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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막으려면 당헌당규 더 친절했어야 했다


입력 2016.03.21 11:01 수정 2016.03.22 10:34        장수연 기자

<기자수첩>디테일 없는 당헌당규에 불거진 '불공정 공천' 논란...유승민엔 어떤 해석?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3차 여론조사 경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당 대표로서 당헌·당규를 수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당헌·당규에 위반되는 결정을 내릴 때는 법률적 대응 검토도 하고 있다"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

최근 새누리당에서 일고 있는 공천과 관련된 모든 내홍은 '당헌·당규의 해석'에서 출발한다. 김무성 대표는 일부 수도권과 영남 지역에 대한 공천관리위원회의 경선지역 발표를 두고 상향식 공천 원칙과 당헌·당규를 위배했다며 17일 최고위원회 소집을 거부하고 의결 사안을 보류했다. 이에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별도의 간담회를 열어 전략공천을 문제 삼은 김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김 대표가 뒤늦게 공관위의 공천 방식에 반기를 들며 일전도 불사할 태세로 나섰지만 1차 경선지역 발표에서부터 7차 발표까지 '전략공천 논란'이 불거지지 않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공관위는 18일까지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과 호남의 일부 지역을 제외한 249곳의 공천을 마무리한 상태다. 이 중 여론조사 경선으로 후보자를 가리는 지역은 절반인 141곳이고, 나머지는 단수추천이 96곳, 우선추천이 12곳이다. 사실상 전략공천이 108곳이나 되는 것이다.

원인은 당헌·당규에 시한폭탄처럼 내제돼 있던 '우선추천지역'이다. 당은 2년 전 진통 끝에 상향식 공천제를 못박은 현재의 당헌당규로 개정했고 세부적인 규칙인 공천 규칙은 올해 초 완성됐다. 특정 후보를 특정 지역에 내리꽂는 '전략공천' 조항은 삭제됐다. 그러나 무조건 경선만 치른다면 정치적 소수자의 진입이 어려워지고, 경쟁력이 약한 후보들끼리 경쟁을 치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선에 나서려는 후보가 아예 없는 상황까지 예상되기도 했다.

그래서 제정된 조항이 당헌 103조 '우선추천지역 선정'이다. 당헌 제103조는 우선추천 지역의 요건으로 두 가지를 적시하고 있다. 하나는 '여성 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의 추천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역'이다. 또 하나는 '공모에 신청한 후보자가 없거나, 여론조사 결과 등을 참작하여 추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지역'이다. 당시 두 번째 요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지역' 부분을 두고 김 대표는 자의적 해석을 우려해 삭제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여론조사 등을 참작하여'라는 조건을 달아 제정됐다.

20대 총선 공천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내홍이 깊어지는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 승강기에 탑승하고 있다. ⓒ데일리안

결국 김 대표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현재 이한구 위원장을 비롯한 친박계는 전략공천은 아니라면서도 우선추천지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103조 1항의 '여성 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 문구를 언급하며 "'등(等)'자는 폼으로 붙여놨겠느냐"며 당헌당규의 범위를 다각도로 넓혀갔다. 전직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의 '정치신인'도 이에 포함됐다. 2항의 '여론조사 등' 부분도 확대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후보자 부적격 기준을 규정한 당규 9조도 얼마든지 고무줄 해석이 가능하다. '유권자의 신망이 현저히 부족한 자''기타 공직후보자로 추천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명백한 사유가 있는 자'는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경선 지역 및 여론조사 결과 발표에서 왜 특정 지역구를 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하고, 왜 특정 지역구에 단수추천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세세한 설명 없이 불친절하게 남겨둔 '등(等)'은 상향식 공천제를 역설하던 김 대표를 무력한 대표로 만들었고, 공관위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야기했다. 우선추천지역으로 인해 경선 배제 통보를 받은 후보들은 '보복 공천' '사천' 등의 반발을 쏟아내고 있다.

아직 공천은 끝나지 않았다. 30여개의 지역이 경선 여부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고 그 중에는 컷오프 태풍이 불고 있는 대구 지역, 특히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 동구을은 초미의 관심사다. 공관위원인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은 이날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유승민 의원을 경선에 붙일 것인가 말 것인가다. 당헌·당규에 충실한 결정을 내리면, 또 국민 정서에 맞는 결정을 내리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당헌·당규에 충실한 결정'엔 또 어떤 해석이 붙을지 우려스럽다.

장수연 기자 (telli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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