를 나눠 찍고 서로 음원 스트리밍·영상 조회 이벤트를 걸어가며 표를 교환하는 등 밤낮 없이 표를 모으고 있다. 기업에 또 속을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묵묵히 지갑과 시간을 쓰는 팬들의 노력이 최소한 납득 가능한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팬터랙티브'라는 명분은 설 자리를 잃는다. 팬들의 참여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표가 어디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신뢰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부터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