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이상한' 사람들의 멋드러진 천국에 가다
<유럽에 미치다②-스웨덴 입문>행복하기 위해 겪는 그들의 불편함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삐삐 롱 스타킹’, 식물 분류법의 린네와 알프레드 노벨, ‘제7의 봉인’ ‘화니와 알렉산더’의 잉그마르 베르히만, 그레타 가르보와 잉그리드 버그만, 아바와 에이스 오브 베이스,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 그리고 ‘어벤져스2’의 스칼렛 요한슨...이 내로라는 세계적인 유명인들이 나고 자라고 살던 곳이 있다.
마치 저주받은 대지마냥, 1년 중 8개월 이상이 얼어붙는 동토의 땅이 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하지만 그런 땅 위에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인생들을 만든 나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보석 스웨덴이 바로 그곳이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하늘을 거쳐 다다른 스웨덴의 하늘에서 본 대지는 온통 푸른색과 파란색이다. 10만개가 넘는 호수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오르는 침엽수림, 그리고 깊게 푸른 풀들이 온 대지를 뒤덮어, 국토의 80%가 북극권에 속하는 북위 60도 이북에 있는 얼어붙은 땅이라는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부수는 곳. 그런데 그곳은 정말 이상한 나라다.
스웨덴(Sweden)은 영어. 그들의 언어로는 코눙아리케트 스베리예(Konungariket Sverige), 스베리예 왕국이라고 불린다. 게르만 민족의 방족이며 바이킹의 일족인 스베아르족에서 비롯된 스웨덴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역사를 시작한 것은 대략 서기 500년경으로 전해진다. 10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바이킹 전성시대를 지낸 후 덴마크의 지배를 받다가 1523년 구스타프 바사라는 걸출한 영웅에 의해 독립한 후 북유럽의 최강국이었던 스웨덴은, 신비롭고 의아하며, 그래서 이상한 것이 즐비한 나라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몇 해 전에 듣고 알게 된 것.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스웨덴에 대해 들었던 얘기는, 세계에서 가장 복지가 잘된 나라라는 것이다. 일 하지 않아도 나라에서 먹고 살 돈을 다 대주고, 병들어 병원에 가도 치료비 한 푼 안받는 나라. 사람들이 너무 잘 살고 행복하다 못해 그 행복에 겨워 숱하게 자살해 죽고, 젊거나 늙거나 모든 남녀가 아무나와 거리낌 없이 섹스를 즐긴다는 섹스자유지대. 그렇게 들어온 것이 스웨덴이라는 나라였다.
하지만 실제 가 보고 듣고 느낀 스웨덴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나라에서 돈을 마구 주는 나라도 아니고, 행복에 겨운 사람들이 넋 없이 제 목숨 마구 끊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엄청난 세금을 내고, 늙어서 되돌아온 세금으로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행복을 누리는 나라였다. 그래서 온통 이상한 것 천지인 나라였다.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 국가다. 사실 사회민주주의 개념이 처음 이론화 된 것은 독일이지만 실제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정당이 생겨난 것은 스웨덴이 처음이라고 한다. 1889년 팔름(A. Palm)에 의해 탄생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이하 사민당)은, 1896년 브란팅(H. Brantig)에 의해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하고, 1917년 원내 최대 정당이 된 후 1920년 브란팅이 수상이 되면서 첫 집권을 한다. 그 이후 1932년부터 2006년까지, 1936년부터 3년과 1976년부터 6년을 뺀 60여 년 동안 스웨덴을 집권한 사민당이다 보니 전세계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표상이요, 모토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첫 번째 이상한 것이 나온다. 바로 국왕이라는 반사회주의적인 존재다.
스웨덴은 16세기 이후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주변국가들(노르웨이와 덴마크,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 3국)을 복속하며 대제국을 형성했지만 30년 전쟁(1618~1648)을 정점으로 찍은 후 19세기에 이르러 러시아와 프랑스, 영국과 독일 등에 눌려 쇠약해졌다.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의회의 힘이 강해지긴 했지만 19세기 말 국왕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의회에 넘겨주기 전까지는 분명한 국왕의 나라였다.
대체로 입헌군주제를 택한 나라에서 국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고 하듯, 스웨덴의 국왕도 결코 국정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스웨덴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존재이긴 하지만 때로는 호사스런 왕실에 대해 비판하는 정치인이나 언론도 나온다. 그럼에도 스웨덴에서의 국왕은 영국이나 덴마크, 태국이나 일본 이상으로 모든 국민이 국왕에 기대어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0년 6월 19일 현 국왕인 칼 구스타프 16세의 장녀이자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이 있었다.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인 감라스탄 한복판에 있는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치러진 이 결혼식은 전세계의 왕족은 물론 핀란드와 아이슬란드 대통령 등 1000여명이 하객으로 참석했으며 결혼식 비용으로만 2000만 크로나(SEK. 우리 돈 약 3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이에 대해 스웨덴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생겼다. 하지만 대체로 스웨덴 국민들 모두가 이 결혼식을 환영했고 평민인 스포츠 트레이너를 남편으로 맞은 빅토리아 공주를 축복했다. 당시 스톡홀름을 비롯한 스웨덴 주요 도시 시민들은 당시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과 관련된 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풍요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니 일부 호화 결혼식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인 국민들의 반응은 ‘국가적 축제’ 그 자체였었다.
스웨덴이 이상한 나라인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은 세계 최고의 복지를 누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민소득을 얻고 있지만 무지하게 불편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을 수식하는 말 중에는 복지국가 말고도, 자연환경국가라는 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철저히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고, 그래서 최대 도시인 스톡홀름에서도 매연 냄새 하나 맡을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지금도 그 자연을 더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 나라다. 가정에서는 그 흔한 세탁 표백제를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디에도 공짜로 볼일을 볼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 없다. 관광지는 물론 지하철의 화장실도 5~10크로나(우리 돈 약 750원~1500원)를 주고 들어가야 하고, 그나마 그런 화장실도 자주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스웨덴에서 시내 여행을 하려면 집이나 숙소에서 미리미리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처리를 하고 나와야 한다. 또 아무리 무더운 날씨라도 겁 없이 물이나 음료수를 벌컥거리고 마시는 일은 삼가야 한다.
또 스웨덴에서는 섭씨 30도가 넘는 한 여름 폭염에도 에어컨을 구경할 수 없다. 현지인들의 이야기대로라면 어지간한 가전제품 매장에는 가정용 에어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많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념품 가게나 패션 아웃렛, 그리고 심지어는 구찌나 페라가모 같은 명품 매장에도 에어컨이 없는 곳이 흔하다. 대중교통도 마찬가지다. 스톡홀름 시내버스들 중 에어컨이 달린 차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주 힘겹게 에어컨이 있는 버스를 탔다고 해도 에어컨 바람을 기대할 수 없다. 실제 에어컨이 나오고 있는 차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하철에서도 에어컨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여름이 고온건조한 스웨덴의 자연환경 덕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자연환경을 훼손할 만한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충분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스톡홀름 시내에는 휘발유나 LPG, 또 경유 등을 사용하지 않는 이른바 전기차와 수소차가 상당히 많이 다니고 있다. 얼마 전 통계로는 스톡홀름 전체 교통량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2025년까지 스톡홀름 시내는 완전히 전기차와 수소차로 모든 교통을 담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즉 석유 제품으로 다니는 자동차는 완전히 퇴출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스웨덴이 이상한 나라인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스웨덴에서는 '특별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다지 인기 없다. 남들보다 '똑똑'하거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잘 생기'거나, '탁월'한 사람들은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스웨덴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이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의 정서, 또 국민성을 설명하는 말 중에 '얀테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얀테'는 덴마크 동화에 나오는 어느 마을의 이름. 그 마을은 아무리 우수하고 뛰어난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곳이란다. 그게 스웨덴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라고 한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등등의 생각.
스웨덴의 기초학교 저학년(초등학교) 때 다른 아이들보다 성적이 우수하거나 재능이 뛰어나 이를 으스대는 학생이 있으면 담임은 즉각 부모님을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학생이 계속 자신의 우수함을 자랑할 경우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게 할 수 없다고 통보한다는 것이다. 우수하고 뛰어난 일부의 학생들보다 평범하고 보편적인 다수의 학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것,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애를 써 쌓은 부를 아무 조건 없이 남들과 나눈다는 것이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복지 정책은 스웨덴 국민이 아니어도 차별없이 적용받을 수 있다. 즉 스웨덴을 찾은 여행자가 스톡홀름의 얼란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어서 다쳤다면, 그 여행자는 스웨덴의 병원으로 이송돼 스웨덴 국민과 똑같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자국민이 아닌 며칠 동안 스웨덴을 방문한 사람일지라도 스웨덴 국토를 밟는 순간 스웨덴 국민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최근 몇년 동안 유럽 국가들 중에서 아랍계나 아시아계의 이민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스웨덴이다. 정확한 수치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스웨덴 내 아랍계 이민자의 비율이 20%에 육박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길거리든 지하철이든 사람들 속에서 아랍계통의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스웨덴의 국민들은 자기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느 나라 출신이고, 어떤 민족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2006년 보수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연정 집권 이후 스웨덴의 이민 정책이 다소 보수화 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의 정책과는 별개로 스웨덴 국민들의 이민자에 대한 편견은 전혀 없다. 인도 중국 한국 등의 유학생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미국과는 달리 스웨덴의 대학에서는 그야말로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학생들이 '사실상' 스웨덴 국민으로 살고 있을 정도로 그들은 '남'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는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국민들이다.
스웨덴 여행은 수도인 스톡홀름과 제3의 도시인 웁살라로 떠날 것이다. 멜라렌 호수 위에 떠 있는 14개의 섬으로 이뤄진,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물의 도시 스톡홀름. 그리고 스웨덴 역사의 시발점이며, 노벨상 수상자를 12명이나 배출해낸 위대한 웁살라 대학교를 품고 있는 교육과 역사의 도시 웁살라. 위에서 언급한, ‘이상한 나라 스웨덴’을 기억하면서 떠나게 될 스웨덴의 백야 여행은 유럽의 그 어떤 오래된 도시 여행보다 훨씬 더 특별하고 짜릿한 기억이 될 것이다.
글·사진 이석원 여행작가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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