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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외전' 스크린 독점 속 한국영화의 그늘


입력 2016.02.14 08:20 수정 2016.02.14 08:24        부수정 기자

설 연휴 극장가 장악…허술한 이야기에도 흥행

상영관 몰아주기 비판…다양성 영화 실종 위기

황정민 강동원 주연의 '검사외전'이 극장가를 싹쓸이하며 흥행 중이다.ⓒ쇼박스

황정민 강동원 주연의 범죄 오락 영화 '검사외전'이 최근 극장가를 장악한 가운데 국내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스크린 몰아주기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설 연휴 개봉한 '검사외전'은 지난 9일 하루 동안 117만4703명을 동원해 극장가를 싹쓸이했다. 누적 관객수는 753만3676명으로 천만 돌파는 시간 문제. 하루에 100만명 이상 관람한 작품은 '명량'(2014)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밖에 없었다.

이번 설 연휴에는 '검사외전'과 '쿵푸팬더3' 외엔 볼 영화가 없었다. 특히 '검사외전'은 전국 2400여개 스크린 중 1700여개(약 70%)를 차지한 데다 CGV가 예약률이 낮은 영화의 편성을 '검사외전'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지면서 스크린 독점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한 영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울의 한 CGV에서 '쿵푸팬더3'를 보려고 예매했는데 극장 측에서 상영관 점검 문제로 다른 시간대 영화로 바꿔달라는 연락이 왔다"는 글이 올라왔다.

비슷한 경험을 한 누리꾼들도 "'쿵푸팬더3'를 보고 싶은데 대부분 상영관에서 '검사외전'을 상영해 보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난 1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검사외전'이 10~20분 간격으로 상영된다는 내용의 '검사외전 상영표 거의 분당선 배차급'이라는 글도 스크린 쏠림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볼 영화가 '검사외전' 밖에 없다", "보고 싶은 영화는 새벽 시간대나 이른 아침 시간대에 있어 아쉽다",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영화가 관객을 선택하는 상황이 됐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황정민 강동원 주연의 '검사외전'이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휩싸였다.ⓒ쇼박스

볼 영화 없는 극장가…예고된 스크린 독점

기존 스크린 독점 논란은 멀티플렉스인 CGV, 롯데시네마 등이 모회사인 CJ와 롯데의 영화를 상영하는 과정에서 나오곤 했다. 이번 '검사외전'은 극장 체인이 없는 쇼박스가 배급했다. 극장 측은 고객의 수요와 좌석 점유율을 이유로 들어 '검사외전'을 배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객들이 재밌다고 보는 영화가 '검사외전'뿐이라는 얘기다. '검사외전'은 대진운 덕을 톡톡히 봤다. '쿵푸팬더3'외엔 이렇다 할 경쟁작이 없다.

기득권, 부패 정치인을 척결하는 내용, 여기에 강동원이라는 스타 캐스팅도 한몫했다.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는 강동원의 매력이 여성 관객들을 붙잡았다. 설 연휴에 아무 생각 없이 웃기고 즐길 만한 영화라는 평도 많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지난해 연말부터 볼 영화가 없던 상황에서 '검사외전'이 개봉한 것"이라며 "이야기는 허술하지만 강동원이라는 스타 캐스팅과 오락 영화의 재미가 먹혔다"고 분석했다.

김 평론가는 이어 "볼만한 영화가 없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며 "중박 영화가 다양하게 나와야 하는데 대작에만 관심이 쏠리고 있고 제작, 배급사들이 수익을 위해 서로의 눈치를 보는 현상이 밀어주기로 나오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박호선 영화평론가는 "강동원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주효했고 '검사외전' 외에 볼 영화가 없다"며 "경쟁작이 없어 흥행 독주 중이다"고 짚었다.

황정민 강동원 주연의 '검사외전'이 극장가를 장악한 가운데 스크린 몰아주기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쇼박스

중박 사라진 한국 영화…다양성 추구 필요

'검사외전'의 흥행에는 한국 영화의 어두운 이면이 적나라하게 반영돼 있다. 될 영화만 몰아주고, 다양한 영화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다.

100억, 200억을 쏟아부은 대작도 중요하지만 독특하고 신선한 영화를 발굴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00만이 넘는 대박 영화는 늘었지만 300만~500만 관객이 보는 '중박' 영화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중 중박 영화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380만), '스물'(300만), '검은 사제들'(500만) 등 세 편뿐이었다.

'대박' 아니면 '쪽박'인 스크린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제작자들은 '쪽박'을 피하고자 탄탄한 이야기보다 스타 캐스팅과 무난한 소재를 택한다. 다양성 따위 없어진 지 오래다. 나오던 배우만 계속 나오고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가 난무한다. 신인 배우나 신인 감독의 발굴 또한 어렵다.

김 평론가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데 중박 영화가 없고 대형 흥행작만 극장에 걸린다"며 "볼 영화가 없다는 영화계의 현실은 한국 영화의 위기의 징조다"라고 지적했다.

좌석 점유율을 핑계로 어쩔 수 없이 스크린을 배정했다는 극장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영화를 '문화'가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봤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 평론가는 "'검사외전'이 정말 좋은 영화라면 굳이 몰아주기를 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이 장기적으로 극장을 찾을 것"이라며 "영화를 문화와 여가가 아닌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이라고 짚었다.

이어 "스크린 독과점이 심해지면서 작고 다양한 영화가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며 "해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홀대받고 있고 수출도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박 평론가는 또 "영화는 관객에게 꿈과 희망,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문화"라며 "스크린 독과점이 창의력 넘치고 개성 있는 영화가 탄생하는 길을 막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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