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인터넷·스마트폰 등장마다 퍼진 ‘대량실업’ 공포
지식노동 침투하는 AI…과거 신기술과 다른 점
AI 이후 미국 사무직 일자리 오히려 증가
19세기 영국 방직공들은 방적기에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해 기계를 부쉈다. 1980년대에는 개인 컴퓨터(PC)가, 1990년대에는 인터넷이, 200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대량 실업을 몰고 올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졌다. ⓒ제미나이 AI 이미지 생성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공포는 새롭지 않다.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류는 같은 질문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 방직공들은 방적기에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해 기계를 부쉈다. 1980년대에는 개인 컴퓨터(PC)가, 1990년대에는 인터넷이, 200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대량 실업을 몰고 올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졌다.
그러나 기술은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 동시에 더 많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 인류는 인공지능(AI) 앞에서도 같은 질문을 되묻고 있다. AI도 과거 신기술과 같은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과, 전혀 다른 전개가 될 수 있다는 분석 모두 공존한다.
“이번엔 다르다”…‘생각하는 일’까지 대체하는 AI
과거 기술이 주로 육체 노동과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했다면, AI는 지식 노동과 창의적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클립아트코리아
일각에서는 AI는 과거 신기술과 다르다고 경고한다. 과거 기술이 주로 육체 노동과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했다면, AI는 지식 노동과 창의적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시각이다.
1·2차 산업혁명은 공장 노동자를 대체했다. 3차 산업혁명인 디지털화는 데이터 처리·단순 사무직을 줄였다.
그러나 AI는 보고서를 쓰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코드를 짜고, 그림을 그린다. 2023년 미국작가조합이 15년 만에 파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히 지적재산권 침해가 아니라 자신들의 일자리 자체를 AI가 대체할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창의 노동까지 AI가 진출하는 것은 과거 기술 전환과 질적으로 다른 변화다.
속도도 다르다. 산업혁명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됐고, PC와 인터넷 보급도 10~20년의 적응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AI의 확산은 수년 안에 기업 업무 구조를 바꾸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인공지능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와 정책방향’ 보고서에는 이르면 2030년에는 현재 형태 일자리의 약 90%에서 직무의 90% 이상을 자동화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회와 정책이 적응할 시간이 과거보다 훨씬 짧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도 기술 발달이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낼 때, 그 자리는 기술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아닌 다른 이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같다”…새 일자리 만든 것은 언제나 ‘기술’
역사적으로 기술 전환기마다 특정 직종은 타격을 받았지만, 사회 전체의 일자리 총량은 줄지 않았다. ⓒ클립아트코리아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딜로이트가 지난달 발표한 ‘AI가 실업을 유발하고 있는가’ 보고서에는 “지금까지 양상을 보면 ‘이번에는 다르다’라기보다 ‘이번에도 같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근거는 수치다. ChatGPT 출시 이후 선진국에서 실업률이 오르고 청년 고용이 약화했지만, 이는 AI보다 2021~2022년 인플레이션과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순환적 요인과 훨씬 더 관련 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 기업의 채용 둔화는 ChatGPT 출시 반년 전부터 시작됐다.
오히려 AI 관련 직종은 호황이었다. 2022년 말 이후 미국의 관리직·전문직·사무직 일자리는 약 300만개 늘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3년 새 7%, 법률 보조원은 21% 증가했다.
역사적으로 기술 전환기마다 특정 직종은 타격을 받았지만, 사회 전체의 일자리 총량은 줄지 않았다. PC는 타자수(Typist)를 없앴지만 프로그래머를 만들었고, 인터넷은 여행사를 줄였지만 플랫폼 노동자를 탄생시켰다.
산업혁명의 역사도 같은 패턴을 보여준다. 1839년 사진의 발명으로 초상화가들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사진사라는 새 직업이 생겼다. 극장에서 오케스트라가 전자 악기로 대체됐지만 음악 산업 전체는 오히려 커졌다.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일자리 위협이 부각되지만, 새롭게 생겨나는 직무는 눈에 띄지 않아 실제보다 공포감이 커지는 착시 효과가 있다”며 “인류 역사는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발전해왔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일을 새롭게 만들어온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단순하고 반복적이거나, 힘들고 위험한 일을 기술이 대신하는 방향으로 접목된다면 오히려 인류 보편 복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나친 비관보다는 기술을 활용해 역량을 보완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도전을 고양시켜 주는 게 지금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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