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고, 딴짓하고, 노골적인 비아냥까지… '고함'만 없었다
<현장>7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 이모저모
"박근혜정부 3년 반은 고통과 질곡이었습니다. 민주주의, 서민경제, 한반도 평화는 모두 무너지고 있습니다. 경제는 죽었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못 살겠다는 아우성입니다. 조선·해운 산업은 몰락하고,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 몰리고 있습니다. 나라도 빚더미에 앉았고, 국민은 사는 게 아니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20대 국회가 개원한지 꼭 100일째인 7일 국회 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날카로웠다. 그리고 날카로움의 끝으로 박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작심한듯 박 대통령을 향한 날선 공격을 이어갔다. 그는 "대통령께서는 눈과 귀를 닫고 있고, 독선과 불통으로 분열과 갈등만 키우고 있다"며 "이렇게 해서 과연 대통령께 무엇이 남는 것인지 묻고싶다"고도 했다. 새누리당 의석에서 "박근혜정부 3년 반은 고통과 질곡이었다"는 박 비대위원장의 발언에 "좀 심한 이야깁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박 비대위원장은 준비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대통령께서 지금 이대로 가신다면, 국민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고 해결의 시작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연설의 초반부였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몇 명의 재선 의원들은 연설하는 박 비대위원장으로부터 아예 고개를 돌리고 자기들끼리 딴소리를 하기도 했다. 방청석까지 그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마치 '지도부가 공개적 비난을 자제시키니 어쩔 수 없이 말은 하지 않지만 들어줄 수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첨예한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사드 문제에서는 급기야 고성이 터져 나왔다. 박 비대위원장이 "성주가 반대하면 김천으로, 이제 김천이 반대하면 또 어디입니까"라고 말하자 성주를 지역구로 둔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김천 안 갑니다. 성주입니다. 제대로 알고 말씀하세요"라고 받아쳤다. 이 의원은 전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연설에서도 유일하게 "안보는 안보"라며 고함친 의원이었다.
남는 쌀을 대북 지원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엔 노골적인 비아냥과 못마땅함이 표출되기도 했다. 박 비대위원장이 "쌀과 감귤이 핵무기가 되지는 않는다"며 대북지원을 촉구하자 몇 명의 새누리당 의원은 노골적으로 "쳇"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일부 의원은 실소를 짓거나 다리를 꼬고 의자를 뒤로 한껏 젖힌 채 딴짓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골적인 불만 표시는 연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른바 '돌격대' 역할을 하는 초·재선 의원은 물론 중진 의원들에게서도 나타났다. 본회의장 입장 후 시종일관 고개를 끄덕이며 졸던 한 중진 의원은 박 비대위원장의 연설 40분 무렵 잠에서 깨 옆자리 중진 의원 둘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연단에 선 연설자는 안중에 없다는 태도였다.
하이라이트는 연설 말미에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힘주어 말한 "지금 대한민국의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입니다"라는 발언이었다. 박 비대위원장의 발언과 동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에이!", "아니야!", "참나!" 등이 쏟아졌다. 발언후 연설이 끝났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전날 추미애 더민주 대표의 연설과는 달리 손뼉을 치지 않았다. 정진석 원내대표와 최연혜 최고위원만 잠깐 손뼉을 치다가 곧 손을 멈췄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표정은 연설 내내 굳어있었다.
20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이렇게 끝이 났다. 정치권은 원내 교섭단체 3당의 대표연설이 19대 국회보다는 진일보했다고 평가했다. 적어도 원색적인 비난이나 난장판을 만들지는 않았다.
특히 전날 추미애 더민주 대표의 국회 연설에 앞서 "연설 도중 야유나 고함은 자제하고 연설이 끝나면 박수를 보내달라"며 "상대당을 존중하는 정치문화, 화합과 협치의 여건을 마련해 나가자"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당부가 효과를 발휘했는 분석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는 나란히 이날 연설 직후 논평에서도 '존중'에 코드를 맞췄다.
새누리당 김성원 대변인은 논평에서 "역시 높은 경륜과 혜안이 배어났고, 원내3당을 만들어주신 국민의 뜻을 잘 섬겨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품격 있는 연설"이라면서 "박 대표와 국민의당이 ‘대화와 타협의 윤활유’ ‘제1당과 제2당의 가교’ 역할을 다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더민주 박경미 대변인도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의 현안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시작', '우병우 수석의 해임이 정치 정상화의 신호탄' 등의 표현에 '동감', '공감' 등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본회의장에서 고성이 오가지 않고 날선 논평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서로를 향한 존중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이날 행동은 말은 안 했지만 노골적인 비아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5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연설에서는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19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야유와 고성이 오고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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