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KBO리그를 평정했던 삼성 라이온즈 왕조도 ‘도박 파문’은 극복하기 어려웠다.
삼성은 31일 잠실야구장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포스트시즌’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초반 선제점을 내주고 경기 내내 끌려간 끝에 2-13 참패했다. KBO리그 최초의 통합 5연패 달성도 실패했다.
내년 홈구장 이전을 앞둔 삼성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KBO리그 최초의 통합 5연패 위업을 꿈꿨다. 그러나 몇몇 선수들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전력에 큰 구멍이 생겼고 팀 분위기도 무거워졌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와 의지가 중압감과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반면 두산은 무려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두산은 2001년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삼성을 4승2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었던 두산은 올해도 3위로 올라와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고 한국 프로야구 정상에 섰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보다 3승을 먼저 따고도 뒤집혔던 아픔도 설욕했다.
사실 삼성이 두산에 이렇게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전망했던 전문가들은 포스트시즌이 시작될 때까지도 없었다.
‘커브의 달인’ 윤성환을 비롯해 10승 선발 투수 5명이 건재하고, 4년 연속 홀드왕을 차지한 안지만과 구원왕 임창용이 버틴 두꺼운 마운드와 100안타 이상을 기록한 10명의 타자들로 구성된 타선은 KBO리그 역사상 최고인 0.302를 기록할 정도로 뜨거웠다. 2015시즌 페넌트레이스 우승으로 거칠 것이 없어 보였던 삼성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뜻밖의 악재와 마주했다.
지난 20일 김인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지난 20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속 선수의 도박 의혹과 관련해 물의를 빚어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의혹을 받고 있는 선수들을 한국시리즈에 출전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엔트리 제외라는 초강수를 던지긴 했지만 결정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불법 해외원정 도박 의혹에 휩싸인 3명은 다름 아닌 삼성 마운드의 시작과 중간, 마무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윤성환-안지만-임창용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같이 대체 불가능한 자원들이다.
윤성환은 올 시즌 17승 8패 평균자책점 3.76으로 데뷔 후 개인 최다승을 거뒀다. 셋업맨 안지만은 4승 3패 37홀드 평균자책점 3.33으로 한 시즌 최다 홀드 기록을 갈아치웠고, 5승 2패 33세이브 평균자책점 2.83의 임창용은 구원왕이다. 이들이 합작한 기록은 26승 13패 37홀드 33세이브며 이닝만 326.1이닝에 달한다.
이런 핵심 투수들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빠져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심각한 전력 누수다. 특히, 불펜의 중요도가 높아진 현대 야구에서 셋업맨과 마무리 투수 없이 경기를 치른다는 자체가 삼성에는 낯설었다.
결국, 류중일 감독은 ‘삼진왕’ 선발요원 차우찬을 전천후로 돌리기도 결정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또 차우찬은 기대대로 1차전에 등판해 1.1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팀의 9-8 극적인 역전승의 발판을 놓으며 데일리 MVP에 선정됐다.
삼성에 화려하기 그지없던 가을이 이제는 잊을 수 없는 허탈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 연합뉴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잇몸으로 버텨보겠다던 류중일 감독의 구상과 바람도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 ‘선발야구’를 앞세워 팀 타율 1위의 타선을 바탕으로 돌파구를 찾아보려 했지만 1차전의 극적인 9-8 승리가 전부였다.
선발이 버텨주지 못하고 타선마저 침묵한 2~3차전에 차우찬이 나설 기회는 없었다. 차우찬이 4차전 불펜투수로 등판했지만 54개의 공을 던지고도 팀이 패하는 바람에 ‘헛심’만 쓰고 내려와 5차전을 맞이하는 삼성 마운드는 물론 타선도 급격하게 위축됐다. 중심타선은 니퍼트를 만난 이후 장원준-이현승-노경은 등에 막혀 위력을 뿜지 못했다. 타선도 타선이지만 윤성환이 빠지고 필승조 안지만-임창용의 공백을 메우는데 급급했다.
차우찬이 불펜으로 이동하면서 선발진의 두께까지 얇아졌고 차우찬의 앞과 뒤를 받쳐줄 수 있는 투수도 보이지 않았다. 시스템 야구를 자랑하는 삼성이라도 주력투수 3인방을 1~2주 사이 대체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삼성은 지난 2013년 1승 3패로 몰리다가 내리 3연승을 거두며 기적적인 우승을 거머쥔 바 있다. 물론 당시에는 현재 멤버들 대부분이 건재했고, 에이스 밴덴헐크와 마무리 오승환이라는 특급 투수들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기적이 일어날 기본적 요소들이 모두 빠졌다. “미친 선수가 나와야 우승할 수 있다”는 그간의 ‘진리’는 차치하고 삼성은 플러스는커녕 마이너스만 잔뜩 떠안았다. 화려하기 그지없던 가을이 이제는 잊을 수 없는 허탈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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