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한한령 해제 훈풍?…‘중·일 갈등’은 여전한 변수 [D:이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12.17 08:33  수정 2025.12.17 08:33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다시 한번 ‘차이나 리스크’와 ‘차이나 찬스’ 사이의 갈림길에 섰다. 9년 가까이 굳게 닫혀 있던 중국 시장의 빗장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과, 여전히 외교 정세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이 동시에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뉴시스

16일 관련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실과 주무 부처는 내년 1월 중국 베이징에서 국내 4대 기획사(하이브·SM·JYP·YG) 소속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하는 합동 콘서트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해당 기획사들에 1월 초 아티스트들의 스케줄 확인을 요청하며 섭외 가능 여부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대통령실은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입장을 밝혔고, 기획사 측 역시 “일정 문의를 받은 것은 맞으나 확정된 바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개별 기획사가 아닌 정부가 직접 나서서 판을 짠다는 것은 중국 정부와의 어느 정도 교감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콘서트가 성사된다면, 이는 단순한 공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이후 비공식적으로, 그러나 강력하게 작동해 온 ‘한한령’(한류 제한령)이 9년 만에 사실상 해제됨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중국 본토 공연은 수익성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면에서도 놓칠 수 없는 기회”라며 “아직 1월 콘서트에 대해서는 단정할 수 없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 사격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전했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내놓기에는 현장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국에 대한 규제는 완화되는 추세지만, 최근 격화된 중국과 일본의 외교적 갈등이 케이팝 그룹에 엉뚱한 불똥을 튀기고 있어서다.


지난 1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그룹 르세라핌의 팬 사인회가 행사 직전 취소된 사건은 현재의 복잡한 기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주최 측은 ‘불가항력적인 사유’라고만 공지했으나, 업계 안팎에서는 팀 내 일본인 멤버(사쿠라, 카즈하)의 존재가 행사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그룹 클로즈유어아이즈는 지난 6일 중국 항저우에서 팬 미팅을 진행했지만, 일본인 멤버 켄신은 행사에서 빠졌다. 같은 날 상하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인코드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들의 팬 미팅은 행사 당일 취소되기도 했다. 이 팬 미팅에는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즈 플래닛’에 출연한 일본인 마사토·센도 출연할 예정이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일본과의 역사 및 영토 문제 등으로 외교적 마찰을 빚으면서, 일본 문화 콘텐츠나 일본 국적 연예인의 활동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 기획사가 제작한 케이팝 그룹이라 하더라도, 일본인 멤버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 공연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비자 발급을 지연시키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다.


한 케이팝 관계자는 “현재 중국 당국의 기조는 ‘한국 콘텐츠는 수용하되, 일본 관련 요소는 철저히 배제한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공연 심의 과정에서 일본인 멤버의 불참을 우회적으로 종용하거나, 아예 허가를 반려하는 경우가 있어 기획사들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선별적 개방’은 케이팝 기획사들에 새로운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케이팝 업계는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국적 멤버 구성’을 필수 전략으로 채택해 왔다. 특히 세계 2위 음악 시장인 일본을 공략하기 위해 일본인 멤버 영입은 성공 방정식과도 같았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사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일본 시장의 일등 공신이었던 일본인 멤버들이 중국 시장 진출에는 리스크가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내년 1월로 거론되는 합동 콘서트가 성사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현재 4대 기획사의 주요 그룹 중 상당수가 일본인 멤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와이스(미나, 사나, 모모), 트레저(아사히, 하루토), 에스파(지젤) 등 인기 그룹들이 중국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일본인 멤버 제외’라는 뼈아픈 선택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멤버 한두 명이 빠지는 문제가 아니다. ‘완전체’ 활동을 지지하는 팬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자칫하면 해당 그룹의 정체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거대 시장인 중국의 러브콜을 마냥 거부하기도 어려운 것이 기획사들의 현실이다.


결국 이번 ‘베이징 합동 콘서트’ 추진설과 ‘일본 멤버 행사 취소’ 사태는 중국 시장이 가진 기회와 위험요소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 주도의 해빙 무드에 힘입어 한한령 해제라는 큰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나, 국제 정세라는 외부 변수에 의해 언제든 다시 문이 닫힐 수 있다는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케이팝 관계자는 “중국 시장이 열린다면 엔터사들의 실적에 퀀텀 점프를 가져올 수 있겠지만, 정치적 변수가 상수로 작용하는 시장인 만큼 이를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일본인 멤버 이슈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외교적 문제인 만큼, 기획사별로 이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