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돌, 타이틀곡보다 예능형 자체콘텐츠가 팬 흡수에 더 효과적
'숏폼 시대'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요즘 5세대 남자아이돌 자체콘텐츠(자콘 / 통상 자컨으로 표기)은 길고 묵직하다. 10분 내외 비하인드 외에도 TV 예능 한 회 분량인 40분, 길게는 1시간이 넘는 영상을 많이 볼 수 있다. 1시간 40분 분량의 유튜브 예능 '풍향고'가 1673만회를 기록하며 '재밌으면 길어도 본다'는 사실이 다시 증명되는 가운데 남돌 자컨은 TV 예능의 자리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유튜브 'TWS' 채널
가장 눈에 띄는 건 옛날 예능 포맷을 오마주하는 시도다. 18일 투어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올라온 '투어스(TWS)의 청량한 초대'는 1편과 2편을 모두 합쳐 약 153만회를 기록 중이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KBS에서 방영된 '해피선데이-MC대격돌'의 인기 코너 '위험한 초대'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대화를 하다가 특정 단어나 행동이 나오면 머리 위에서 물이 쏟아지고 플라잉 체어에 앉은 멤버가 뒤로 튕겨 나간다.
앤팀 역시 한국 활동 기념 콘텐츠로 '만앤의 행복'이라는 영상을 올려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MBC에서 방영된 '행복주식회사'의 대표 코너 '만 원의 행복'의 포맷을 가져온 콘텐츠는 일본 현지화 그룹의 특색에 맞게 '만 엔'으로 한도를 설정해 아홉 멤버가 하루에 한 명씩, 3일간 총 1만 엔으로 생활하는 내용이다.
휴지를 한 번 뜯거나 치약을 짜서 양치할 때마다 100엔을 기록하는 식으로 자잘한 지출까지 빼곡히 적는 엄격한 규칙에 멤버들은 꼼수를 쓰거나 휴지통을 뒤적거리고 봐주지 않는 상황이 웃음을 부른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 경험을 그대로 소환하는 경우도 있다. 크래비티는 정규 2집 에필로그의 타이틀곡 '레모네이트 피버'(Lemonade Fever)' 활동을 맞아 어린 시절 학교 컴퓨터실이나 집에서 즐겨 하던 추억의 플래시 게임 '알피의 레모네이드 팔기'를 콘셉트로 정한 '울피와 크래비티 친구들의 레모네이드 팔기' 영상을 올렸다.
1999년생부터 2003년생 멤버들이 소속된 그룹과 비슷한 연령대의 팬들이 학창 시절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을 콘셉트로 가져와 레모네이드를 팔기 위한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다는 설정을 더해 멤버들이 면접을 보고 애드리브를 하는 장면으로 웃음을 끌어냈다.
팬들이 즐겨 만들던 콘텐츠 포맷을 역으로 가져오는 팀도 있다. 보이넥스트도어는 팬들이 유튜브와 SNS에 올리던 '덕질' 브이로그·취향 발표회를 자컨에 그대로 옮겼다. '노 장르'(No Genre) 활동 당시 컴백 프로모션으로 같은 그룹을 좋아하는 팬들끼리 앨범을 개봉해 포토카드를 뽑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룹의 무대를 보는 '덕질' 브이로그를 패러디한 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최근에는 추구미(추구하는 취향)를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콘텐츠를 내놨다. 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아이돌이 팬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을 수 있게 된다.
실시간 밈과 유행을 흡수하는 속도도 빨라졌다.라이즈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에서 크게 유행한 두바이쫀득쿠키 열풍에 맞춰 '우리가 두쫀쿠에게로 간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멤버들이 두바이쫀득쿠키부터 두바이 찹쌀떡, 두바이 아사이볼 등 요즘 유행하는 음식을 먹어보고 식감·맛을 분석하는 구성인데 단순해 보이지만 이미 알고 있는 유행 위에 멤버들의 리액션을 얹어 '내가 SNS에서 보던 걸 아이돌 버전으로 다시 본다'는 재미를 준다.
ⓒ유튜브 '뜬뜬' 채널
남돌 자컨의 롱폼화는 유튜브 전체에서 일어나는 변화와도 연결된다. 유튜브 채널 '뜬뜬'의 토크쇼 '핑계고'의 스핀오프 '풍향고'는 어플과 예약 없이 '바람 따라 떠나는' 콘셉트의 여행 콘텐츠로 한 편 당 분량이 1시간 30분을 훌쩍 넘지만 2024년 11월 공개된 시즌 1의 1편은 이날 기준 1673만회를 기록 중이다. 에그이즈커밍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십오야에 올라오는 1시간 분량의 토크쇼 역시 100만회를 넘는 콘텐츠가 적지 않은데 1세대 아이돌 지오디와 함께한 '몽글몽글 추억여행' 콘텐츠는 190만회로 '지오디 나오는 방송은 실망한 적이 없다', '1시간 내내 깔깔거리면서 봤다'는 반응이다.
틱톡, 도우인 플랫폼 이용자 수가 늘며 숏폼 콘텐츠가 유행하고 있고 아이돌 역시 3분 직캠도 길다는 반응에 챌린지 등을 통해 1분 남짓한 춤으로 시선을 끄는 게 당연해졌지만 그럼에도 유튜브 등에서 롱폼 콘텐츠는 여전히 수요가 있으며 시청자를 모으기 위해 소재는 점점 다양해지고 진화하는 상황이다. 결국 재밌으면 1시간이 넘어가도 보게 되고 볼 이유가 없다면 3초 영상도 넘기게 된다.
자체콘텐츠의 경우 TV에서 전문 예능인들이 하던 예능 포맷을 가져와 자신들이 익숙하고 좋아하는 출연자로 재구성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인기 요소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남자 아이돌 시장에서 롱폼 자컨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경쟁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제로베이스원을 시작으로 라이즈, 보이넥스트도어, 투어스, 코르티스 등 2022년 이후 보이그룹이 연달아 데뷔하면서 다시 보이그룹을 중심으로 한 아이돌 시장이 됐다.
특히 남자 아이돌은 멤버들 간의 관계성과 그 속에서의 유머 코드를 보고 관심을 가지는 팬들이 많기 때문에 어쩌면 타이틀곡보다 예능형 자컨이 팬 유입에 더 직접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데뷔 초반에 팬덤을 확보하지 못하면 존재감이 묻히기 쉬운 환경에서, '입덕'용 영상 한 편이 다시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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