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미치다⑨-오스트리아 빈2>음악의 도시에서 환희를 노래한다
성 슈테판 성당에서 바라본 빈 시내. ⓒ이석원
빈 시내 호프부르크 왕궁 부근에 있는 모차르트의 동상. 빈 시민들 뿐 아니라 빈을 찾는 여행자들이 반드시 인증샷을 찍는 명소다. ⓒ이석원
쇤부룬 궁전은 프랑스 부르봉 왕가보다 검소한 성격을 지닌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서가 그대로 담겨있다. 방의 갯수만도 1441개 이르는 엄청난 규모지만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 비하면 그 규모는 훨씬 작다. ⓒ이석원
쇤부른 궁전에서도 마리아 테레지아가 가장 사랑하던 공간인 거울의 방. 이 방도 처음 건축 당시 크고 화려하게 설계 됐지만 레오폴드 1세는 설계 도면을 대폭 축소해 방을 만들게 했다. ⓒ이석원
빈 중심가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대형 건물인 국립 오페라극장. 1642개의 좌석과 567개의 입석은 1년 내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2차 대전으로 빈이 폐허가 됐을 때 시민들을 대상으로 국회의사당, 시청, 오페라극장 중 어느 것을 제일 먼저 재건할 것인가 하는 투표를 했을 때 빈 시민들은 오페라극장을 택했다. ⓒ이석원
개관 공연으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올린 이후 오페라극장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공연하지만 그래도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코지 판 투테' 등 모차르트의 작품이 가장 많이 공연된다. ⓒ이석원
모차르트가 빈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집. 이곳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다고 해서 지금은 이 집을 '피가로 하우스'라고 부른다. ⓒ이석원
모차르트의 결혼식이 열렸던 성 슈테판 성당. 하지만 이 성당 밖 한쪽 벽에서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기도 했다. ⓒ이석원
모차르트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 마르크스 묘지. 하지만 이곳이 실제 모차르트의 묘지라고 생각하는 빈 시민들은 거의 없어서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이석원
빈 시립 중앙묘지의 정문. ⓒ이석원
시립 중앙묘지의 가로수 길은 빈 시민들의 산책로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 길에서는 캐럴 리드 감독의 1949년 영화 '제3의 사나이'의 촬영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석원
가운데 여인의 동상이 모차르트의 기념비다. 중앙묘지서 모차르트의 기념비를 찾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꽃이 가장 많은 묘지를 찾는 것이라고 한다. 모차르트 기념비 뒤 왼쪽이 베토벤의 묘지고, 오른쪽이 슈베르트의 묘지다. ⓒ이석원
빈 무도회의 꽃이라고 불리는 왈츠를 세계적인 춤곡으로 만든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 수많은 왈츠곡으로 유명한 그의 장례식에는 빈 시민 10만명이 참석했다. ⓒ이석원
낭만주의 시대 음악가이면서도 베토벤의 음악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평을 듣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묘지. 독일 함부르크 출신인 브람스는 자신의 스승인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산 것으로 유명하다. 29살부터 빈에서 살다가 평생의 외사랑 클라라가 사망한 다음 해인 1897년 빈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석원
괴팍한 성격의 베토벤도 이사가 잦은 편이었는데 그런 중에서도 빈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이 파스콸라티하우스다. 베토벤의 괴팍한 성격을 잘 받아줬던 집주인 파스콸라티 남작의 이름을 딴 집인데, 지금은 베토벤 기념관으로 쓰인다. 이곳에는 베토벤의 라이프 마스크와 그가 사용하던 그랜드 피아노 등이 전시돼 있다. ⓒ이석원
베토벤이 점점 더 심해지는 귓병과 간경화, 우울증 등으로 고통스러워 하던 시절 지냈던 휴양지인 하일리겐슈타트의 베토벤 기념관. ⓒ이석원
시립 중앙묘지에 있는 베토벤의 묘지. 1826년 도나우강변 그나이크센도르프에 있는 동생 요한의 집에 갔다가 제수씨와 심하게 다툰 후 큰 상심을 얻어 추운 겨울 무리하게 빈으로 돌아오다가 병을 얻은 베토벤은 시름시름 앓다가 이듬해 3월 26일 외롭게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빈 시민들에게 큰 슬픔이었고, 그래서 그의 죽음을 배웅하기 위해 장례식에 나선 사람이 무려 2먄명에 달했다. ⓒ이석원
빈 시내 중심에 있는 시립공원 슈타트파크는 1862년 문을 열었다. 거기서 마치 황제처럼 근엄하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슈베르트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무릎 위에는 악보를, 오른손에는 펜을 들고 마치 명상하듯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슈베르트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동상과 함께 빈 슈타트파크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석원
중앙묘지에 있는 슈베르트의 묘지. 그는 빈에서 워낙 유명하고 존경받는 베토벤에 가려서 죽는 날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예술 가곡은 이후 가장 위대한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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