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 놓고 한은–금융위 충돌…입법 공백 장기화

손지연 기자 (nidana@dailian.co.kr)

입력 2025.12.13 08:31  수정 2025.12.13 11:08

은행 51% 모델 두고 한은–금융위 평행선

발행 주체 합의 지연에 정부안 제출도 차질

미·EU 제도화 속 한국만 2단계 입법 공백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초 10월 말 제출을 목표로 했던 정부안은 11월, 12월로 계속 미뤄졌고, 현재로선 연내 발의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연내 발의를 목표로 했던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법안) 정부안이 결국 국회에 제출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핵심 쟁점인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둘러싸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초 10월 말 제출을 목표로 했던 정부안은 11월, 12월로 계속 미뤄졌고, 현재로선 연내 발의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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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는 지난 11일 전체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금융위의 법안 제출 지연에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정문 의원은 “의원들이 11월 말, 12월 초까지 법안을 내달라고 했고 정무위에서도 10일까지 제출하라고 했는데 지켜지지 않았다”며 “강력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위 설명으로는 대부분 쟁점이 해소됐고 발행 주체 등 몇 가지만 남아 있으며 조만간 정리될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핵심 쟁점은 은행 중심 발행 모델이다. 한국은행은 금융안정과 외환·자본 이동 통제를 이유로 은행 지분 51% 이상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에 스테이블코인 발행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기존 은행권의 외환 모니터링·지급결제 관리 체계를 스테이블코인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금융위와 여당 일부 의원, 핀테크 업계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은행 중심 구조로는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가 떨어지고, 기술 혁신과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다.


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 소속 민병덕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TF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은행이 51%를 차지하고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는 발행 구조는 시장에 적합하지도 않고 글로벌 정합성도 없다”며 “가장 순화해서 말해도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미 한은의 요구권이나 감독적 역할에 대해서는 충분히 배려해왔다”며 “그럼에도 은행 51%를 고집한다면 혁신금융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핀테크 업계도 은행 중심 구조의 한계를 지적한다. 한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자체 메인넷을 구축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업은 10~15곳에 불과한데, 이들 기술 기업은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제공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지금도 대부분의 기술은 이더리움이나 솔라나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발행 주체 경쟁에서 배제되면 산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은 외환 통제와 안정성 측면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조직 구조상 의사결정이 느리고 글로벌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며 “카카오·네이버 등 빅테크나 기존 핀테크 기업들이 참여해야만 시장 수요와 마케팅, 해외 확장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안 제출이 지연되자 여당은 정부안과 별개로 TF 내에서 입법 협의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TF는 “정부안이 언제 나올지 불확실한 만큼, 당 차원에서 절차를 진행하겠다”며 22일 자문위원 회의를 열어 입법 방향과 프로세스를 정리하기로 했다.


이정문 의원은 “정부안이 나오면 병합심사를 하려 했는데, 더는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연내 본회의 통과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정무위 법안소위, 공청회, 야당 협의 절차 등을 고려하면 최종 통과는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 의원은 “속도를 높이더라도 내년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입법 지연으로 인한 업계 혼란에 대해 정치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병덕 의원은 “이 기사를 읽을 시장·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인력 조정과 자금 준비까지 하며 대응하고 있을 텐데, 입법이 늦어지는 데 대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홍콩 등 주요국이 이미 스테이블코인 규율 체계를 정비·시행 중인 가운데, 한국은 2023년 7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1년 반 넘게 2단계 입법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둘러싼 한은–금융위 간 조율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될지가 향후 디지털자산 제도화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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