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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②] 봉준호의 '옥자' 상업 논리와의 전쟁


입력 2017.07.03 08:53 수정 2017.07.07 09:45        이한철 기자

제작사 집요한 요구사항 거절 또 거절

결국 개봉 포기하며 '넷플릭스' 선택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29일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 NEW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는 하나 같이 도살장 장면을 꼭 찍을 거냐고 묻더군요. 그걸 빼면 뭐 하러 '옥자'를 찍겠어요. 그걸 이야기 하고 싶은 건데…."

봉준호 감독(47)은 영화 '옥자'의 배급방식이 영화계 기존 질서를 파괴한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 또한 이 작품의 운명"이라며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봉준호 감독이 이처럼 고집을 부린 건 자신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인정해주는 제작사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시나리오 탈고 이후 예산서를 뽑아봤더니 아무리 행주로 쥐어짜듯 쥐어짜도 500억 원 이하로는 만들 수 없겠더군요. 뉴욕 로케이션과 CG에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죠."

그래서 봉준호 감독은 일찌감치 국내에선 이 작품에 손 댈 수 있는 제작사가 없다고 보고 해외의 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제작사들은 상업적 논리를 앞세워 작품 수정을 요구했다. 반면 인디 투자사들은 작품에 대한 감독의 권한을 최대한 보장하는 대신, 300억 원 이상의 제작비에 난색을 표했다.

"그들은 '당신이 한 슈퍼돼지 디자인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녀 배우도 매력적이다. 다 패키지 돼 있는데 도살장 장면은 안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하더라고요. 특히 돼지의 메이팅(짝짓기) 장면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고요."

영화 '옥자'는 수많은 논란에 몸살을 앓고 있지만, 정작 봉준호 감독은 여유가 넘친다. ⓒ NEW

그러던 와중에 프로덕션 파트너로 합류한 플랜B가 추천한 것이 넷플릭스였다. 무엇보다 넷플릭스가 적극적인 움직임이 봉준호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말 빠르게 오퍼를 했어요. '시나리오를 바꿀 필요도 없고, 최종 편집권을 보장한다. 그리고 18세 관람가 등급까지도 허락하겠다'고 했어요. 사실 시나리오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12세 관람가를 조건으로 내걸면 그 자체로 시나리오 변경 요구나 다름없거든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당초 넷플릭스를 통한 온라인 개봉이 조건이었지만, 봉준호 감독은 한국을 포함한 몇 몇 나라에서의 극장 개봉을 요구했고 이 또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조차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만큼 논란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칸 영화제에서는 시사회 도중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고, 급기야 영화제 측은 "내년부터 인터넷 배급 영화를 경쟁 부문에 초청하지 않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국내에서는 유통 질서를 해친다는 이유로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3사가 극장 개봉을 보이콧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사랑스럽고 환상적이며 흥미진진하다. 때문에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봉준호 감독은 "멀티플렉스 상영관 아니지만 의외로 4K 상영관이 꽤 많이 있다. 4K로 보면 작품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봉준호 감독은 또 넷플릭스와 작업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마틴 스콜세지도 넷플릭스에서 신작을 준비 중이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 NEW

'옥자'는 '설국열차'처럼 원작 만화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한 교차로에서 신호를 대기하다 문득 떠오른 '옥자'의 이미지에다, 10여 년 전 썼다가 책상 속에 넣어뒀던 시나리오 '둔자'가 결합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만난 '진보 청년'에 영감을 받아 최우식이 연기한 김군 캐릭터를 만들었고, 영화 속 미란도 컴퍼니는 실존하는 세계적인 친환경 기업을 모델로 했다. 봉준호 감독의 삶이 고스란이 작품 속에 담겨 잇는 셈이다.

여기에 배우 폴 다노에게 뉴욕에서 술을 마시다 전해들은 '소목장에서의 울부짖음'은 이 영화에서 가장 찡한 감동을 전해주는 '슈퍼돼지들의 울음'으로 이어졌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하나의 완성된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내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폴 다노가 미국 오리건 주에서 촬영을 하던 중이었는데, 어느 날 밤 근처에 있는 거대한 소목장에서 수천 마리의 소들이 밤새 울었다는 얘기를 들려줬어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더니 어떤 새끼가 사고로 죽자 부모 소들이 울기 시작했고, 이어 모든 소들이 따라 울었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만큼 '옥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또 이를 지켜내기 위해 많은 희생과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작품이다. 논란이 큰 만큼 애착이 클 수밖에 없다.

또다시 같은 상황이 된다면 넷플릭스와 또 선택할 것인지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작품마다 다를 것"이라면서도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넷플릭스에서 신작을 준비 중"이라며 답변을 대신했다.

"영광이게도 우연히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뉴욕에서 만나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같이 나오는 영화를 하는데, 두 사람의 젊은 모습들을 대역으로 써서 찍기 싫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두 사람이 연기하고 그걸 CG로 덮는 방식을 생각했는데 그 예산 때문에 넷플릭스와 한다는 거예요. 그런 거장도 창작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는 거죠."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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