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도 망쳤는데 봉수대 복원 쯤이야...?

최진연 유적전문기자

입력 2013.11.16 10:21  수정 2013.11.16 10:27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정체성 상실 ‘부산 황령산봉수’ 복원봉수 중 가장 졸작

부산의 야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황령산(427m)은 동래의 금정산과 함께 도심 속 명산이다. 해운대와 광안리 앞바다를 잇는 광안대교의 야경, 특히 분수처럼 포물선을 그리는 불꽃축제의 감상 장소로는 그저 그만이다.

또한 바다와 내륙의 시계가 탁 트여 옛 부터 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가 산 정상에 축조됐다. 황령산봉수의 초기설치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문헌에 등장한 것은 세종 7년(1422)부터다. 이 봉수는 전국의 다섯 갈래 봉홧불 노선 중에서 제2노선 직봉의 연변봉수다.

정체불명으로 복원한 황령산봉수ⓒ최진연 기자

조선시대 초에는 서쪽 석성봉수에서 봉화를 받아 동쪽 간비오봉수로 횃불이 전달했으며, 후기에는 서쪽 구봉봉수에서 북쪽 계명산봉수로 연결됐다. 황령산봉수는 동래부에서 관리했으며 100여명의 군사가 주둔했다. 임진왜란 때는 부산에서 가장먼저 봉화를 올려 이지역의 중심봉수 역할을 했다.

전기·전신의 발달로 봉홧불이 멈춰버린 후, 100여년동안 훼손방치된 것을 부산시에서 1976년에 복원했다. 하지만 고증 없이 복원해 연조· 연소실 등 봉수대 원래모습은 사라지고 정체성마저 상실되고 말았다. 이후 1992년과 1995년, 1996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보수했다지만 복원한 국내봉수 중에서 가장 졸작이다.

정상에 봉수와 나란히 세운 송신탑ⓒ최진연 기자

부산시는 매년 새해아침 산신제와 봉화행사 등 이벤트 행사를 봉수대에서 개최하고 있다.
2009년에는 ‘황령산 봉수대 전망시설 및 주변정비사업’을 벌여 산 정상에 공원도 꾸몄다.
하지만 봉수대 시설은 흉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봉수대를 보존하자는 향토사학가들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황령산은 남구·연제구·부산진구 등 4개구가 연결돼 있는 부산에서 두 번째 높은 산이다. 남미대륙 안데스산맥의 화산에서 많이 발견되는 안산암으로 이뤄져 경관도 수려하다. 일제강점기 때는 구리와 금을 캐는 큰 광산이기도 했다.

봉수대에서 본 광안대교 전경ⓒ최진연 기자

황령산은‘반보기산’으로도 불렀다. 출가한 여인네들의 슬픈 전설이 숨어 있는 산이다.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던 옛날 여인들은 떠나온 친정집 부모형제가 그리움을 때는 이산에 올라 친정 쪽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 더러는 친정식구들과 황령산에서 만나 반나절 동안 마음을 주고받았다고 해 반보기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무수한 옛 이야기가 널려 있는 황령산봉수대는 언제 다시 제 집을 찾을까?

해운대 바다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국가안위를 책임졌던 옛 군사들의 혼령이 황령산봉수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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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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