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원 쏟는 행정통합... 권한 없는 재산 지원은 ‘모래성’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6.01.19 10:35  수정 2026.01.19 10:36

지자체 “실질 권한 이양 없는 반쪽짜리”

4년 한시 지원은 임시방편 불과

항구적 국세 이양 빠진 동상이몽

여야 대치 국면 속 선거용 포퓰리즘 공방 확산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회원들이 지난 14일 충남 서산축산물종합센터 입구에서 '숙의없는 졸속 대전, 충남 행정통합 중단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비수도권 대형 자치단체 탄생을 위해 20조원이라는 파격적인 재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시각차는 오히려 극명해지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예산 투입을 통해 행정구역 개편의 동력을 얻겠다는 나름대로의 ‘당근’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지자체는 단순한 예산 지원이 아닌 실질적인 결정 권한의 이양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돈으로 사려는 통합…지자체가 외치는 재정 분권의 본질


정부 발표의 핵심은 행정통합 지역에 4년 동안 총 20조원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다. 연간 5조원 규모의 이 인센티브는 표면적으로는 파격적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자체 시각에서는 지속 가능성이 결여된 일시적인 당근에 불과하다.


현재 지자체들이 직면한 가장 큰 벽은 국세와 지방세의 비대칭적 구조다. 정부가 제시한 20조원은 4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소모성 예산이다.


반면 지자체가 요구하는 것은 부가가치세나 소득세 등 국세 항목 일부를 아예 지방세로 돌리는 항구적 재정 독립이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정부 발표 직후 브리핑에서 이번 지원책을 ‘사탕발림’이라고 규정했다. 김 지사는 “4년 한시적인 재정 지원은 중장기 운영에는 오히려 독이 된다”며 “국세의 항구적 이양 등 특별법 원안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통합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앙 정부가 재정이라는 목줄을 쥐고 통합을 리드하려는 부분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한 것이다. 지방은 목줄 자체를 풀고 스스로 먹거리를 찾겠다는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셈이다.


이름만 특별시…부처 이기주의에 가로막힌 자치권


행정통합의 또 다른 핵심 쟁점은 자치권 범위다. 정부는 행정구역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서울시에 준하는 위상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뜯어보면 조직권과 인사권, 인허가권 등 핵심 권한은 여전히 중앙 부처의 승인 아래 놓여 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통합의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미국 주 정부 수준의 실질적 권한 확보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자체가 스스로 지역 특색에 맞는 조직을 설계하고, 대규모 사업의 인허가를 중앙의 간섭 없이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대구와 경북 통합 과정에서도 이러한 부처 이기주의는 큰 걸림돌이 돼 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6일 정부의 행정통합 인센티브 발표 직후 제도와 재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행정통합은 또 하나의 선언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으로의 전환이라는 분명한 의지를 밝힌 것을 환영한다”고 전제한 뒤 “정부의 권한 및 재정 이양과 실질적인 균형발전 대책을 먼저 확인한 뒤 대응하겠다”고 신중론을 견지했다.


신중론 배경에 대해서는 “각종 특례를 구체화하는 각론 단계로 들어가면 중앙부처 공직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무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실제로 작동하는 제도와 재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행정통합은 또 하나의 선언에 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특별법 제정 당시 막판에 중앙 부처의 저항으로 핵심 특례들이 대거 삭제됐던 뼈아픈 경험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통합 외형에 집중하고, 지자체는 내실 있는 권한에 집착하는 시각차는 통합 특별법 입법 과정에서 거센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화려하게 빛나는 통합특별시 이면에는 인근 소도시의 소멸 위험과 부처 이기주의라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이라는 '외형적 청사진'과 지자체가 갈망하는 자치권이라는 '황금 열쇠' 사이의 극명한 시각차를 입체적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제미나이
지역 내 빨대 효과와 정치적 셈법... 통합 너머의 갈등들


중앙정부는 행정통합을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깰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한다. 기초 지자체들은 거대 통합단체의 탄생이 가져올 ‘블랙홀 현상’을 두려워하고 있다.


예산과 인프라가 통합특별시의 중심지로만 쏠리는 빨대 효과가 발생할 경우, 주변 소도시는 오히려 인구 소멸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정치적 셈법 역시 복잡하다. 야권은 이번 20조원 지원책을 지방선거를 앞둔 매표 행위로 규정하며 날을 세우고 있다. 중앙정부의 지출을 줄여 급조된 예산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통합 자치단체의 명칭 선정과 청사 소재지를 둘러싼 지자체 간 자존심 싸움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남 지역에서는 ‘광주전남특별시’와 같이 특정 지명이 앞서는 명칭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청사 위치를 두고 지역 간 권력 구조가 재편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예민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20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도 지자체의 실질적인 권한 보장이라는 본질적 요구를 외면한다면 지역 소멸을 막을 근본 처방이 되기 어렵다.


중앙정부가 권한의 독점을 내려놓지 않는 한, 행정통합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위태로운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단순한 행정구역 개편을 넘어 지역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이 돼야 한다”며 “인사권과 자치권 보장을 위해 국회와 치열하게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