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패자부활전…오락가락 평가 기준에 후발주자 부담 가중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로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LG와 'AI 양강'으로 꼽히던 네이버클라우드의 탈락 이후 '국가대표 AI' 프로젝트가 흥행 위기를 맞이했다. 탈락 기업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줬다가 외면받은 데다, 다른 유력 후보들마저 신중 모드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업계는 후발주자들이 기존 3개 정예팀과 경쟁할 때 득보다 실이 클 것으로 우려한다. 무엇보다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지침은 가장 큰 불확실성으로 꼽힌다. 기업들은 정부의 독자 AI 모델 사업 지침이 확정된 뒤에야 참여 여부를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20일 현재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참여를 선언한 기업은 모티프테크놀로지스 1곳 정도로 파악된다. 유력 후보였던 네이버클라우드, 카카오, NC AI 모두 재도전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밖에 거론 기업은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공개적으로 칭찬한 KT를 비롯해 코난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이들 모두 독파모 프로젝트에 응찰했으나 1차 평가에서 탈락했다.
참여 의사 1곳…유력 후보들 줄이탈에 ‘국대 AI’ 동력 급속 약화
다른 기업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내부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초거대 AI 모델 ‘믿:음 K’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AI 모델 성능을 종합 평가하는 플랫폼 '아티피셜 애널리시스'의 인텔리전스 지수(AAII)에 따르면 '믿:음 K 2.5 프로'는 20일 기준 23점을 기록했다. 비교 대상 모델 평균 점수(14점)를 9점 웃돈다.
KT는 ‘믿:음 K’가 모델 아키텍처 설계부터 학습 데이터의 구축까지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프롬 스크래치(From scratch)’ 방식으로 구현한 ‘실전형 AI’임을 강조한다. 이를 바탕으로 KT가 설욕전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내부 기류는 다소 복잡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순민 AI Future Lab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지난 16일 자신의 SNS에 정부의 '독파모' 방식에 우려를 보였다. 그는 "연구개발의 성과와 방향은 단일한 잣대로 일대일 비교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잦은 평가는 오히려 연구의 속도와 방향을 제약하고, 단기적 점수 최적화로 유도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수의 ‘우승 모델’을 가려내는 경쟁보다는, AI의 확산과 활용, 그리고 산업 전반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빠른 글로벌 흐름에 올라타려면 보다 다양성·창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KT는 더군다나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리더십 교체를 앞두고 있다. 3월 주총 이전 국가 프로젝트를 결정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애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대 AI' 프로젝트에 대해 KT는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후발주자에 불리한 구조, 참여 주저 키워
KAIST 컨소시엄도 독파모 사업 참여가 어렵다는 데 결론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세대 바이오 AI 모델 'K-Fold'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정부 사업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들이 AI 기술이 있더라도 선뜻 참여 의사를 밝히기 어려운 배경에는 진출 3팀과의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기 어렵다는 판단과 기존 자사 프로젝트와 병행할 경우 인력·자원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자칫 기존 3개 정예팀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와 그에 따른 내부 피로도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서버실.ⓒ네이버
기존 정예팀은 최소 4개월 이상 학습 데이터를 축적하며 모델의 안정성을 확보한 상태다. 2단계 목표를 위해 SK텔레콤은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멀티모달 모델을, 업스테이지는 200B 모델을 밝힌 상태다.
주어진 시간 안에 AI 솔루션 구현 뿐 아니라 '기술 자립도' '실무 적용성'에서 타 경쟁사 보다 우위를 보여야 한다. 정부가 "똑같은 기간을 주겠다"고 밝혔어도 후발주자가 이를 압축해 따라잡는 것은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특히 네이버를 떨어뜨린 프롬스크래치(바닥부터 개발) '채점 기준'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AI 석학 조경현 뉴욕대학교(NYU) 교수는 지난 16일 자신의 SNS에 "프롬 스크래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네이버클라우드 모델을 실격시킨 결정에 다소 놀랐다"며 정부의 경직된 평가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평가 기준을 더 엄격히 정의하자는 주장에 대해 "객관식 시험 중심의 선발 방식에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관료적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이-전형적으로 내놓을 법한 주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 교수는 이어 "평가에 있어 유연성을 유지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정 방식에서 독자성에 매몰되기 보다는 '성능과 활용도'를 중심으로 유연하게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배 KT AI랩장도 '프롬 스크래치'에 대해 "국방이나 고도의 민감 영역에서는 예외가 필요하겠지만, ‘from scratch’에 집중하는 건 주객이 전도돼 보인다"고 했다.
AAII(Artificial Analysis Intelligence Index)’에 등재된 믿:음 KⓒKT
"룰은 바뀌고 책임은 기업 몫"…셈법 복잡 '국대 AI'
산업계가 이처럼 요동하는 것은 애시당초 정부가 '패자부활전'을 갑작스럽게 도입하면서 업계 혼란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급변하는 AI 환경에서 하루라도 빨리 산업 현장에 접목할 기술을 육성하는 것이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느닷없는 규칙 변경이 후발주자들의 부담을 키우고 AI 로드맵마저 지연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네이버, 카카오, NC AI 등이 재도전을 응하지 않겠다고 빠르게 밝힌 것도 외부 평가전 보다는 자체 로드맵에 집중하는 것이 실익이 크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1차전부터 평가 방식을 놓고 설왕설래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술력 유무를 떠나 소모적인 논쟁으로 인한 이미지 손실 부담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럼에도 '국대 AI'에 참가할경우 '기술 기업' 이미지 확보, 막대한 인프라(GPU) 비용 절감, 정부가 인정하는 레퍼런스를 확보하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이는 자사 AI 사업을 추진하거나 해당 모델 수출 시 강력한 영업 무기가 된다. 대부분의 잠재 후보들은 정부의 모집 공고가 가시화된 이후 득실 계산기를 두드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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