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최고의 대회였다”는 안현수 말과는 달리 한국 남자 쇼트트랙에는 잊지 못할 최악의 대회로 남게 됐다. ⓒ 연합뉴스
부상과 파벌 논란을 딛고 조국을 떠나야했던 '빅토르 안' 안현수(29·러시아)가 8년 전 ‘쇼트트랙 황제’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전과 같은 곱상한 얼굴에 이전과 같은 언어를 구사했지만, 그의 가슴에서 더 이상 태극마크는 찾아볼 수 없다. 지난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는 이제 새 조국에도 3개의 금메달을 선사하며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심각한 부상으로 선수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좋은 조건과 시민권을 약속했다. 또 전폭적인 지원으로 재기를 도왔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안현수는 22일(한국시각) 김연아(24)의 피겨 스케이팅이 열렸던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치른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폭발적인 스피드를 뽐내며 러시아의 금메달을 견인했다. 계주를 마지막으로 소치올림픽 출전 종목을 모두 끝낸 안현수는 금메달 3개(500m·1000m·5000m 계주)와 동메달 1개(1500m) 등 전 종목(4개)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사실 안현수가 러시아 대표로 변신해 소치올림픽에 나섰을 때만 해도 전문가들은 재기 가능성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릎 부상 이후 재수술이 이어지며 재활 속도도 더뎠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러시아 대표팀 선수들과 훈련해왔기 때문이다. 뚜껑이 열리자 우려했던 전문가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한국 남자 쇼트트랙이 문제였다. “잊지 못할 최고의 대회였다”는 안현수 말과는 달리 한국 남자 쇼트트랙에는 잊지 못할 최악의 대회로 남게 됐다. 당초 우려했던 ‘노골드’를 넘어 ‘노메달’에 그쳤기 때문이다. 쇼트트랙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국 남자 쇼트트랙이 노메달에 그친 것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이후 12년 만이다.
8년 전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2006 토리노올림픽에 이어 또 3관왕을 차지한 안현수는 완벽한 기술과 체력에 노련미를 더해 쇼트트랙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선수가 됐다. 안현수가 두 번의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목에 건 금메달만 무려 6개. 쇼트트랙 사상 최고의 성적표를 받았던 중국 왕멍(29)의 금4·은1·동1개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또 올림픽에서만 8개의 메달(금6·동2)을 수확, 쇼트트랙 올림픽 최다 메달(8개) 기록 보유자인 안톤 오노(32·미국)와도 타이를 이뤘다. 하지만 오노는 금메달이 2개에 그쳐 안현수와는 우열을 가리는 대상이 되기 어렵다.
쇼트트랙 전 종목 메달의 주인공이 됐던 안현수가 다시 한 번 전 종목 메달 위업을 달성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숱한 역경 끝에 조국을 놓으며 ‘배신자’라는 모욕까지 들었던 안현수의 눈물겨운 금빛 대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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