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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노케 하는 일본 전범기 격퇴 '시작이 반'


입력 2013.08.18 09:59 수정 2013.08.19 10:15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국제사회, 하켄크로이츠 깃발과 비교해 인식 차이

도쿄올림픽 유치 앞둔 상황 감안해 IOC 등에 강력 어필

일본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 경쟁에 뛰어든 상황임을 감안했을 때, IOC 등에 일본 전범기 문제를 이슈화 해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것도 방법이다. ⓒ 연합뉴스

지난달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한일전 당시 한국 응원단이 관중석에 내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격문과 안중근 의사, 이순신 장군 그림에 대해 일본축구협회가 국제축구연맹(FIFA)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는 당시 일본 응원단 중 일부가 이른바 ‘일제 전범기’를 응원도구로 사용해 한국 응원단을 자극, 일본 측이 사태의 원인제공을 했다고 맞섰다.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속된 말로 ‘말발이 먹히는’ 쪽은 어느 쪽이냐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 쪽의 문제제기는 충분히 말발이 먹힐 수 있다. 박종우가 202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4위 결정전 직후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피켓을 들고 그라운드를 돌며 세리머니를 펼친 행동 때문에 메달 수여에 참석하지 못했던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욱일승천기’라고 칭하는 일본의 전범기 사용 문제에 관한 문제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정식으로 문제 삼기가 쉽지 않다. 아시아를 제외한 국제사회에서 일제 전범기에 대한 인식이 불분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런던올림픽에서는 일제 전범기를 변형한 디자인의 유니폼을 착용한 일본 체조대표팀선수들에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물론 경기장의 대회 관계자 그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 그 예다.

독일 축구팬이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들고 독일과 프랑스의 친선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경기장에 나타나 독일 대표팀을 응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해당 관중은 곧바로 경찰에 체포됐을 것이고, 독일축구협회도 FIFA로부터 중징계를 면키 어려울 것이며, 더 나아가 독일 정부가 나서서 공식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유럽 사회에서 나치 하켄크로이츠 깃발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끔찍하면서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일본 가라데를 배운 현지 사람들은 일제 전범기 마크가 새겨진 도복을 입거나 머리띠를 두르는 경우가 있다. 그들에게 일본 전범기 문양은 그저 일본 고유의 전통을 상징하는 문양쯤으로 인식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은 지난 3월 UFC 스타 조르쥬 생피에르가 전범기가 그려진 도복을 입고 경기에 나선 데 대해 팬들의 도움을 받아 전범기는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메시지를 SNS를 통해 전달, 생피에르의 사과를 받아내는 한편 해당 도복 제조 업체로부터 다시는 전범기 문양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당시 생피에르가 정찬성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했던 해명은 전범기 의미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전범기에 서린 의미를 알았다면 문제의 문양이 그려진 도복을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정찬성은 지난 4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조제 알도와 UFC-163 페더급 타이틀전을 벌이기에 앞서 일제 전범기가 그려진 의상의 착용을 금지하도록 요청하는 서한을 UFC 관계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찬성은 서한에서 “욱일기는 전범기로, 정의와 UFC를 위해 욱일기 문양이 들어간 의류와 장구류 착용을 금지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선수들을 포함한 대다수 서양인들은 욱일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잘 모른다”며 “욱일기는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마찬가지로 군국주의와 전쟁범죄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또 “부당한 침략, 고문, 학살, 성노예, 생체실험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고 이들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UFC가 아시아 진출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 “아시아인들은 선수들이 전범의 상징을 걸친 모습을 보면 분노해 불매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찬성의 이 같은 행동은 한국 스포츠계가 지난 수 십 년간 하지 못했던 일을 혼자 해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예상컨대 정찬성 요청에 UFC가 침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내용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스포츠계도 일제 전범기를 국제사회는 물론 적어도 스포츠 분야에서만큼은 일본 국내에서도 퇴출시킬 수 있는 조직적인 움직임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일제 전범기 퇴출 문제를 한국 스포츠 외교의 중요한 의제로 설정, 세계 스포츠계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시키고 전범기 퇴출을 위한 다각도의 외교적 노력을 펼쳐야 한다는 말이다.

대한체육회 산하의 각종 경기단체에서 종목별 세계협회나 연맹에 일본 전범기가 담고 있는 상징성, 그리고 아시아인들에게 전범기가 현재 어떤 의미로 인식되는지 등등의 내용을 꾸준하게 알리고 홍보한다면 아마도 오래지 않은 시간 내에 좋은 결실을 얻을 수도 있다. 일본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 경쟁에 뛰어든 상황임을 감안했을 때, IOC 등에 일본 전범기 문제를 이슈화 해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것도 방법이다.

LA시 공공사업국은 최근 LA 다운타운 리틀 도쿄 지역의 거리 표지판에 부착됐던 일본전범기 스티커를 모두 제거했다. 문제의 일본 전범기 스티커는 전범기를 하트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최근 광복절을 앞두고 리틀도쿄 거리 도로 표지판 곳곳에 손바닥 크기의 전범기 스티커가 다수 붙어 있어 LA한인회가 로스앤젤레스 시 당국에 제거를 요청, 이에 LA시 당국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제거 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LA시 당국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스티커 제거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최근 미국 내에 일본군 위안부 소녀 동상이 세워지는 등 일제의 만행에 대한 정보들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영향도 무시 못 할 이유로 보인다. 물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일제 전범기 문제를 국제적으로 공론화 시키는 것이 설득력 있겠느냐는 말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지금 시작해서 언제 국제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냐는 회의론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이 반이다. 지금 시작한다면 당초의 예상보다는 훨씬 빠르게 일본 전범기를 국제 스포츠 이벤트 현장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

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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