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달부터 호남서 3개월간 시범사업 시행
해당 지역서 전문의 7명 수도권 이동·개원 준비
“합의되지 않은 시범사업…현장 부담 가속”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해소를 목표로 추진한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이 이달부터 광주·전남·전북에서 시작된 가운데,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수도권 이동과 개원 등을 선택하며 현장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상대적으로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던 지역에서 인력 공백이 나타나면서 시범사업을 둘러싼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시범사업 후 광주·전남 지역 병원 3곳에서 응급의학과 의료진 최소 7명이 수도권으로 이동하거나 개원을 준비하는 등 현장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는 시범사업 시행에 따른 업무 부담과 책임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시범사업 후 광주·전남 지역에서 최소 7명의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이탈했다”며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근로 여건이 특별히 좋은 곳도 아니다. 지역 의료를 지켜온 인력들이 합의되지 않은 사업 시행으로 더 큰 부담을 떠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5일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발표했다. 시범사업은 이달부터 5월까지 3개월간 광주·전남·전북 지역에서 우선 시행된다. 정부는 시·도별 응급환자 이송 지침을 중증도와 상황별로 구체화하고, 지역 내 병원·구급대·지방자치단체 등 관계 기관이 이에 합의하도록 했다.
사업 내용에 따르면 119구급대는 중증환자(pre-KTAS 1∼2등급) 정보를 광역상황실과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해당 환자 중 심정지나 중증 외상 등 최중증 환자는 사전에 지정된 병원으로 곧바로 이송된다. 그 밖의 중증 환자는 광역상황실이 환자 정보를 토대로 병원의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이송 병원을 선정하게 된다.
만약 적정 시간을 넘겨 이송이 지연될 경우 광역상황실이 중환자실·수술실 등 의료 자원 현황을 고려해 환자 안정화 처치가 가능한 우선 수용 병원을 지정한다. 또한 119구급대가 이송한 중증 환자 중 치료 후 다른 병원으로 이동이 필요한 경우에도 119구급대가 환자 이동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번 시범사업을 두고 의료계의 우려는 계속 제기돼 왔다. 응급실 과밀과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송 절차만 개선하는 방식으로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인식은 전문의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지난 5일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529명 가운데 88%가 “이번 시범사업이 응급실 수용 곤란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귀하의 지역에서 본 사업이 강행될 경우 대응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는 41%가 “사직이나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겠다”고 응답했다.
시범사업 시행 이후 해당 지역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 이탈이 확인되면서 정책 시행 초기부터 현장 인력 공백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형민 회장은 “우선 수용 병원을 지정한다는 것도 예전부터 있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던 내용”이며 “지역별 지침이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결국 ‘각 지역이 알아서 하라’는 의미에 가깝다. 중앙정부가 실질적인 통제권이나 결정권을 갖지 않는 구조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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