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무조건 받으라"는 응급실 뺑뺑이법, 의료계 "사고 나면 의사만 고통"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1.22 14:51  수정 2026.01.22 16:06

정부, 응급실 뺑뺑이 대책 마련…정치권 입법 ‘속도’

복지부 “부처 간 조율 후 시범사업 계획안 발표 예정”

의료계 “의료진 법적 의무 과도…현장 부담 커진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뉴시스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한 채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재부상했다. 정부는 법 개정 등 제도 정비로 해법 마련을 추진중이나, 현장 의료진들은 “법과 지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응급환자 이송체계 개선 시범사업’ 방안을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보고했다. 해당 사업에는 심근경색·뇌졸중·중증외상·심정지 등 4대 중증 환자에 대해 지역 의료계와 협의해 사전에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지정하고, 119가 현장에서 환자를 확인한 뒤 즉시 해당 병원으로 이송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응급환자 이송에 관한 사항은 부처간 조율이 필요한 사항으로 아직 최종적으로 확정된 바가 없다”면서도 “관련 논의를 신속히 추진해 시범사업 등에 관한 계획안을 조속히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6일 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응급실 뺑뺑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응급실 뺑뺑이로 119 구급차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며 “병원이 119 구급대원이나 가족보다 낫지 않느냐, 응급조치라도 하면서 다른 병원을 수배하는 것이 정상 아니냐”고 질타했다.


정치권도 지난해 11월부터 관련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월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결을 목표로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응급의료기관이 환자 수용이 불가능할 경우 이를 사전에 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응급실 전담 당직전문의가 최소 2인 1조로 근무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의료계는 “법을 만든다고 해서 응급의료 현실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필수의료과 전문의 부족과 만성적인 병상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적 의무만 늘어날 경우 현장의 부담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진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는 형사 책임과 민사 소송 위험은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응급의학과, 외상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중증 환자를 다루는 진료과가 대표적이다. 치료 과정에서 불가피한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의료진이 곧바로 형사 처벌이나 소송에 노출되는 구조가 지속되면서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병원 교수는 “중증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사 개인이 형사처벌과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노출되는 구조”라며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는 한 응급의료를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응급의료를 살리려면 단순히 ‘환자를 무조건 받아라’는 식의 규제가 아니라, 의료진이 불가피한 결과에 대해 합리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부터 마련해야 한다”며 “악의적이거나 명백한 과실에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지만, 최선을 다한 의료행위에 대해서까지 형사 책임을 묻는 구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도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응급의료 대책이 시스템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짚고 구조 자체를 바꾸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진에 대한 법적 보호와 면책 문제 역시 정부가 준비하는 방향과 현장이 체감하는 대책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며 “법률안이 통과된 뒤 오히려 현장에 대한 통제가 더 강해지는 쪽으로 흘러가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