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결산②] 상반기 '별그대' vs 하반기 '장보리'
톱스타 김수현·전지현 주연, 한류 열풍 재점화
막장 드라마에도 국민적인 인기 이끌며 화제
올해 방송된 다수의 지상파 드라마는 시청률 가뭄에 허덕이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톱스타를 기용했음에도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 줄을 이었고, 언제 종영했는지 모를 정도로 소리 소문 없이 막을 내린 드라마도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가 있으니. 주인공은 '별그대'와 '장보리'다. 두 작품은 시청률 면에서도 성공했지만 방영 내내 화제를 몰고 다니며 열풍을 일으켰다.
전지현·김수현, 최고의 호흡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
천송이와 도민준의 효과는 대단했다. 지난해 12월 첫 방송한 '별그대'는 톱스타 전지현이 무려 14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하는 작품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결혼 후 처음으로 시청자들과 만난 전지현은 당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영화 촬영보다 떨렸다"고 복귀 소감을 전했다.
사실 전지현은 연기보다 비주얼이 돋보이는 배우였다.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 청순한 이미지는 뭇 남성팬들을 설레게 했다. 전지현은 작품 활동보다 TV 광고를 통해 대중과 만나는 일이 잦았다.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2004) 이후에는 흥행한 작품이 거의 없어 아쉬움을 자아냈다. 일각에서는 "연기는 못 하고 얼굴만 예쁜 배우"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연기에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건 결혼 후였다. 영화 '베를린'에서 연기 변신을 시도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운명적인 작품인 '별그대'에서 톱스타 천송이를 연기해 화려하게 복귀했다.
천송이는 백치미 넘치는 한류스타로 안하무인에다 천방지축 성격을 갖고 있다. '전지현이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전지현은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푼수기가 다분하고 사랑스러운 톱스타 역은 전지현에게 제격이었다. 연출을 맡은 김태유 PD는 "전지현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캐스팅 비화를 전하기도 했다. 만취 상태로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을 부르는 장면, 도민준에게 메시지를 잘 못 보내 후회하는 모습, 도민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지현의 활약도 돋보였지만 그를 받쳐준 김수현의 존재감도 상당했다. 김수현이 맡은 도민준은 극 중 현직 대학강사지만 사실 400년 전 조선 땅에 떨어진 외계인이다. 완벽하고 신비한 남자의 이미지는 잘 생긴 김수현과 맞아 떨어졌다. 천송이를 향해 무뚝뚝하게 툭 던진 한 마디는 여성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놨고, 반듯하고 바른 이미지는 호감도를 높였다.
김수현은 특히 MBC '해를 품은 달' 이후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리며 연기력과 흥행력을 동시에 갖춘 스타로 발돋움하게 됐다. 영화 '도둑들'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배우와의 어울림)은 완벽했고, 이는 시청률로 이어졌다.
첫 방송에서 15.6%(닐슨 코리아·전국 기준)를 기록한 시청률은 방송 4회 만에 20%를 돌파했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28.1%를 나타내며 화제 속에 막을 내렸다.
드라마는 방영 내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전지현·김수현의 옷과 드라마에 등장하는 소품, 책 등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방송이 끝났다 하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별그대'가 장악하기도 했다. 타방송사의 경쟁작들은 '별그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야말로 독주였다.
인기는 국경을 넘었다. 특히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다소 주춤하던 한류를 재점화시켰다. 극 중 천송이의 대사인 "눈 오는 날에는 치맥(치킨과 맥주의 줄임말)인데"라는 대사 덕분에 중국에서는 치맥 열풍이 불기도 했다. 더불어 전지현과 김수현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최고의 한류스타로 우뚝 서게 됐다.
국민 막장 드라마 '왔다! 장보리'(이하 '장보리')
'연민정', '보리 보리', '찌끄레기 검사', '문지상'. 지난 10월 종영한 '장보리'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작품이다. 드라마는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막장 드라마라는 비판에도 시청률 30%를 돌파한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보리'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자극적인 설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어렸을 때 친엄마의 악행을 목격한 후 사고를 당해 모든 기억을 잃은 장보리(오연서)가 야반도주 중인 도씨(황영희) 모녀에 의해 길러지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내용이다. 국내 방송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뻔한 통속극으로 불륜, 음모, 복수, 악행 등 막장 드라마의 설정이 넘쳐난다.
지난 4월 첫 방송에서 9.8%를 기록한 시청률은 극이 진행될수록 상승했고, 극 후반부에 이르러 30%를 돌파했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35.0%를 나타냈다. 극의 중심에는 악녀 연민정을 연기한 이유리가 있었다.
연민정은 출세를 위해 남자친구를 배신하고, 아기까지 버린 악독한 여자다. 원하는 걸 쟁취하기 위해 장보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전 남자친구 문지상(성혁)을 죽이려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뼛속까지 악인인 연민정 역에 '착한 얼굴'의 이유리를 캐스팅 한 건 제작진의 '신의 한 수'라는 평가다.
연민정은 이유리의 진가를 볼 수 있는 캐릭터다. 악행은 밉지만 연기를 잘해 미워할 수 없었다. 시청자들이 욕하면서도 보는 이유다. 눈을 부릅뜨고 "문지상!"이라고 외치는 표정, 보리에게 '후'를 날리는 장면, 유산한 사실을 숨기려 비빔밥을 먹는 장면은 이유리만이 할 수 있었다. 시청자 게시판에 "올해 연기대상은 이유리에게 줘야 한다"는 글이 올라올 정도.
이유리를 대적한 문지상 역의 성혁 또한 오랜 연기 내공으로 캐릭터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시놉시스에 문지상은 딱 두 줄만 나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성혁은 10년 연기 경력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극이 진부해질 즈음 문지상의 펼치는 복수는 짜릿한 통쾌함을 선사했다.
주인공 장보리, 이재화를 연기한 오연서와 김지훈 또한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얻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오연서는 씩씩한 캔디 캐릭터를 극대화해 맑고 순수한 여성으로 표현했다. 그가 펼치는 차진 전라도 사투리는 입에 착착 감겼다.
김지훈은 보리의 수호천사로 분해 여성 시청자들의 로맨스 판타지를 충족시켜줬다. 그간 무거운 연기만 했던 그는 소년 같은 천진함으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비단이 역의 '연기 신동' 김지영을 비롯해 도씨 역의 황영희, 인화 역의 김혜옥 등 조연들도 감칠맛 나는 연기로 극의 재미를 더했다.
제작진의 힘도 인기 요인이었다. '아내의 유혹', '천사의 유혹' 등에서 '복수의 끝'을 보여준 김 작가는 이번 드라마에서도 복수를 전면에 내세웠다. 자극적이고 뻔하지만 끌리는 게 김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한 회에 갖가지 사건과 웃음 요소를 적절히 버무려 극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연출은 맡은 백호민 PD 또한 '욕망의 불꽃'과 '메이퀸'을 통해 시청률에서 재미를 본 감독이다. 시청률이 보장된 작가와 PD의 조합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애청자들은 '장보리'에 대해 "고품격 막장", "급이 다른 막장"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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