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선군정치´ 주장은 거란의 ´타초곡´이라는 식량조달방법과 닮은꼴
캐세이 퍼시픽(Cathay Pacific)이라는 홍콩 항공회사가 있다. 이 회사의 ´캐세이´라는 이름은 ´키타이(Kitai)´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키타이´란 ´거란(契丹)´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란´은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라는 거란족 영웅이 세운 나라다. 만주와 중국의 하북지방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요(遼)나라다.
거란이 세력을 떨치면서 ´키타이´는 중국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터키, 러시아, 페르시아 지역 등에서 중국을 ´키타이´라고 하더니, 영어로도 ´캐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차이나´처럼 ´캐세이´도 중국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거란의 군사력은 대단했다. 병사들에게 1인당 말 3마리씩을 끌고 다니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말을 아무 때나 타지 못하게 했다. 말의 힘이 가장 왕성할 때 전투를 하기 위해 돌격명령이 내리고 난 후에야 말 위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해서였다. 이런 말을 번갈아 타며 적진을 돌파했다.
또한 병사들을 3등급으로 구분했다. 가장 뛰어난 병사에게는 좋은 장비를 지급하고, 후방에 배치했다. 최전방에는 전투경험이 없고, 능력도 뒤지는 병사를 세웠다. 가운데 등급의 병사는 중간에 배치했다.
전쟁터에서 맨 앞에 서고 싶은 병사는 없는 법이다.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전투기술을 연마했다. 그래야 후방에 배치될 수 있는 것이다. 전투력이 향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말에, 좋은 병사였다.
그랬으니 거란의 군사력은 최강이었다. ´발해 사람 3명이면 호랑이도 잡는다´던 나라, 발해마저 제압했다. 송나라는 ´소수민족´인 거란에게 막대한 조공을 바쳐야 했다. 그래서 ´캐세이´라는 이름을 오늘날까지 남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막강한 거란과 싸워 이긴 나라가 있었다. 고려다. 거란의 1차 침입 때는 유명한 ´서희의 외교´가 있었다. 3차 침입 때는 ´강감찬의 무용담´이 있었다. 강감찬에게 패하고 물러간 거란은 더 이상 고려를 넘볼 수 없었다. 이후 고려는 100년 동안이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고려의 국력은 이처럼 만만치 않았다.
거란은 ´타초곡(打草穀)´이라는 독특한 제도도 운영했다. 식량이나, 말먹이가 모자라면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타초곡기(騎)´라는 부대를 동원해 부족한 식량과 말먹이를 ´점령지역´에서 구하도록 했다. 글자 그대로 풀을 베듯 훑어버리는 약탈이었다.
원칙적으로는 병사들에게 각자 식량을 가지고 다니도록 했지만, 원칙일 뿐이었다. 장기간 원정을 하다보면 식량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병사들은 1인당 말 3마리도 먹여야 했다. 그 많은 식량을 구하는 방법은 ´현지조달´밖에 없었다.
식량을 현지에서 조달하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었다. 적의 식량으로 아군을 배부르게 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의 힘을 그만큼 약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송나라에게 받은 조공도 당초 명분은 ´병사들의 급료 지급´이었다. 변형된 ´타초곡´이었다.
그런데 거란의 ´타초곡´이라는 식량조달방법은 어딘지 모르게 북한과 닮은꼴인 느낌이다. 식량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남쪽에게 의존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가 지원한 쌀이 군사용으로 사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들 믿고 있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상대방의 식량으로 배를 두드리면서, 상대방의 힘은 그만큼 약화시키는 ´일석이조´를 거둘지도 모르는 것이다.
북측은 이번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선군(先軍) 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희한한 발언까지 했다. 거란처럼 ´선군´으로 군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식량도 군에 가장 먼저 배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더구나 북측은 당연하다는 듯이 식량을 요구했다. ´선군 정치´로 ´남조선´을 보호해줄 테니 쌀을 바치라는 태도처럼 보였다. ´민족끼리´라면서도 거란이 ´점령지역´에서나 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태도였다. 그것도 자그마치 50만t이다. 그랬으니 마치 ´타초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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