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득 보려고 쓴 손 편지가 독된 이유
<김헌식의 문화 꼬기>때마다 쓴 손편지 '위기돌파용' 각인효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우편물 포스트 서비스(The World’s Smallest Post Service)가 있다. 보내고 싶은 편지 문구를 의뢰하면 세계에서 가장 작게 그린 손 편지로 바꿔 적어 원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다.
의뢰자가 보낸 편지는 돋보기를 이용해야 할 만큼 작은 글씨로 쓰고 이를 다시 일반 우편 봉투에 담는다. 이렇게 작은 글씨는 귀엽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아야 하기 때문에 보내는 사람의 뜻을 좀 면밀히 살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손 편지는 정서적인 효과가 뛰어나기로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시대에 쉽게 그리고 획일적으로 사용하는 인쇄체 편지보다는 더 아날로그 감수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e-메일의 기계적인 텍스트를 손으로 바꿔준다는 ‘스네일 메일 마이 이메일(Snail Mail My Email)’ 운동이 크게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소중한 자신만의 편지가 된다고 하니 그것은 가치의 증대 현상이 일어난다. 손 편지 스타일은 두 사람간의 밀접한 인간관계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이들이 상대방에게 자신만의 정서적 가치를 부여할 때 사용되어 왔다. 그 가운데 대중연예인들이 있다.
지난 9월 11일 틴탑은 앨범 ‘틴탑 엑시토’(TEEN TOP EXITO)의 타이틀곡 ‘쉽지 않아’의 가사를 공개했는데 엽서의 손글씨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감성적인 정서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배경으로 글씨가 있어 마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그곳에서 보낸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손 글씨는 이렇게 홍보 마케팅에 많이 사용되는데 그 안에는 우리는 다른 업체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심리가 있다. 상술이나 이익만을 밝히지 않고 고객이나 소비자를 좀 더 따뜻하게 배려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손글씨들은 뷰티 매장, 미용실, 음식점, 휴대폰 매장, 마트, 교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 물론 이 때문에 또 하나의 획일화 현상을 낳는다. 이외에도 문장 구성력 결핍, 표절 등 여러 문제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컴퓨터 타이핑의 일상화로 손글씨를 쓰지 않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한국만은 아닌 듯하다. 중국 북경신보(北京晨報)는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등 주요 12개 도시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대상자의 94.1%는 펜을 들면 글자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대학생, 연구자, 회사원, 교수에 이르기까지 손 글쓰씨를 잘 못쓰고 오탈자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제도적인 조치를 모색하기도 한다. 초등학생의 경우는 컴퓨터를 사용해 숙제하지 못하게 하거나 대학생은 리포트를 작성할 때 50~60%는 직접 손으로 써서 제출하게 하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일부 교수들은 한국에서도 리포트를 손으로 써서 낼 것을 요구한다.
교육적이나 의학적 효과를 강조하여 손글씨쓰기를 유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미 플로리다 인터내셔널대학의 연구(2013)에 따르면 손으로 글씨를 쓰는 학생은 읽는 법을 배우는 속도가 더 빠르고 정보를 오래 유지했다. 손글씨에 익숙한 초등학교 2학년 그룹은 읽기·수학 성적 평균 학점이 B였고, 서툰 그룹은 C학점이었다.
미국 인디애나대 카린 제임스 교수의 연구(2013)에서는 손글씨를 쓸 때 이미지를 형상화하면서 그림을 그려 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고 했으니 이는 모두 손 글씨가 지능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이다. 어린시절부터 손글씨를 써야 하는 교육적 이유이기도하다. 어린이들에게 글자를 보이며 따라 쓰게 하면 뇌신경 이미지가 어른 뇌와 비슷하게 나온다는 연구도 있다. 물론 어린이들에게만 손글씨가 좋은 것은 아니다. 손글씨를 자주 쓰는 노인들에게는 치매가 예방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대개 손 글씨를 쓰지 않는 이유는 편리성 때문이다. 종이에 쓸 경우 이를 복사 공유, 보관하는 것이 어려워 잘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극복한 기술도 선을 보였다. 몰스킨(Moleskine)의 라이브스크라이브(Livescribe)는 종이에 쓴 글씨를 인식해 아이패드 등에 그대로 옮겨준다. 직접 타이핑을 하지 않고 그 사람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복사와 전송, 유통, 공유, 보관이 용이해지는 것이다.
최근 이병헌이 아내 이민정에게 보낸 손 편지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손으로 눌러쓴 자필의 종이 편지였는데, 이 편지가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병헌은 예전부터 손 편지를 자주 사용했다. 예전 여자 친구에게 피소를 당했을 때도 손 편지를 썼고 이민정과 버킷챌린지를 할 때도 손편지를 했다. 이러한 손 편지는 진실함과 순수함을 통해 정서적인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음담패설 협박 사건을 당한 이병헌은 역시 손편지를 작성해 이민정에게 보냈고 이를 공개했지만 이번 손 편지는 부정적인 효과가 강력했다.
왜 그러했을까. 마치 손 편지만 쓰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에 대한 분노일수 있다. 명백히 잘못된 사안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손 편지라도 해도 묵과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분노의 대상이 된 것이다. 내용도 잘못에 대한 반성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로써 손 편지도 아무 때나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미 여러 차례 효과를 본 탓에 이병헌은 이번에도 손 편지를 통해 자신의 난처한 상황을 돌파하려한다는 각인 효과를 낳았다.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들으면 싫어지는 법이가도 하다. 어떻게 보면 작성을 했더라도 편지 자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것이 노리는 효과는 너무나 자명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씨가 기계적인지 손으로 쓴 것인지가 아니라 그 글씨를 쓰는 사람의 마음과 뜻일 수밖에 없다. 손글씨로 적은 마음은 겉으로 감동을 줄 수 있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오히려 특정한 정서적 효과만을 노리는 것으로 여겨져 오히려 역작용이나 반작용이 있는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손편지는 디지털 시대의 대세 속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만 잘못하면 독약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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