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스마일게이트 퍼블리싱작 GTA 수상
유망 개발사 '보는 눈' 새 경쟁력으로 부상
대형 게임사 위주 스튜디오 체제 기조 강화
핵심 IP는 내부, 포폴 다변화는 외부 '이원화'
스웨덴 소재 넥슨 자회사 엠바크 스튜디오가 개발한 '아크 레이더스' 대표 이미지.ⓒ넥슨
게임사들의 역량 평가 기준이 '내부 개발력'에서 '퍼블리싱 작품 선별 및 확보 능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시장 경쟁 격화로 높은 개발 비용을 투입해도 실패하는 사례가 늘어나며, 개발 역량을 전제로 작품을 골라 글로벌 시장에 안착시키는 판단력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변화는 게임업계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불리는 TGA(더 게임 어워드)의 두 수상작들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났다. 넥슨의 퍼블리싱작 '아크 레이더스'와 스마일게이트의 한국 공동 퍼블리싱작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33원정대)'가 그 주인공이다.
16일 넥슨에 따르면 아크 레이더스는 지난 11일(한국 시간) 미국 LA에서 개최된 TGA 2025에서 '최고의 멀티플레이어' 부문을 수상했다. ▲배틀필드6 ▲엘든링: 밤의 통치자 ▲피크 ▲스플릿 픽션 등 글로벌 대작들과의 경쟁에서 게임성을 인정받았다.
아크 레이더스를 개발한 스웨덴 소재의 엠바크 스튜디오는 넥슨이 지난 2018년 잠재력을 확인한 개발사다. 넥슨은 초기 투자를 통해 이들의 개발 역량과 비전을 검증했고, 2021년 지분 100%를 인수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며 서구권 시장 공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았다. 당시 뚜렷한 흥행작이 없던 무명의 개발사였으나, 초기 가능성만을 보고 장기 투자를 단행한 게 결실을 거둔 것이다.
시장에서는 넥슨이 엠바크 스튜디오의 개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장기 개발을 견딜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점이 이번 성과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스마일게이트가 국내 공동 퍼블리싱을 맡은 샌드폴 인터랙티브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 대표 이미지.ⓒ스마일게이트
스마일게이트가 국내 공동 퍼블리싱을 맡은 '33 원정대'는 퍼블리셔의 선별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프랑스 개발사 샌드폴 인터랙티브가 만든 33원정대는 TGA 시상식에서 총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GOTY(Game of the Year, 올해의 게임)를 포함해 게임 디렉터상, 각본상, 미술상, 음악상 등 역대 최다 수상인 9관왕을 기록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게임스컴 2024'에서 33 원정대를 발굴해 선제적으로 국내 유통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성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에 적합한 유통 및 마케팅 전략을 더한 점이 성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자체 게임 유통 플랫폼인 '스토브'를 운영하며 축적한 퍼블리싱 노하우가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했다는 평가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체 개발만으로는 안정적인 성과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국내 게임사들은 퍼블리싱 전략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내부에만 의존하면 신작 공백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특히 해외 개발사에 대한 투자는 현지 개발 문화와 역량을 유지한 채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업계에서는 대형 프로젝트의 개발 기간이 장기화되는 반면, 글로벌 흥행 확률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흐름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꼽는다. 내부 개발 역량만으로는 성과 변동성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만큼, 복수의 외부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퍼블리싱 전략이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TGA 수상을 계기로 이같은 흐름은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개발팀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본사는 사업, 마케팅, 글로벌 진출 등 전반적인 사업을 지원하는 구조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미 넥슨을 비롯해 엔씨소프트, 스마일게이트, 크래프톤 등 국내 대형 게임사들은 이러한 전략을 조직 전반에 적용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개발 조직을 스튜디오 형태로 운영해 자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외부 유망 IP를 조기 선점해 퍼블리싱 권한을 확보하는 데 있다. 다수의 IP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단일 IP 의존 리스크를 분산한다.
대표적으로 넥슨은 '데이브 더 다이버'를 제작한 내부 개발팀 '민트로켓'을 따로 분사한 데 이어, 최근 신규 개발 자회사 '딜로퀘스트'를 설립했다. 엔씨소프트는 슈팅, 서브컬처 등 장르별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스틸게임즈, 문로버게임즈, 엠티베슬 등 글로벌 유망 개발사에 투자를 단행했으며, 회사는 향후 서브컬처와 MMORPG 신작을 중심으로 추가 투자 및 퍼블리싱 계약 소식을 예고한 상태다. 스마일게이트와 크래프톤은 초반부터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해 프로젝트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되며 향후 게임사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게임을 만드는지보다도 어떤 게임을 선택하고 어떤 지원 전략으로 이들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지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퍼블리싱 비중이 확대될수록 자체 개발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것이 개발 역량을 대체하는 전략이라기보다, 역할을 분화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해석하는 모습이다. 내부 개발 조직은 핵심 IP와 기술 축적을 담당하고, 외부 퍼블리싱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성과 변동성을 낮추는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한국 퍼블리싱 작품의 성과가 누적되면 해외 스튜디오 입장에서도 한국 게임사를 유의미한 파트너로 인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긍정적이다. 퍼블리싱 노하우와 시장 안착 지원 능력이 실제 사례를 통해 검증됐기 때문"이라면서도 "다만 최근 신생 스튜디오 설립이 줄어드는 가운데 자본력을 갖춘 게임사들이 유망 IP 확보 경쟁에 가세하면서 퍼블리싱 작품을 확보하기가 과거보다는 쉽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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