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뒤 수습서 ‘팔리기 전 차단’으로
소비자보호 총괄 신설·원장 직속 격상
상품 설계→판매→사후관리 전 과정 점검
위험 상품은 판매 중단까지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조직개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안 손지연 기자
금융감독원이 금융소비자 보호 체계를 사고 발생 이후의 사후 구제 중심에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 중심 구조로 전환한다.
이에 맞춰 소비자 보호 기능을 감독원장 직속으로 격상하는 등 조직 개편도 함께 추진한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22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본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금융소비자 보호 개선 로드맵’과 이를 뒷받침할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수석부원장은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제도적·형식적 기반은 갖춰졌지만, 실제 운영 측면에서의 소비자 보호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었다”며 “실질적인 소비자 후생 증진을 위해 감독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현재 소비자 보호 체계를 진단한 결과, OECD가 제시한 금융소비자 보호 국제 표준 권고 기준의 12개 항목은 모두 제도적으로 구비돼 있으나,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사고 발생 이후 분쟁 조정과 피해 구제에 초점이 맞춰진 운영 구조,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시장 안정과 금융회사 건전성이 우선시되며 소비자 보호가 후순위로 밀린 점, 업권별 조직 체계로 인해 소비자 보호 기능이 분절적으로 작동한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됐다.
금융회사 측면에서도 소비자 보호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유인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단기 판매 이익이 경영의 중심이 된 반면, 소비자 보호 위반에 따른 사후 비용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판매 중심 관행이 고착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디지털 금융이 빠르게 확산되는 과정에서 거래 편의성에 비해 안전 장치는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 점도 문제로 언급됐다.
이 같은 진단을 토대로 금감원은 ▲사전 예방적 소비자 보호 체계 전환▲ 소비자의 자기주도적 상품 선택권 강화 ▲금융 후생의 소비자 환원 ▲금융 안전망 대폭 강화 ▲소비자 보호 거버넌스 정비 등 5대 추진 과제를 제시했다.
최종 목표는 사고 이후의 피해 구제가 아닌, 피해 발생 자체를 줄여 소비자 후생이 실질적으로 체감되도록 하는 데 있다.
핵심은 리스크 기반 소비자 보호 감독 체계 구축이다. 민원, 감독·검사 부서, 언론 등 다양한 채널에서 소비자 위험 요인을 상시 수집·모니터링하고, 위험이 감지되면 이를 분석·평가해 ‘소비자 위험 대응 협의체’에 상정한다.
협의체는 위험 단계에 따라 대응 수위를 결정하며, 소비자 피해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 상품 판매 중단 등 적극적인 시장 개입 조치도 가능하도록 했다.
금융상품 전 생애주기에 대한 소비자 보호도 강화된다. 설계·제조 단계에서는 상품 제조사와 판매사가 상호 교차 검증을 통해 핵심 위험 요인을 사전에 정의하고 자체 점검을 강화하도록 유도한다.
판매 이전에는 내부 상품위원회의 심사 기능과 책임을 확대하고, 소비자 영향이 큰 상품 구조에 대해서는 사전 심사를 단계적으로 강화한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AI) 등 분석 기법도 활용할 계획이다.
판매 단계에서는 형식적인 설명 의무를 넘어 소비자가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보 제공 방식을 개선하고, 판매 직원의 판매 관행도 함께 점검한다.
사후 관리 단계에서는 중요 소비자 위험에 대한 공시를 대폭 강화하고, 문제가 확인된 상품에 대해서는 판매 중단, 보험 기초서류 변경 등 실질적인 시정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 보장도 주요 과제다. 금감원은 금융상품·제도 관련 안내와 공시를 확대하고, 그간 금융시장 안정 우려로 제한됐던 정보 공개 범위도 과감히 넓히겠다고 밝혔다.
계약 체결부터 유지·해지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소비자가 불필요한 제약 없이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병행한다.
금융회사가 라이센스 산업으로서 향유해 온 이익을 소비자 후생으로 환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금감원은 금리·수수료 결정 체계를 지속 점검해 불합리한 요소를 개선하고, 금융거래 과정에서 금융회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직 개편은 이러한 감독 기조 전환을 뒷받침하는 핵심 수단이다. 금감원은 기존 소비자보호처에 분산돼 있던 소비자 보호 감독의 총괄 기능을 통합한 ‘소비자 보호 총괄 부문’을 신설해 금융감독원장 직속으로 배치한다.
이 부문은 감독원 전반의 업무를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진단하고, 피해 예방을 위한 감독·시정 조치를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존 소비자보호처가 사고 수습과 민원·분쟁을 통한 사후 구제에 집중했다면, 개편 이후에는 소비자 보호 총괄 부문이 업권별 감독 부서 및 사후 구제 기능과 유기적으로 연계돼 상품 설계·제조 단계부터 소비자 위험을 평가·진단하는 구조로 바뀐다.
분쟁 조정 기능도 재편된다. 기존에 소비자보호처에 집중돼 있던 분쟁 조정 기능을 각 업권의 상품 제조 담당 부서로 이관해, 상품 심사부터 분쟁 조정까지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책임성과 처리 효과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운영을 전담하는 조직도 신설해 위원회 기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민생 금융 범죄 대응을 위해 특별사법경찰 도입을 추진하고, 민생 금융 범죄 정보 분석팀을 신설해 새로운 범죄 유형을 조기에 포착·대응한다.
디지털 보안 리스크에 대한 사전 대응 강화, 연금 시장 확대에 따른 조직 보강, 보험회사 지급여력과 연계된 계리 감리 강화 등 금융 환경 변화에 대응한 조직 보강도 포함됐다.
이 수석부원장은 “이번 로드맵은 방향들을 제시한 것”이라며 “세부 추진 과제는 내년 초 발표할 2026년도 금융감독원 업무계획에 반영해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법령 개정이 필요한 과제는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해 조율할 것이며, 매년 추진 성과와 소비자 체감도를 점검해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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