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우승팀의 위업, 클럽을 거친 위대한 전설들의 이름은 레알의 위상을 드높였다. 하지만 2016년 현재, 레알은 더 이상 라 리가에서도 최고의 클럽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스페인을 넘어 세계축구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는 라이벌 바르셀로나 기세에 눌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지역 라이벌 아틀레티코에도 밀리고 있는 것이 레알의 현 주소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몇 년째 누적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올 시즌의 레알은 그야말로 암울하다. 어떤 면에서는 무관에 그친 지난 시즌보다도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리그에서는 바르셀로나에 12점차 뒤지며 올해도 우승 경쟁에서 사실상 밀려났고, 국왕컵에서도 이미 실격패로 탈락했다.
성적 부진만을 떠나서 레알은 경기 내외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레알에 ‘라 데시마’를 선사했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을 경질하고 데려온 라파엘 베니테스는 5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쫓겨났다. 성적 부진과 선수단과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베니테스는 국왕컵에서 부정선수를 기용했다가 실격패를 초래하는 초유의 사태를 저질러 명문 구단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작년 9월 이적 서류를 제 시간에 처리하지 못해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 영입에 실패한 것도 레알 같은 구단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역대급 촌극이었다.
일부 주축 선수들의 프로의식과 무절제한 사생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하메스 로드리게스와 카림 벤제마는 최근 교통법규 위반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벤제마는 프랑스대표팀 동료였던 발부에나와 관련된 협박 혐의로도 법정을 오가는 등 구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에이스 호날두는 노쇠화와 함께 최근에는 팀 동료들을 비하하는 뉘앙스의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근본 원인은 레알 구단 수뇌부의 근시안적이고 맹목적인 팀 운영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레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갈락티코’다. 검증된 스타급 선수들을 앞세워 정상을 노리는 것이 2000년대 이후 레알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이는 ‘티키타카’라는 고유의 축구철학과 내부 유망주 육성의 비중이 큰 바르셀로나와의 대조적이다.
그러나 2009년 호날두-카카 등을 중심으로 한 갈락티코 2기가 출범한 이후 레알은 리그와 UCL에서 각 1회 우승을 차지했을 뿐, 같은 기간 리그 우승만 5회나 달성하며 트레블도 두 번이나 차지한 바르셀로나에 비하면 만년 2인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호화 군단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정작 레알의 선수층은 얇다.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크고 포지션 불균형이 심하다. 이름값 있는 선수들의 영입에만 집착하면서 선수단의 몸값은 오른 반면, 스쿼드는 그만큼 탄탄하지 못하다. 유스팀 선수들의 비중도 작은 편이다.
레알이 최근 몇 년간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뒷심 부족을 드러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GK 카시야스마저 떠난 이후에는 팀에 확실한 구심점이 될 리더가 없고, 잦은 감독교체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팀 운영을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이들은 올 시즌 이후 레알이 대대적인 팀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필요하다면 팀의 에이스인 호날두를 포기하는 것도 포함된 강도 높은 개혁을 시도해야한다는 것이다. 전성기가 지나고 있는 호날두는 떨어진 득점력만큼이나 해가 갈수록 베테랑으로서 레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페레스 회장을 비롯한 구단 수뇌부의 지나친 간섭과 원칙 없는 팀 운영도 레알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지금의 레알은 그저 과거의 명성에만 기대어 불안하게 쌓아올려진 모래성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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