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IPO로 지분 구조 정리…몸값 5조5000억 거론
승계 이후 각자 재원 확보…계열 분리 시나리오 구체화
IPO 사전 작업 본격화...대기업 집단 상장 기준 시험대
지난 2022년 ‘현암 김종희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오른쪽 두번째)가 세 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승연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한화그룹
한화에너지가 오너 일가 지분 일부를 정리하며 기업공개(IPO)를 향한 사전 정비에 나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이 보유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면서 승계 이후 지배구조 정리와 계열 분리 시나리오가 한층 구체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IPO 과정에서 변수는 남아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이 한화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한화에너지 지분 일부를 재무적투자자(FI)에 매각하기로 하면서 지분 구조 재편에 나섰다.
전날 한화에너지는 이사회를 열고 김동원 사장이 보유한 지분 5%와 김동선 부사장의 지분 15%를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의결했다. 총 지분 20%에 대한 거래 금액은 약 1조1000억원이다.
한화에너지는 그룹 지주회사 격인 ㈜한화의 최대주주(22.16%)로 장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분 50%, 차남과 삼남이 각각 25%씩을 들고 있다. 이번 거래가 마무리되면 김동관 부회장은 지분 50%를 유지하며 최대주주 지위를 공고히 하고 김동원 사장은 20%, 김동선 부사장은 10%로 지분율이 낮아진다. 재무적 투자자가 약 20%를 확보하면서 지분 구조는 보다 분산된다.
이번 거래는 IPO를 앞둔 한화에너지의 상장 전 지분 투자(프리 IPO) 성격도 짙다. 한화에너지는 올해 초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대신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하며 상장 준비에 착수한 바 있다. 통상 주관사 선정 이후 상장까지 1~2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IPO 이전 단계에서 지분 구조를 정리한 셈이다.
사전에 일부 지분을 매각하면서 향후 IPO 과정에서 구주매출 비중을 낮춘 것으로도 풀이된다.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했던 만큼 상장 시 대규모 구주매출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았지만 이번 거래로 부담을 일정 부분 덜어냈다. 외부 투자자를 통해 기업가치의 기준점을 마련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지분 20%가 1조1000억원에 거래되면서 한화에너지의 기업가치는 약 5조5000억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확보된 자금은 삼형제의 역할 분담 구도를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김동관 부회장은그룹의 핵심인 방산·조선·에너지 부문을 이끌고 있고 김동원 사장은 금융 계열사를, 김동선 부사장은 유통·식음료·로봇 사업을 각각 맡고 있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상속·승계 재원을 비롯해 각자가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이 마련되면서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한화그룹은 아직 김승연 회장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계열 분리는 당장 계획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차남과 삼남이 자금을 확보해 신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각자의 영역에서 독립 경영 기반을 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한화
한화에너지 IPO를 둘러싼 중복상장 논란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변수로 꼽힌다. 한화에너지는 비상장사지만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한 회사다. 이미 ㈜한화를 비롯해 다수의 주요 계열사가 상장한 가운데 한화에너지까지 증시에 입성할 경우 기존 상장사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다.
대기업의 자회사 상장에 대한 시장의 시선이 과거보다 훨씬 엄격해진 점도 부담 요인이다. 올해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인 SK엔무브의 상장 계획을 접고 SK온과 합병을 선택한 사례도 같은 흐름으로 해석된다. 한화에너지가 지난 3월 상장 주관사단을 선정한 이후 IPO 추진을 조율해 온 배경에도 이런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반적인 자회사 중복상장과는 구조가 다르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화에너지가 상장사의 지배를 받는 자회사가 아니라, 오히려 핵심 계열사들을 간접 지배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기존 사례와 동일 선상에 놓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기존 상장사 주주 가치가 직접적으로 희석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재 한국거래소는 중복상장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내년부터 HD현대로보틱스와 SK에코플랜트, 한화에너지 등 대기업 계열사의 상장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제도 정비 방향과 시점에 따라 한화에너지의 상장 전략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에너지 IPO는 대기업 집단 상장의 기준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어떤 성장 스토리를 제시하느냐가 관건으로, 구주매출 비중을 최소화하는 접근이 시장 수용도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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