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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와 통구이와 오뎅, 이래도 사용하시겠습니까?


입력 2015.02.18 10:19 수정 2015.02.18 10:29        조성완 기자

특정 지역이나 특정사건 비하 인터넷 범람

전문가들 "자정노력 높이고 법률도 개정해야"

‘홍어, 통구이, 어묵, 학식...’

얼핏 보면 평범한 음식 이름이다. 실제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겨먹는 음식들이 맞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해당 단어들의 숨은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용하는지 진심을 묻고 싶을 정도다.

‘홍어’는 전라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전라도에서는 잔칫상에 홍어가 없으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홍어 사랑은 각별하다. 전라도의 대표 음식은 홍어가 언제부터인가 해당 지역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홍어 택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무력진압 과정에서 희생됐다. 일일이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시신들은 관에 뉘여진 채 가족들을 기다렸다. 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한 네티즌은 ‘배달될 홍어들 포장완료’라고 표현했다. 시신이 부패하면서 나는 냄새를 홍어 삭힌 냄새에 비유한 것이다.

지난 2003년 대구시에서는 정말 가슴 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한 정신지체장애인이 휘발유에 불을 붙여 모두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다친 ‘대구지하철 참사’다. 올해로 12주기를 맞은 해당 사건은 아직도 대구시민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대구시민들을 분노케 하는 것도 존재한다. 바로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화재로 숨진 시민들을 비하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단어 때문이다. 그들은 희생자들이 화재로 사망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통구이’로 표현하고 있다.

‘어묵’과 ‘학식’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전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참사’. 해당 사건은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10대 청소년들이라는 점이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앞서 2월에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지붕이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부산외대 아시아대학 신입생과 이벤트 회사 직원 등 10명이 숨지고 105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일부 철없는 네티즌들에게는 이마저도 유희꺼리에 불과했다. 그들은 세월호 희생자들이 바다 속에서 유명을 달리한 점을 상기시키며 ‘어묵’으로 표현했다. 한 네티즌은 ‘부산외대 학식’이라는 제목으로 제사상을 찍은 사진과 함께 “1년에 한번만 먹을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누구나 듣기만 해도 치를 떨 수 있는 이 같은 표현들이 인터넷 상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해당 지역을 비하할 때 버젓이 문제의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지역감정 싸움에 해당 표현들이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뒤에 익명으로 숨어서 특정 지역이나 특정인을 모욕하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 풍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 출처 saboteur365.com

가장 대표적인 곳이 ‘스포츠’,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프로야구’다. 프로야구에서 각각의 팀은 연고지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삼성 라이온즈는 대구시를, 기아 타이거즈는 광주시를 연고지로 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해당 팀의 기사를 두고 논쟁을 벌이면서 어김없이 ‘통구이’, ‘홍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전체가 아닌 일부 네티즌들이 쓰다보면 이내 ‘무슨 뜻인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잠시 뒤 또 다른 네티즌들이 그 의미를 설명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단어들은 논쟁 과정에서 상대지역을 비하할 때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즉,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스포츠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역을 둘러싼 댓글 논쟁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대구지하철 참사로 지인을 잃은 박모 씨(35)는 14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지금도 그 사건은 잊을 수 없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며 “그런 아픈 사건을 두고 ‘통구이’라고 비하하는 자들을 과연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갈등이 격화됨에 따라 ‘아군과 적군’만 존재하고 중간지대가 사라지는 데 따른 사회적 분위기가 인터넷 문화에도 그대로 녹아든 결과라고 분석했다.

SNS 컨설던트인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인터넷 상에서 그런 용어들은 언제나 있었다”며 “사회 갈등이 격화되면서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과도하게 상대방을 폄하하는 부분이 좀 더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흔히 말하는 ‘표현의 자유’가 잘못 해석된 결과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자기 주장을 함에 있어서 억압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인 표현의 자유가 ‘남이 피해를 보든 말든 내 멋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으로 왜곡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나도 비판 자격이 있고, 나도 내 입으로 말할 권리가 있다’는 민주주의가 네티켓이라는 문화가 잘 정착되지 않은 가운데 잘못 해석된 표현의 자유가 결합되면서 자유만 누리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처럼 도를 넘은 표현들이 판치는데도 통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망법은 유통되는 정보가 사생활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되면 서비스 제공자가 30일 이내에 조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정부차원의 규제도 없기 때문에 피해자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를 요청하거나 게시자를 찾아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게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개인이 인터넷 상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이 같은 표현들을 일일이 훑어서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는 동안에도 이런 막장 표현들은 인터넷을 떠돌면서 소리, 소문 없이 확산되고 있다.

결국 남은 것은 네티즌의 자정작용에 기대는 수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 실장은 “성숙된 시민들이 우선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고, 인터넷 강국이라고 한들 수준 낮은 문화를 이길 수는 없다. 시민이 성숙하지 않고서는 자정노력 등이 크게 개선방안이 될 수 없다”며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익명 뒤에서 씩씩거리는 습성은 고치기 힘들다.

유 대표도 “여러 가지 자정 움직임이 필요한 데 사회 갈등구조 자체가 격화되고 있다”면서 “사회적인 문화와 연관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좀 더 부드러워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성완 기자 (csw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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