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제품의 한계를 넘어, 로봇 경량화와 프리미엄 코팅으로 도약할 골든타임
ⓒ 데일리안 DB
"작금의 한국화학산업의 위기는 진짜다."
혹자는 과거에도 화학산업은 늘 위기가 있었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맞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2016년 유가를 뒤흔든 셰일가스 혁명, 그리고 2020년 전 세계를 멈춰 세운 코로나 19 팬더믹 당시에도 화학산업은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는 세계 경제라는 거대한 배가 흔들리면서 산업의 후방산업에 있는 화학이 연쇄적으로 고통받은 위기였다. 다시 말해, 외부요인 탓으로 돌릴 수 있는 화학산업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2023년부터 시작돼 2026년 오늘에 이른 지금의 위기는 결이 다르다. 세계 경제는 회복하고 있고 다른 산업들은 뛰어가는데, 유독 화학공장만 멈춰 서 있다. 이것은 외부의 파도 때문이 아니다. 중국의 자급화와 경쟁 심화로 인해 화학산업 그 자체의 경쟁력이 저하된 탓이다.
이처럼 더 이상 남 탓을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지만, 필자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IT·가전 전시회 'CES 2026' 현장에서 우리 화학산업이 다시 심장을 뛰게 할, 아니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목격했다. 바로 피지컬 AI, 그 중에서도 로봇의 대중화다.
현대자동차 부스에 서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봤다. 그리고 다수의 중국기업에서 만든 로봇들도 함께 봤다. 두 로봇은 모두 걷고, 뛰고, 재주를 넘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기술적 스펙보다 더 직관적인, 바로 외형적 완성도의 차이였다.
아틀라스의 표면은 매끄럽고 고급스러웠다. 만져보고 싶을 만큼 유려한 곡선과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표면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중국의 로봇들은 아직 완성도가 떨어져 보였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엔지니어에게 물었다. "도대체 고급스러움의 비밀이 뭡니까?" 돌아온 대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건 단순한 플라스틱이 아닙니다. 특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위에 우리만의 프리미엄 코팅 기술을 입힌 겁니다."
바로 이것이다. 필자는 직감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화학산업의 새로운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산업의 특성상 화학산업은 전방산업과 함께 움직여 왔다. 필자가 연구를 시작한 2010년 초반부터 디스플레이, 자동차, 반도체 등 신산업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그 패러다임이 로봇을 포함한 피지컬 AI로 움직여야 할 때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무엇인가? 바로 배터리다. 기껏해야 4시간 남짓 움직이면 멈춘다. 무거운 강철 몸체로는 아무리 인공지능(AI)가 뛰어나도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결국 답은 경량화다. 철보다 가볍지만 강철만큼 강한 고분자 소재가 없다면, 로봇 시대는 열리지 않는다. 이것이 화학이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수 천만원짜리 로봇을 집에 들이는 소비자가 투박한 기계를 원하겠는가? 아니다. 그들은 고급 가전처럼, 아니 반려 생명체처럼 아름답고 따뜻한 로봇을 원한다. 여기서 화학의 도료와 코팅 기술이 로봇의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승부처가 된다. 중국은 아직 여기까지는 오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로봇에 있어서도 여전히 범용제품을 찍어내는 데 바쁘다.
대기업이 다수인 국내 화학기업들은 그동안 다품종 소량 생산 중심의 틈새시장이라 규모의 경제 확보가 어려워 진입을 주저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피지컬 AI산업은 규모 면에서 과거의 소량 다품종 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60조 달러(약 8경4180조원·모건 스탠리 휴머노이드 100 보고서)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피지컬 AI 시장은, 전 세계 가정과 산업 현장에 1인 1로봇이 보급되는 거대 장치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의 자본과 인프라가 필수적인,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시장이다.
드론 시장을 보라.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중국의 DJI가 시장을 독식했다. 로봇 시장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텐가? 로봇이 걷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AI와 기계공학이라면, 그 로봇을 가볍게 만들고, 아름답게 입히고,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결국 화학이다.
한국의 화학산업은 피지컬 AI라는 기회를 통해 잔인한 죽음의 계곡을 건너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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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용진 단국대학교 과학기술정책융합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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