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강호동 안나와도 지역 주민이 해냈다?
<김헌식의 문화 꼬기>'이장과 군수' '고향극장' '이장님다이어리' 의 공통점
지난 9월 19일 방영된 SBS 추석 파일럿 프로그램 '이장과 군수'는 충남 아산시의 한 마을 명예이장을 둘러싼 선거전을 소재로 담았다. 명예이장의 후보들은 지역주민이 아니라 손병호 그리고 이만기와 같은 유명인이었다. 그들은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정치인들이 벌이는 선거전을 방불케했다. 당연히 이는 정치행태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담기도 했다.
이는 영화 '이장과 군수'(2007, Small Town Rivals)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존 정치의 모순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이 전적으로 주인공은 아니다. 지역주민들은 개인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역주민들로 등장할 뿐이다. 특정 지역 주민으로 말미암아 지역에 대한 조명을 낳을 수도 있다.
요즘 지역을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대국민 이야기쇼 '안녕하세요'가 일반 시청자와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던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다만, 지역 특히 농어촌 지역 주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바로 KBS '고향극장'이 바로 그것이다. 연속극이나 단막 극장의 배경은 주로 서울이다. 꼭 서울이 아니라도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도시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은 시청률을 의식하여 폐지되고 농촌드라마보다는 전원 마을로 바뀌었다.
장기적으로 상업성에 관계없이 지역의 미디어 매개는 공영방송만이 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고향극장'은 지역주민들의 실제 사연을 재구성하고 주민들이 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른바 재연 다큐프로그램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드라마 형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시청자의 참여는 물론 마이너리티 편성 정책에도 부합한다.
주민 배우들은 생생한 리얼리티를 전하며 배경으로만 등장하던 것에서 개인으로 등장한다. MBN '이장님 다이어리'도 이러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세트장은 물론 서울이나 도시가 아니라 전국의 각 마을이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다.
마을 홍보와 상품 선전을 위한 지역 매개 프로그램이 아니며, 무조건 마을이 좋은 곳이라는 점만 강조하지 않는다. 지역 특산품과 음식을 과장하여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다큐는 사실과 모습의 나열이 주를 이룬다. 감성 다큐라고해도 객관성을 유지한다. 이런 지역공간과 주민 매개의 프로그램은 극적인 감성다큐도 아니고 유머러스한 내용이 흥미를 자아낸다. 내레이션은 특정 개인을 대변한다. 즉 그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드러내준다.
정보나 사실의 전달을 통해 내용을 전개하기보다 내러티브ㅡ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드라마 나아가 시트콤을 보는 듯 싶다. 특히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로 쉽게 몰입할 수 있다. 기존의 시골 관련 프로그램들은 화평한 수평적 공간으로만 그린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람은 지역을 갈등과 분란도 있는 곳으로 묘사한다. 욕망이 있고 모더니티가 있는,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곳이다.
특한 행동을 하는 마을 주민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심지어 별난 주인공의 행동이 갈등을 일으킨다. 남성들은 주로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 속을 썩이고 갈등을 만들어내는 인물들 많다. 남성과 여성 성대결이 이루어진다. 남성은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이다. 주로 부부관계의 트러블을 다루어 지역민들도 도시민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점이 적극 부각된다. 또한 여성들 사이의 갈등도 있을 수 있고, 남성들 사이의 갈등과 권력 관계도 이야기의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항상 집단적으로 존재하는 마을 주민들은 도시민들의 시골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프로그램에 '고향'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음은 누구의 시선인지 알 수가 있다. 도시민들을 위한 극장, 배우, 드라마 내지 시트콤이다. 내레이션은 객관적 관찰자 아닌 주관적 스토리텔러로 설명도 하면서 주인공 느낌과 생각을 적극 피력하며 상황이 주는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항상 이벤트가 있는 공간으로 오해를 줄 수 있다. 항상 먹을거리와 놀거리, 집단적으로 행사가 존재 하는 공간으로 비쳐진다. 사투리는 재미를 위한 수단으로 여전하다. 그들의 고민은 물론 마을 현안은 먹고 사는 문제는 물론 부채 문제, 지역 개발 문제, 작목 선정 문제 등 다양하다.
재미와 유희적인 내용이 아니라 삶의 애환 속에 나오는 웃음이 더 강한 효과를 낳는 법이다. 이른바 페이소스가 있는 유머를 구사하는 내용이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아주 희극적인 내용과 감동적인 내용이 적절하게 병행되어야 한다.
지역주민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되어야 하며 촌스러움이 우스운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향이 모두 시골은 아니며 산골만이 아니라 읍내의 도시성을 배제하지는 말아야한다. 논과 밭, 갯벌 등이 많은 공간적 배경은 도시성 인위적 배제 전략으로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항상 같이 야외에서 밥을 짓고 모여서 식사를 같이 하는 모습이 많은 것은 여전히 지역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나타낸다. 여름내내 시냇가에서 음주와 식사가 많았던 것도 이런 맥락안에 있었다.
시청자 참여의 예능은 전문 예능인이 중심이다. '안녕하세요'와 같이 예능인과 시민이 참여하는 모델은 물론 '이장과 군수'도 그러했다. 거주자와 방문자의 구도에서 방문자의 시도가 아니라 지역민의 관점과 느낌이 전달 되는 것은 흔하지 않았다.
당연히 방송 프로그램의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시청자 참여와 이용 충족의 관점이 반영돼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시골만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이런 방식이나 소재가 적극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경제 논리만으로 지역 상품이나 관광 유도를 방송이 매개해야 한다는 강박 심리에서도 스스로 좀 자유롭다. 하지만 여전히 누구의 시선을 위한 극장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