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스타일, 온 가족에 친척까지 다 태우고 캠핑장비까지 실을 수 있는 적재능력, 도로 위를 마음껏 누빌 수 있는 뛰어난 성능, 출퇴근용으로 부담 없는 가격과 연비.
사람들이 자동차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이처럼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동시에 높은 수준으로 충족시켜 줄 차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를 타고 캠핑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가치를 어느 정도씩이나마 충족시키려면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각 '가치'별 눈높이를 어느 정도씩은 낮춰야 한다는 얘기다.
기아차가 7년 만에 선보이는 RV 라인업의 풀체인지 모델 '올 뉴 카렌스'는 그런 '절충점'을 지향한 모델이다. 물론, 그들이 찾은 절충점이 얼마나 조화됐는지는 직접 겪어봐야 알겠지만.
3일 경북 경주와 포항 일대에서 열린 미디어 시승회를 통해 올 뉴 카렌스를 만나봤다. 시승 모델은 1.7 VGT 디젤 노블레스로, 디젤 라인업 중 최상위 트림이다. 시승 코스는 경주 현대호텔에서 포항 호미곶까지 왕복 약 130km 구간이었다.
올 뉴 카렌스는 일단 외관상으로는 상당히 큰, 그리고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카니발의 축소판 같은 어설픈 구형 카렌스의 디자인은 올 뉴 카렌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K9에서 시작해 K3, 그리고 K7 페이스리프트로 이어진 기아차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올 뉴 카렌스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전고가 조금 높은 준중형 세단 정도로 느껴질 정도로 세단의 색깔을 많이 입혔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7인승으로 만들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것 같은 구형의 억지스런 느낌은 사라졌다. 훨씬 날렵하고 세련돼졌다.
이런 디자인을 뽑아내기 위해 피터 슈라이어 사장 이하 기아차 디자이너들도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차체 사이즈를 상당 부분 감량한 게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구형에 비해 전장은 20㎜(4545→4525㎜), 전폭은 15㎜(1820→1805㎜), 전고는 40㎜(1650→1610㎜)나 작아졌다.
그 덕에 실내 공간의 좌우 너비는 다소 좁아진 느낌이지만, 축거는 오히려 50㎜(2700→2750㎜) 길어지면서 2열까지의 레그룸은 더 넓어졌다.
화물 적재용량도 구형보다 늘었다. 2열 후방 기준으로 구형이 421ℓ, 올 뉴 카렌스가 492ℓ다. 경쟁차(기아차는 경쟁차로 인정하지 않지만) 올란도(472ℓ) 보다도 조금 넓다. 2열 좌석까지 접을 경우 화물적재공간이 1643ℓ까지 확대된다.
세단 스타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이즈를 줄이면서도 실내 공간에서는 큰 손해를 보지 않은 셈이다.
올 뉴 카렌스 실내공간.
다음은 동력성능이다. 여기서 한 가지 전제를 깔고 가야 할 부분은 이 차가 폭주족(?)들을 위해 만든 차는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들을 태우고, 제법 많은 짐을 싣고도 고속도로에서 남들한테 뒤처지지 않을 만큼만 달리면 된다.
그게 기준점이라면 적어도 올 뉴 카렌스 디젤 모델만큼은 기준점을 충분히 넘어섰다.
최고출력 140마력, 최대토크 33kg·m의 1.7ℓ 디젤 엔진은 1520kg의 차체를 가볍게 잡아끈다.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여보니 오르막 경사로가 시작되는 지점이었음에도 불구, 속도계가 빠르게 올라간다. 시속 160km까지는 무리 없이 속도가 붙는다.
다만, 고속에서는 핸들링이 다소 불안하다. 반응이 한 타이밍씩 늦는 느낌이 들어 곡선 주로에서는 속도를 높이기 힘들다. 서스펜션 역시 다소 물컹한 느낌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올 뉴 카렌스는 가족 지향적이고 실용적인 차다. 교통법규를 벗어난 수준의 거친 운행은 불필요하고, 서스펜션 튜닝도 운전자보다는 동승자에 좀 더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
서춘관 기아차 국내마케팅실장(상무)은 이날 시승에 앞선 차량 브리핑에서 "2.0ℓ 디젤엔진 채택 여부도 고민했지만, 승용차에 가까운 올 뉴 카렌스의 콘셉트로 볼 때 SUV와 같이 파워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세단감각의 정숙성과 경제성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1.7ℓ 디젤엔진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숙성에도 많은 신경을 쓴 듯하다. 고속 주행시에 풍절음도 크지 않고, 엔진음도 같은 1.7ℓ 디젤 엔진을 얹은 i40보다 한결 조용하다.
동승자가 뿜어댄 담배연기를 빼내기 위해 잠시 창문을 열었더니 우레와 같은 바람소리가 귀청을 뒤흔든다. 차량의 정숙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경제성이다. 일단 시승차인 올 뉴 카렌스 1.7 디젤 모델의 공인연비는 복합연비 기준 13.2km/ℓ다. 고속도로와 시내 도로가 포함된 구간을 시승 후 체크한 연비는 12.4km/ℓ로 공인연비보다 다소 낮게 나왔다. 주행성능 테스트를 위해 무리하게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다면 얼추 공인연비와 비슷하게 나왔을 듯하다.
LPG 연료를 사용하는 2.0 LPI 모델은 9.0km/ℓ의 연비를 공인받았다. 구형 카렌스(7.7km/ℓ)에 비해 17%나 개선된 수준이다. LPG는 연료 가격이 저렴한 대신 디젤이나 가솔린보다 연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연비 개선이 이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가격은 디젤 모델이 2085만~2715만원, LPI 모델이 1800만~2595만원이다. LPI 모델 기본트림에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가격(1965만원)과 비교할 때 디젤 모델 기본트림(자동변속기 기본장착)이 120만원 비싸다.
통상 경쟁사의 다른 차량의 디젤 모델이 LPG나 가솔린보다 200~300만원 비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가의 디젤엔진을 얹은 데 따른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구형 카렌스와 비교하면 최고 트림은 올 뉴 카렌스가 193만원 비싸지만, 올 뉴 카렌스의 최고 트림인 노블레스는 기존에 없던 럭셔리 사양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것으로, 하위 3개 트림을 가지고 비교해야 한다는 게 기아차 측의 설명이다.
기아차의 주장대로 하위 3개 트림끼리 비교하면 올 뉴 카렌스가 구형 대비 5~102만원 저렴해졌다. 사양은 다소 가감이 있지만, 올 뉴 카렌스 쪽이 우세한 편이다.
종합해보면, 올 뉴 카렌스는 스타일, 실용성, 성능, 경제성 등 어느 것 하나 월등히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는, 적절한 절충점을 잡은 모델로 평가된다.
아쉬운 점은 디젤 모델에 7인승(3열)을 내놓지 않고 5인승(2열)으로만 운영한다는 점이다. 구형 카렌스와 같은 쓰임새에 디젤엔진이 장착된 신모델을 기다려온 소비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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